ㅊㅈㅅ 해 뜰 때까지만
해 뜰 때까지만.
창을 열고 잔 게 잘못이다. 단순히 찬바람이 들었다는 이유는 아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병마는 누구에게나 들 수 있는 무난한 방문객이다.
무려 둘이었다. 두 명이나 하루 밤새 찾아왔다. 구름에 달이 가려진 동안 기회를 잡은 것이다. 무작정 쳐들어왔다. 한쪽은 너무도 뜨거웠고, 한쪽은 그에 비해 차가웠다. 온도차가 극명하여 세 번째 손님으로는 정말로 병마가 올 기세였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둘은 속 편하게 자기네 할 말만 늘어놓았다.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는 쪽이 이롭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이는 종인이었다. 낯선 내용이 가득한 문장들을 억지로 들어야했다.
"밤이면 불이 하늘을 뒤덮어. 여기서는 보지 못하는 절경이지. 불은 갖가지 색을 띠어서 아름다움 자체야."
"그리고 그걸 바람이 밀어내죠."
온 대화가 이런 식이었다. 불이 자신을 내세우면 단번에 찬바람이 불었다. 밖에서 부는 것인지, 매섭게 생긴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줄곧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눈에 겁을 집어먹었다. 그나마 종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불씨가 살에 닿지 않도록 이불을 돌돌 마는 정도였다. 저의를 알지 못하여 한동안 입만 벙긋댔다. 차례가 바람에게로 돌아왔을 때에야 깨달았다. 둘은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다 됐고, 이 사람입니까 접니까."
늘어놓던 말들이 하나로 모여들었다. 어느 쪽으로 갈지 정하라는 뜻이다. 대체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손가락을 올렸다. 이불 사이에서 쏙 빠져나온 살덩이가 방향을 정했다. 당연히 조금 더 표현이 그럴 듯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싸!”
진정으로 신이 났는지 순간 어깨부근에서 작은 화염이 지펴졌다. 별다른 장치도 없이 붉은 꽃을 피어내자 종인은 지금이 현실이라는 걸 실감했다. 팔을 뻗어내 가까이 가보았다. 그저 즐거워만 하던 그는 종인이 다가오자 화들짝 놀라 얼른 집어삼켰다.
“이거 뜨거워.”
바라만 보던 바람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러다 애 다치겠네. 걱정 서린 목소리로 웅얼거리기도 하였다.
구름이 움직였다. 제 빛을 도로 찾은 달이 자태를 드러냈다. 마침내 두 얼굴을 바르게 보았다. 불은 타올랐고, 바람은 일었다. 참 반듯하게 생겼다고 느끼는 순간 양 손목이 잡혔다. 각자 한 팔씩 잡아 쥐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얼른 가야 돼.”
무턱대고 침범해 오더니 이제는 아예 끌고 가려 한다.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잠깐 놓고 얘기해요.”
하지만 힘으로 성인 남자 둘을 상대하기에는 버거웠다. 힘껏 들어지나 싶더니 붕 떠올랐다. 시린 기운이 전신을 휘 감았다. 동시에 눈을 꾹 감았다. 뭐라 더 내려고 했던 입은 도로 닫혔다. 발아래 걸리는 게 없었다. 공중에서 흐르고 있었다. 잡혀진 팔목에 힘을 가했다.
바람은 공기를 양껏 끌어 모아 종인에게 덮어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떨고 있다. 아무리 급해도 양말정도 신을 시간은 주었어야 했다.
불 역시 이를 알아챘다. 이 상태라면 도착하고 난 뒤에는 서리가 쌓여있겠다. 달 눈치를 보다가 구름이 다시금 가려준 사이에 얼른 엷은 열기를 입었다. 바람에게 눈짓하자 곧장 종인을 틀어잡아 불 등에 업어주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버둥거린다. 잘못하다가는 떨어질 상황이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실오라기를 잡아 종인을 꽁꽁 묶었다.
“확실히 말하지만 이건 구해주는 거예요.”
변명을 얹어 올렸으나 종인이 신경 쓰는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업혀있다는 건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거기다 이 등이 따뜻하다는 건 더욱 거슬렸다. 고정시켜놨음에도 여전히 꿈지럭거린다. 혹여 불기운에 실이 끊어질까 걱정된 그가 조심스레 달랬다.
“달 몰래 쓰는 거라 더 이상 힘을 내기가 어려워. 날이 밝으면 내려줄게.”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한 건 아니었다. 꿈이 아니라고 해서 현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목소리가 퍼져 나른하게 들렸다. 불이 앞을 가려준 덕에 찬기에서 벗어났다. 그는 마침내 눈을 떠냈다. 역시나 공중이었다. 바람을 타고 있다고 하는 게 가까웠다.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발밑에 풍성하게 펼쳐진 도시는 빛을 머금었다.
“그럼 해 뜰 때까지만.”
작게 낸 목소리는 불에게만 들렸다. 다시 눈을 감았고 종인은 곧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