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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선배는

S2015. 12. 7. 04:52

140711





박찬열은 잘생기고, 예쁘고, 영리하고, 부유한 데다 집안이 안락하고 성격이 명랑해서 이 세상의 축복을 모두 누리는 것 같았다. 분명 그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으리라고 종인은 확신했다. 저리 생긴 장군님이라면 제 목을 직접 가져다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 찬열이 종종 캠퍼스 인도를 지나다닐 때 흘낏 스치는 시선들이 모두 박 장군님 만세를 외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종인은 등 뒤에 남몰래 차고 있던 활로 눈 화살을 꽂아 마구 쏴댔다. 하지만 충성심과 친밀도는 반비례하는 것인지 사실 말 한번 걸어본 적 없었다. 심지어 과가 다르니 건물 위치도 정반대에 놓였다. 얼굴 한번 보려면 깨나 기나긴 길을 오래도록 밟아나가야 했다. 하지만 종인에게 그 정도 수고쯤은 이미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습실에서 뛰어다니는 양에 비하면 그건 가벼운 근육이완용 산책이었다.

박찬열은 소속된 과마저도 자신과 꼭 어울렸다.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수건을 둘둘 말아 이마 선 위로 질끈 묶었다. 막대를 꽂고 주변은 섬세한 손길로 철사 뼈대를 꼬아 올려 찰흙을 던지듯 붙였다. 머리에 다 들어가 있는 형태를 손으로 옮겨 결국 만들어낸다. 작업을 할 때있어 찬열은 가히 예술가였다. 반팔을 고이 접어 드러난 팔뚝 근육마저 그러했다. 후배들 사이에서는 이미 프로라는 소리까지 오갔다. 해당 조소과 교수가 그에게 작업실 열쇠를 맡긴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또 작업 중 집중도가 굉장해서 닫힌 문을 열어도 눈치 못 챘다. 물론 아주 조심스러웠기에 가능했다. 덕분에 종인은 편하게 뒷모습이라도 훔쳐볼 수 있었다. 해가 다 저물어 갈 때까지 남아서 하는 일도 잦았기에 아예 안으로 들어가 조각상을 앞에 두고 구석진 곳에 숨죽인 적도 있다. 몸을 최대한 둥그렇게 말아 접는 것 정도는 항상 신체를 단련한 종인에게 식은 죽 퍼먹기였다.
박찬열이라는 인간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두말없이 ‘완벽’이었다. 간혹 외부에서 학생들 작품을 가져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가 만든 작품은 항상 뽑혔다. 이미 이름이 알려져 꼭 그가 만든 게 아니면 안 되겠다 한 적도 있단다. 소문인지, 사실인지 몰라도 그만큼 다들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인정했다. 박찬열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처럼 종인은 동기들 몇 명과 연습실에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한참 몸을 풀었다. 전체를 반복해서 크게 돌았더니 땀이 줄줄 쏟아졌다. 봉에 다리를 올려 옆으로 허리를 꺾어 기대 숨만 내쉬었다. 눈을 감고 편하게 골라냈다. 표정마저 온화했다. 바로 뒤에서 똑같이 몸을 기댄 여 학우 둘이 속닥이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너 박찬열이라고 알아?”
“누구? 그 조소과?”

곧장 귀가 그쪽으로 쏠렸다. 자동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박찬열이라는 이름이 교내에 흔하지 않음을 안다. 덧붙여 과까지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둘은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번갈아 그에 대한 칭송을 쏟아냈다. 역시 이 박찬열은 그 박찬열이었다. 종인 역시 둘에게서 오가는 모든 말에 긍정하며 내적 예찬을 했다. 그러고는 마치 원래부터 이때쯤 반대쪽 다리를 풀려고 했다는 듯 뒤를 돌았다. 이야기를 하던 여인들은 놀랐는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태연하게 왼다리를 올려내 방금처럼 옆구리를 꺾어 붙였다. 자신들에게 전혀 관심 없다는 행동을 보고서야 다시 말을 이어갔다. 눈을 감은 종인은 더욱 예민하게 청각을 세웠다. 대부분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잘생긴데다 예쁘고 머리도 잘 쓰고 집도 잘 산다. ‘박찬열’하면 튀어나오는 공식과도 같았다.
쉴새없이 주고받던 대화중에 불현듯 한 명이 작은 한숨을 훅 쉬었다. 우리가 이런 말 아무리 해봤자 다 쓸모없다며 자조하는 어투였다. 뭔데, 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질문을 대신해주는 상대방이 참 고마웠다. 앞서보다 더 작게, 거의 숨만 내쉬는 음량으로 말을 꺼냈다.

“그 선배 게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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