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속옷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들었다더니 정말이었다. 피부와 같이 달라붙어 있으면서 용케 버텼다. 입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비록 겉모습은 망측하다 놀렸어도 성능은 인정한다. 속옷을 잘 챙겨입으라 일러준 아이에게 눈 인사를 보냈다.
엎어진 몸을 일으켰다. 괜찮냐며 다가온 무리들에게는 어색지게 웃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이정도로 강한 타격이라고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다. 진작 말했다면 여기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겁먹었냐고 물었다면 당장에 고개를 끄덕일 생각이었다. 그럼 혹시나 다시 돌아가게 해주지 않을까.
그들 중 하나는 내 꼴을 보고 혀를 찼다. 그리도 한심해 보였나보다. 그 소리가 신호탄처럼 귓가에 펑 터졌다.
당장에 허리를 꺾어 호탕하게 웃으며 모래를 툭툭 털었다. 웃어야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저 자식에게 약한 행색을 비추기 싫었다. 아주 멀쩡하여 훈련을 세 개는 더 받겠다고 떠벌렸다. 다들 다행이라며 한 마디씩 건넸으나 한 명은 제외였다. 굳이 짚어주지 않아도 알 사람은 알 만한 바로 그 자식이다.
제 1훈련은 여기까지였다. 부상자가 나왔으니 치료 후에 다음 단계로 가겠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통솔자가 다가 와 내 살갗 상태를 가늠해 보았다. 살짝 긁혔을 뿐인데 색이 까맣게 변했다. 이것마저도 속옷을 입지 않았다면 뼈가 드러났을 것이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일러주었다. 머리에서 생각만하는 것과 직접 듣는 건 사뭇 차이가 있었다.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모습이 지나치게 선명했는지 입가가 들썩였다. 확실한 비웃음이다. 전에도 느꼈지만 통솔자가 품고있는 분위기는 섬뜩함이 가득했다.
뱃가죽을 스쳐지나간 가시덩이는 바로 뒤 나무에 박혔다. 깊숙이 들어갔기 때문에 벌써 썩어갔다. 저걸로 맞을 뻔한 것이다. 얼굴 근육이 뻑뻑해져가는 걸 느꼈다. 다시금 속옷이 가진 위대함을 마음 안쪽에 새겼다.
"자자, 찬열인 표정 풀어. 아직 첫 날이잖아."
아쉽게도 위로가 되진 못했다. 도움이 되고싶었는데 이래서야 짐이라도 안 되면 다행이었다.
통솔자가 돌아가자 제 2훈련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번에야말로 바늘을 다 막아서겠다는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