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히방

공지사항

ㅊㅈ 카이짱팬 열.

L2014. 12. 22. 13:20






10.






카페 구석 부근에 자리를 잡고 도경수와 마주 앉았다. 내미는 이어폰 한 쪽을 고이 받아들었다. 꿈같이 흐려진 지난 밤 현장이 그것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졌다. 라디오도 다시 듣기가 가능하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 기다 아니다 따지기 전에 이 역시 관심자체가 없었다. 이렇게 또 하나 채워져 간다.

라디오에서 들린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떨고 있었다. 디제이들이 옆에서 놀릴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막 태어난 염소 울음소리 같다고 한 게 이해가 되었다. 이제는 청취자 입장에 서서 마음 편히 박찬열을 놀렸다. 마침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도경수요. 아니, 저 그게 얘가 제 친구인데요 수호 형을 진짜 좋아해요.”

“저를요? 진짜요?”

“네, 진짜로. 지금 오픈 스튜디오에서 보고 있거든요? 아마 얘가 지금 수호 형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예요.”



전화는 바로 끊어졌다. 이제야 이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경수는 접시에 놓인 케이크를 알맞은 크기로 연신 잘라먹었다. 흘러나오는 소리와 그 행동이 미묘하게 어긋났다. 계속 바라보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난 아까부터 입을 벌린 채였다. 어떻게든 닫으려 해도 턱 근육이 굳어버렸다. 아주 우스운 표정일 것이다. 이런 반응을 원한 모양이다. 상당히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자, 그럼 오픈스튜디오 쪽으로 마이크 잠깐 넘겨볼게요.”

“찬열 씨 친구 분, 딱 한 마디 하실 시간 있어요. 딱 한 마디에요.”

“너무 박하신 거 아니에요. 이름 포함해서 두 마디까지 기회 드릴게요.”



음성이 끊기나싶더니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어져 들려왔다. 그리고 그걸 한순간에 갈라놓는 목청은 크고 분명했다.



“수호 형, 좋아해요.”



정말 그것밖에 시간이 없었는지, 아니면 그들도 예상치 못한 언사였던 건지 그도 아니면 둘 다였는지는 모르겠다. 도경수가 펼친 말이 미처 메아리를 이루기도 전에 노래가 자리를 메웠다.



“어때?”



어떤 부분에 대한 물음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분명한 건 도경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토록 인자한 얼굴은 처음이었다. 수호와 관련된 일에서는 이런 표정도 짓는다는 걸 깨달았다. 함부로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었다. 기뻐하는 그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내 심리상태를 잘 버무린 대답을 골라야했다.



“아주… 굉장해.”



다행히 무난하게 넘어갔다. 듣고 있던 라디오를 중지시키고는 핸드폰을 도로 집는다. 눈썹에 독자적인 생명이라도 쥐어졌는지 꿈틀거리고 있다. 아직 뭔가 남은 게 분명했다.

얼마 후, 그가 앞으로 들이민 건 사진이었다. 그것도 라디오 홈페이지 내에 등록된 사진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경수가 보였다. 라식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부작용이 오나 싶었다. 언뜻 부옇게 보이는 것도 같아서 눈을 벅벅 비볐다.

안타깝게도 시력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분명히 도경수였다. 게스트로 나온 그들 사이에 서서 당당하게 손가락을 세우고 있었다. 우뚝 선 엄지가 옆에 나란히 자리한 수호와 같은 모양을 그렸다. 아무리 봐도 설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합성인가 하였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고작 합성만으로 도경수 어깨에 저리 힘이 들어갔을 가능성은 적었다. 이런 건 예상 못했다.



“작가 누나가 앞에까지 나와서 불렀어. 기념사진 찍게 해준다고.”



아직도 현장에 있는 듯 들뜬 목소리였다. 저음으로 일관되어있던 목소리가 세 톤 정도는 거뜬히 올라섰다. 지난 밤, 평생 가자고 하던 말이 단번에 이해되었다.

우린 서로 기회를 주고받은 것이다. 더 이상 누구 하나에게만 쏠린 일이 아니었다. 더 이상 미안할 일도, 괜한 죄책감을 가질 일도 없다는 뜻이다. 분명 그럴 텐데 어쩐지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밝게 웃고 있는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있잖아.”



생각해 보면 모든 게 내 탓이었다. 애초에 할 일 똑바로 하고 다녔으면 이제 와서 학점 챙긴다고 방방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경수 연락을 다 받을 수 있었겠지. 그랬다면. 문자를 받고 곧장 자리로 갔었더라면.



“박찬열, 내 말 듣고 있어?”



나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여태 공책 한 권 가득 채워왔던 필기 조각이고, 머리에 억지로 끼워 넣은 전공 지식이고 모두 다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어딜 보나 한심한 생각회로라는 건 충분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성과 본성은 한 몸에 자리하고 있더라도 분명 개별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다. 알고 있다하여 쉽게 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어느 곳에도 감히 털어놓기 힘든 슬픔이 끼쳤다. 아무리 도경수라고 해도 이런 감정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이건 견주기도 민망한 열등감이다.

현실에 코를 맞대고 발버둥 쳤다. 이 두텁고도 투명한 유리판은 어느 때인가 스스로 만들어내어 직접 끼워맞춰 놓기 한 그것이다. 너머에 환상이 있다는 건 그저 눈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카이는 여전히 저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

곧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이정도로 빠른 고동은 오랜만이었다. 마우스를 잡고 있는 손은 주체할 수 없이 떨려왔고 입술이 바싹 말랐다. 이미 떠 있는 인터넷 창을 몇 번이고 새로고침 하였다. 나도 모르게 아래위로 덜덜대는 다리에 변백현 손이 올랐다. 책상 떨리니까 그만 좀 하라고 한 소리한다.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라 얼른 다잡았다.



"예매 창 열리는 거 여덟 시라며. 야,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았어."



헤드셋까지 끼고 수류탄 던지는 주제에 말이 많다. 목소리나 좀 낮춰줬으면 좋겠다. 하던 파이어 인 더 홀이나 마저 했으면 한다. 내 마음이 어떤 지 이 놈이 알 리가 없다. 이 느낌이 싫어서 대전 류 게임은 손도 대지 않는다. 한정된 시간 안에 남들을 제치고 승리를 거머쥐어야 하는 압박감이 부담스럽다. 속이 더부룩하여 가슴팍을 쾅쾅 때렸다. 어디라도 나아지는 일은 없었다.

콘서트라는 단어가 주는 전의는 기대보다 한 발짝 먼저 밀어닥쳤다. 승부욕 역시 급작스레 불쑥 튀어나왔다. 다급하게 잡힌 콘서트 일정에 덩달아 급해졌다. 공개방송은 제대로 가 보지도 못했는데 활동이 끝났다고 푸념하기가 무섭게 공지가 올라왔다. 예매를 위한 사전정보는 물론 도경수에게 얻었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정리된 내용을 곧장 메일로 보냈다. 워드프로세스에 빽빽하게 담긴 내용은 노하우천지였다.

날짜를 열심히 꼽아가며 피시방에 출석했다. 날마다 자리도 바꿔가면서 마우스가 가장 차지게 감기는 곳을 찾아다녔다.

드디어 당일 날이 됐다. 변백현 손을 잡고 바삐 뛰었다. 피시방에 자리 없으면 다 너 때문이라고 왕왕댄 것이 무안할 정도로 텅텅 비었다. 아무 데나 골라가 앉으려는 변백 어깨를 감아 잡고 이끌었다. 난 여기, 넌 여기. 시나리오 지문에 적혀있기라도 한 듯 위치를 지정해주니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래도 군 말 않고 앉았다. 하루 풀코스로 대접해준다고 밑밥 깔아놓은 덕이다.

나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라고해도 백현은 말 그대로 하얀 건 화면이오, 까만 건 글씨렸다. 부족한 시간에 도경수가 내 준 글을 다 읽기는 어려웠다. 생각하기에 요점이라 생각되는 부분만 뽑아 알려주었다. 이런 일에 능숙하지 않았던 그는 금세 지쳐버렸다.



"수강신청 하던 대로 하면 되나."



감이라도 잡아보려는지 대뜸 건넨 말에 바로 동조해주었다. 바로 그거라고 손뼉까지 쳤다. 칭찬 한 번 했더니 한다는 짓이 게임이다. 친구는 지금 불타는 변기 위에 엉덩이를 들이민 형국인데 잘도 쏴댄다. 적군 머리통을 날려대며 여러 감탄사를 질렀다. 한창 신나있으니 잠시 이렇게 두도록 해야겠다.

정각이 되기 5분 전인데 녀석은 긴장이 전혀 없다. 아직도 총을 잡고 버틴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여기고 팔을 뻗어 본체 재부팅 버튼을 눌렀다. 곧 까맣게 변한 화면이 펼쳐졌다. 제 얼굴이 비추자 눈길은 자연스레 이쪽을 향했다. 눈동자에 가득 찬 비명은 꽤 높은 음이었다. 오선지에 그려내라고 한다면 기존 줄을 가볍게 넘을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에 벌써 2분이나 지났다. 마음이 급해져 변백현 머리통을 밀어내고 키보드를 차지했다. 예매 창까지 재빨리 켜냈다. 놈은 여전히 날 노려보았다. 신경 써 줄 시간이 없다.



“아이템 새로 사 줄 게.”

“그런 게임 아니거든.”

“승률게임이야? 져 줄게.”

“필요 없어. 이미 졌어. 한 번 올라간 데스는 내려오지 않아.”



눈알에 겹겹이 쌓인 증오는 걷힐 새가 없다. 손등을 관자놀이에 대는 것으로 겨우 시선만 가려냈다.



“표만 잡으면 해달라는 거 다 해줄 게. 됐지?”



그제야 불길 같던 온도가 서서히 낮아졌다. 대신 어떤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정도 없는 위험한 발언을 해 버린 것 같다.

변백현은 간혹 가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러 버리고는 한다. 도전에 있어서도 그렇고 성취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자로 따지면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방향이라 할 수 있겠다. 가끔은 무서울 정도다. 오늘부로 그 사례들 중에 손가락을 하나 더 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표를 얻어냈다. 도경수마저 실패한 일을 변백현이 이뤄냈다. 그것도 무려 한 방에 두 장이었다. 험악한 메시지가 성질을 돋우고 있는 중에 변백현이 말을 걸었다.



“이거 다 된 거 맞아?”



아까 네가 말한 대로 그냥 따닥 눌러서 따닥따닥했더니 이거 뜨는데. 그러면서 손가락을 열 개로 나눠 흔든다. 말은 참 쉽다. 나는 이뤄내지 못한 따닥따닥을 변백현이 알아들었으니 된 건가.

예매완료라는 글자가 낯설었다. 결제관련 문자까지 날아왔다. 표 두 장 값이었다. 완벽하게 달성해낸 것이다. 도경수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자 당장에 전화가 왔다. 자리 숫자를 읊어주니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얼마간 봐온 결과 이 반응은 그 어떤 것보다 격한 환호였다.

도경수가 추천한 대로 본무대에 가깝게 붙어있는 스탠딩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두 자리 숫자라는 부분이다. 이게 관람에 얼마나 크게 작용할지는 직접 느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도경수가 좋다고 하니까 좋은가보다 하고 있다. 변백에게는 굳이 티내지 않았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우쭐대고 있다.



“너 아까 해 달라는 거 다 해준댔지.”

“아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만 된다고 했는데.”

“입 다 물고. 밥 먼저 사줘.”



허기가 몰고 온 박력에 알아서 몸을 사렸다. 표가 온전히 내 손에 들어오기 전에는 뜻대로 해주는 게 맞다. 경솔했던 지난날을 그새 되돌아봐야했다. 끌고 왔던 그대로 끌려 나갔다.

값이 제법 나가 보이는 레스토랑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정말 여기 들어갈 거냐고 묻자 미소만 돌아왔다. 아주 환하고도 무시무시했다. 변백현이 평소에 얼마나 들이 붓더라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정도로 겁을 내선 안 되었다.



“안녕하세요.”

“어, 빨리 왔네.”



갑자기 들려온 인사말에 누구인가 했는데 그 때 본 그 애였다. 변백현 인맥 중 하나인 일본어과라는 후배였다. 이름까지는 기억이 안 났다.



“전에 봤지? 일어 과 오세훈.”



듣고 보니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목례도 했으니 알아서 가던 길 가기를 기다렸다. 헌데 멀뚱히 서 있다. 여기서 누구 만나기라도 했나싶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는데 따라 들어왔다. 세 분이신가요. 직원이 건넨 말이 아니었더라면 그마저도 몰랐을 거다. 네 놈이 왜 여기에 있냐는 마음을 품고 바라보자 변백이 끼어들었다.



“뭐든 해 주겠다며.”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뭐라 반박하지 못한다. 그래도 약속 안에 다른 이를 포함시켜도 된다는 말은 아니었다. 이놈이 표를 구해준 것도 아니고 카이를 만나게 해줄 건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이미 들어온 상황에 내쫓기도 민망했다. 종업원은 메뉴판을 양손으로 잡고 손가락을 고물거리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함께 자리를 잡았다.



“애가 마침 근처에 있다고 해서 부른 거야.”



어울리지 않게 변명을 하고 앉았다. 별로 내쫓을 기력도 없다. 알았다고 대충 손을 휘적거렸다. 더 이상 덧붙여봤자 피곤해지는 건 나 혼자다.

그제야 안심한 듯 메뉴판을 편히 펴 보인다. 가장 비싸 보이는 코스 요리에 덤으로 오늘의 와인까지 시켰다. 코스요리와는 별개로 돈가스도 얹었다. 내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음식들이다.



“이렇게 얻어먹기 죄송한데.”



그래도 눈치라는 건 있는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이에 대한 대답은 변백이 대신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오늘 얘 도와줬거든. 콘서트 예매하는 거.”

“콘서트요?”

“응, 아이돌 콘서트. 그룹 이름이 뭐였더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짚어내 주신다. 그다지 흥미 없어할 거라 여겼는데 이놈이 의외로 귀를 쫑긋 세웠다. 변백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쿡쿡 찌르며 고민했다. 아무리 쑤셔도 떠오르지 않는지 도움을 청했다. 직접 입에 올리는 건 무엇보다 낯이 뜨거워지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뒤로 빼자니 더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뻔뻔하게 행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적할 거라 지레 짐작한 것과 사뭇 다른 반응이 나왔다. 오히려 진지하게 고심하는 듯 턱을 쓸어 올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더욱 의외였다.



“그 그룹 인기 많은가요.”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제법 있을 거라 예상한다. 팬 입장이니 객관성이 떨어질 수도 있는지라 쉽사리 꺼내지 못했다. 끼어들기 좋아하는 변백은 이럴 때 꽤 쓸모가 있다.



“야, 장난 아니야. 예매 1초 만에 다 털렸대.”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그도 잘 알고 있는 듯하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고 작게 읊조렸다. 정보를 머리 한 구석에 저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무언가 질문을 하려는 듯 입이 열렸는데 종업원이 가까이오자 도로 닫혔다.

음식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안녕하지 못한 건 한탕 거하게 긁힌 카드 마그네틱에 한정되었다. 백현은 부푼 배를 통통 치며 얄밉게 웃었다. 티켓 두 장 값보다 더 나왔다며 후배 뒤에 숨어서 깔깔거렸다. 원래 같으면 팔을 꺾어버렸을 테지만 보는 눈도 있고 따로 해준 일도 있으니 꾹 참았다. 어찌되었든 덕분에 카이를 당당하게 보러갈 수 있게 된 건 사실이다.

이정도로 뜯어 먹히면서도 별 말없는 나를 후배 놈은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도 한심해 보이나 했는데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띄지 않았다. 정말 순수한 호기심 자체였다. 할 말이 있나 싶어 가만 응했는데 녀석이 보는 건 다른 곳이었다.



“선배, 지갑 없어요?”



주머니에서 꺼냈던 카드를 도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니 아무래도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사줄 것도 아니면서 괜한 관심이었다. 이제 겨우 잊어가던 참인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어딘가 간지러워 보이는 변백현이 움찔거렸다. 또 쓸데없는 말을 쏟아내기 전에 막아서야 했다. 손가락질 하는 놈 팔을 잡아 쑥 끌어왔다. 자기 세훈이랑 2차 가야된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 일절 무시하고 걸었다.

아무래도 알바를 구해야겠다. 수입원을 구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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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카이짱팬 아홉.

L2014. 7. 21. 05:31







09.






요 며칠간 수업도 열심히 듣고, 필기도 꼬박꼬박하였다. 강의를 처음 듣는 아이라도 내가 한 필기만 있다면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도경수에게서 문자가 와도 가지 않았다. 흔들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일정이 생기면 혹여 같이 가겠냐 꾸준하게 물어봐주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번 거부하면 더 이상 잡지 않고 무던히 넘어갔다. 점점 지날수록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그가 서운해 할지도 모른다. 아마 경수도 내색만 안했지 내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다양한 핑계를 댄다고 해도 그것하나 모를 정도로 그가 멍청하지는 않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도, 때문에 안에 들어있던 카이가 없어진 것도 다 벌이라 생각한다. 할 일조차 제대로 끝내놓지 않고 유희만 즐긴 데에 대한 가혹한 매였다. 받아들여야 한다. 우선 그렇게 마음먹었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카이를 스스로 피해 다니는 일은 에너지소비가 꽤 컸다.

강의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약속을 잡아 누군가를 만나도 전에 카이와 만났던 것만큼 흥이 오르지 않았다. 삶이 축축 쳐져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혼자서 고심했다.


오늘은 달이 없네. 평소에는 지나가듯 바라봤던 하늘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수업이 다 끝난 후에 술 마시러 가자는 말도 훌훌 털고 왔다. 어딘가에 놀러갈 기분이 아니었다. 천천히 과제나 할 생각이다. 어떻게 해서든 머리에 꽉 들어차있는 생각들을 죄 밀어내야 했다.

처량하게 걷는데 진동이 왔다. 별 생각 없이 일단 화면을 켰다. 리더 얼굴이 들어간 프로필 사진이 떡하니 들어찼다. 이따 있는 스케줄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미리보기 안에 둥둥 떠 있는 그에게 속으로 사과를 건넸다. 차마 대화방에 들어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온몸이 피곤했다. 휴대폰은 다시 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어버렸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도중 깊이 넣어둔 폰이 또 울렸다. 이번에는 진동이 조금 길었다. 이 시간에 마땅히 전화 올만한 곳은 없다. 도경수일지 모른다. 메신저 답장을 하지 않았다고 이러나싶다. 원래 이렇게 집착을 하는 아이가 아니기에 더욱 고민이 되었다. 스케줄 갈 타이밍은 이미 지났다. 그럼에도 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자리에 굳어 섰다. 주머니에 손은 넣은 채로 인도 가운데서 한동안 머릿속을 정리했다. 진동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먹색 바람이 귓속을 후볐다. 이렇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수신 거부라도 하자 싶어서 빼냈는데 처음 보는 번호가 찍혀있었다. 지역번호 02였다. 스팸전화가 원래 저녁에도 오던가.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기에는 무언가 께름칙한 기분이다. 도경수 전화라고 생각했을 때보다 더 불안했다. 일단 받았다. 스피커 안쪽은 어딘지 차분하면서 활달한 여성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박찬열 씨 되시나요?]

“네에? 네, 맞는데요.”

[아아, 안녕하세요. 여기는 **라디오입니다. 전에 사연 써주신 거 있죠. 그게 오늘 생방송 중에 소개되고 전화연결도 하려는데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에? 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짧게 설명 도와드릴게요.]



가녀린 목소리가 여러 문장을 단박에 읊었다. 귓가에서 속삭여지는 이 말들이 전부 꿈이 아닐까 되씹었다. 착실히 대답은 하고 있어도 전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얼른 사람이 없는 길로 빠졌다. 혹시나 말을 조금이라도 놓칠까싶어 손가락으로 한쪽 귀를 막고 다른 쪽에는 스피커를 최대한 붙였다. 작가 분 역시 되도록 느리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저쪽에서는 보이지 않을 텐데 대답과 함께 고개까지 연신 끄덕였다.


간단히 말하면 보내주신 사연을 즉석에서 상황 극을 해주시면 돼요. 호흡이 잘 맞을 것 같은 게스트를 골라서 주고받는 거죠. 상대는 지금 미리 선택해주시면 되는데 오늘 게스트가,

목소리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도 역시 라디오 담당 작가라 그런지 3초를 넘기지는 않았다.

OXE에요. 다 나오는 건 아니고 세 명이에요. 그들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일부러 노려서 사연을 썼다는 것을 작가님은 모르시겠지. 아무래도 성별이 서로 겹치다보니 이들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 여긴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말 큰 오산이다. 다만 예상 범위 밖이라면 생각해두었던 멤버와는 다르다는 부분이었다. 정말 아쉽게도 종인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앞서 닥치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대화를 이어나가다 어떤 말이 불쑥 튀어나갈지 짐작하기 어렵다. 사고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꾸는 남자다.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세 명 중에서 내가 선택할 멤버는 정해져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수호요.”






연락이 온 라디오 방송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언젠가 도경수에게서 팁을 받고 간신히 사연을 써냈던 곳이다. 당연히 언제 방송이 시작되는지도 알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거의 한 시간정도 남긴 시점에 걸려온 것이다. 만약 학교가 끝나고 변백을 따라 술집에 갔으면 미처 받지 못했을 전화다. 곧장 집으로 가고 싶던 예감이 이렇게 통하다니. 완전 빙고다. 여태 죽어있다 여겼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열심히 할 일 하니까 없던 복도 굴러오나 보다. 콧김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작가님 말로는 유선전화로 해야 끊이지 않고 수신율이 좋다고 했다.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쓰지 않았으면 기억이 안 났다. 삐걱거리는 머리에서 겨우겨우 끄집어냈다.

요새 다들 각자 몫을 가지고 다니니 어느 순간 유선전화는 한쪽으로 치워졌다. 거실 외에 전화 콘센트가 있는 곳, 바로 내 방으로. 방을 정할 적에 전화선이 있다는 이유를 들며 누나보다 좁은 곳에 배치되었던 걸 이제야 감사히 여긴다.



방문을 잠그는 절차까지 무사히 마쳤다. 가방을 던져놓고 일단 침대에 몸을 맡겼다. 오랜만에 먼저 도경수 대화창을 밝혔다. 덕분에 라디오 사연 당첨이 되었으니 선물 받게 되면 주겠다고 썼다. 기다렸다는 듯이 숫자 1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도경수는 메신저를 상시 켜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앞서 말풍선이 여러 개 오고간 창을 멍 뜨고 보다가 서서히, 또 분명하게 등줄기가 싸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대체로 확인과 동시에 답을 주던 그였다. 이런 반응은 익숙하지 않다. 스케줄은 같이 안 간다 했으면서 뜬금없이 이렇게 보내오면 화가 나려날 일이다. 어떤 일정인지는 써놓지 않았지만 정황상 그가 간 곳은 이 라디오다. 오픈 스튜디오에 간 것이 분명했다.

생각이 짧았다. 그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괜히 수호를 선택했다. 도경수가 정성을 쏟고 있는 리더 형이다. 자신이 준 도움으로 당첨된 사람이 그런 그와 도란도란 야야기를 나눈다면 어떤 기분이 드려나. 상황을 바꿔서 상상해 보았는데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입술이 좁게 들어차 살이 자꾸 씹혔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도경수를 만나서 전화 몸통을 대신 쥐어 주어야하는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핸드폰 화면 위에 뜬 시각은 이제 방송 삼십 분 전을 가리킨다. 순간 이동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주절주절 변명을 얹어 미안하다는 문장을 바삐 써내다 멈췄다. 창을 다 닫아내 침대 한편으로 밀어두었다. 이 시점에서 사과해봤자 더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다. 대자로 뻗어 전등 불빛만 줄기차게 바라보았다. 눈알이 시려와 손바닥으로 가렸다.

이제와 멤버를 바꿀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안한다고 할 수도 없는 사정이었다. 그가 어찌되었건 주어진 일이니만큼 밀어붙여야 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엄지손톱을 물어뜯고 있어 바지 선을 따라 슥 닦아내었다.

정말 간만에 듣는 전화울음 소리가 방 가득 퍼졌다. 혹시나 집 안 곳곳에 퍼져있는 가족들이 들으면 의심할까 신속하게 받았다. 사실 몇 분전부터 무릎 꿇고 대기 타고 있던 덕에 반박자도 채 못 울고 끊겼다.

안쪽에 있는 상대는 아까와 같았다. 방송에 들어가기 전 알아두어야 할 주의사항을 마지막으로 말해주었다. 그리 어려운 말들은 아니었지만 잔뜩 들떠 이해에 시간이 걸렸다. 바로 연결이 될 거고 사이에 이미 음성이 들어가니 디제이 쪽에서 멘트 넘길 때까지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하세요.”



긴장이 된다. 긴장돼서 팔짝 뛸 노릇이다. 두 손으로 수화기를 꼭 잡았다. 자꾸만 손에 땀이 차서 떨어뜨릴까 걱정되었다.

작가 목소리가 끊기는가 싶더니 속에서 라디오 현장이 펼쳐졌다. 주인은 능숙한 진행으로 손님들을 소개하였다. 그들도 항상 하던 인사법으로 처음을 밝히고 하나씩 자기소개를 이어나갔다. 세 명뿐인데도 쾌활하여 꽉 찬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오직 전파를 통해서만 들어오던 일들인데 지금은 아니다. 여기서 입만 열면 저들과 얼마든지 대화를 할 수 있다. 이게 정말 현실이 맞나싶어 그새 몇 번이고 확인했다. 중지를 뒤로 꺾었다가 시계를 보면서 눈을 끔뻑댔다. 책상 끄트머리에 있던 펜을 쥐어다 허벅지도 찔렀다. 진득한 아픔이 방금 전 가격에 의해 모세혈관이 터졌음을 알려주었다. 다행이다. 꿈이 아니다. 온전한 지금이었다. 헛기침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이야기꽃이 오가다 마침내 순서가 넘어왔다. 저곳에 있는 디제이를 포함한 다섯 사람이 온통 나에게로 신경을 꽂았다. 안녕하세요. 딱 그 한마디에도 소란이었다.



“전 당연히 여성분일 줄 알았어요.”



멤버 중 한명이 높은 톤으로 당황을 표했다. 다들 동의한다는 뜻을 담아 말을 건네 왔다. 전부다 아까 작가님이 조언해주신 대로였다. 이렇게 대화가 이어 나갈 것이라며 써냈던 사연에 대해 짧게 설명해주면 된다고 했다. 그분이 말하기도 사연 자체가 워낙에 소녀 감성이어서 남자인 걸 알고서는 놀랐다한다. 고등학생 때 일을 써냈으니 당연하다. 제법 미화가 됐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자기소개를 한 뒤로는 자세한 기억이 사라졌다. 모든 통화를 마치고 다시 작가에게 연결된 건 확실했다. 잘해주었다면서 홈페이지에 따로 주소를 남겨주면 선물을 보내주겠다고는 다음에 보자는 말과 함께 끝났다.

온전한 전화 형태를 한참 내려다봤다. 방금 전까지 저걸 귀에 대고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들어서 다시 대보았다. 뚜우 하는 일정한 소음만 이어졌다. 끊어진 게 실감이 안나 얼마동안 정신을 날린 채로 있었다.



어쩐지 다리가 저려온다 싶었는데 몇 십 분 넘게 한 자세였다. 공손하게 꿇어앉았던 무릎을 폈다. 뿌드득하며 경련이 올라왔다. 이제야 고통이 제 자리를 찾아온다. 전화를 거실에 다시 가져다 놓는 건 뒤에 하기로 했다. 어차피 따로 유선전화를 찾는 사람은 없어서 괜찮았다. 느긋이 할 것이라 다잡고 일단은 몸을 일으켜 침대로 뻗었다. 가뜩이나 찌릿한데 고동이 심하게 울려 두 다리까지 떨림이 전이되었다. 몇 걸음 못 걷고 풀썩 주저앉는 걸 그냥 네 발로 기었다.

푹신한 이불에 몸뚱이를 쭉 펴 붙이자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입을 가만 벌리고 천장만 바라봤다. 전등 불빛은 아까와 별 다를 바 없이 밝았다. 그럼에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어두워져버리면 그나마 있던 잔상조차 흐트러질 것 같았다.

수호와 했던 대화들을 찬찬히 정리해나갔다. 서두르지 말고 느긋하게 떠올려야한다. 잘못 앞서 나갔다가는 통째로 어긋날지 몰랐다.



써낸 사연 줄거리에 맞춰 그들이 읽어주는 객관식보기 중에서 직접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주어진 주제는 ‘내가 만약 그 때 고백을 했었더라면’. 누구를 좋아했고, 얼마나 표현했으며 아쉬운 정도가 얼마인가가 심사 기준이랬다. 프로그램에서는 이후 상황을 만들어주어 당시에 못 다한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었다.

그렇다, 고백. 난 고등학생 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을 여태 가지고 있었다. 쉽게 한 단어로 그 감정을 규명하자면 첫사랑 정도가 가장 알맞다. 제대로 표해보지도 못하고 끝난 그 때였다. 달리 후회는 하고 있지 않다. 아마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고백 따위 꿈도 못 꿀 것이다. 이건 성격 문제이기 전에 상대와 나 사이에 놓인 관계성에서 먼저 틀어졌다.

난생 처음으로 가슴 아린 경험을 겪게 해준 그녀는 문학 담당 선생님이었다. 상대가 선생님인 것이 소녀감성이라고 불린 이유였다. 선생님 역할은 먼저 선택한대로 수호가 해주었다. 예능이 섞여 당연히 장난기 가득한 상황 연출을 만들었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못했다. 복합적인 이유였는데 단연 문제가 되는 것은 라디오를 듣고 있을 도경수 때문이었다. 지우려 애써도 수호와 말이 오갈 때마다 머리에 떠오르는 인상이 날로 거세졌다. 오픈 스튜디오 유리창에 달라붙어있을 흰 자 가득한 눈알이 선했다.

생각해보니 이 때문에 보기도 제대로 못 들어 두 번이나 되물었다. 귀찮은 놈이라 여겼을 것이다. 멤버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줬어야 하는데 망했다.



하얗게 번뜩이는 전등 한가운데가 점차 까맣게 뭉그러져갔다. 기억 끈이 두피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었다. 그리고 또 뭐라 했더라. 무슨 말만 해도 계속 까르르하는 웃음소리만 들렸다. 수호 웃음 톤만 정확하게 떠올랐다.

아까 침대 구석에 던져두었던 핸드폰을 더듬어 찾았다. 알림 라이트가 번쩍번쩍 제 위치를 알리고 있었다. 메신저 아이콘과 함께 뒤집힌 빨간 수화기 모양이 같이 찍혀있다. 부재중 내역부터 별 생각 없이 훑었다. 디귿으로 시작하는 이름만 아니었더라면 바로 취소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현재 시간을 보니 연락이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얼른 화면을 오른쪽으로 그어 통화 자세에 임했다.



“여보세요?”

[뭐해.]



오랜만에 도경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솟았다. 그간 뭉쳐놓고만 있던 미안한 마음이 한순간에 줄줄 쏟아졌다. 경수야, 미안해. 내가 진짜 미안해. 담겨있는 말들을 전부 뿜어낼 때까지 건너는 고요했다.



[괜찮아.]



콧물 찔찔 짜며 낸 사과가 민망할 정도로 아주 짧은 답이었다. 도경수라서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그래서 더욱 허무했다.



[리더 형한테 나 띄워줬잖아.]



맞다.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다. 하하호호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 묻는 데 계속 눈앞에 떠 다니던 이름을 먼저 말하고 있었다.



“도경수요. 아니, 저 그게 얘가 제 친구인데요 수호 형을 진짜 좋아해요. 네, 진짜로. 지금 오픈 스튜디오에서 보고 있거든요? 아마 얘가 지금 수호 형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예요.”



무작정 던져놓고 난 바로 작가에게 다시 연결이 되었다. 그렇게 지금이다. 경수가 어떻게 받아냈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꿈과도 같아서 줄곧 정신을 잃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리고 진짜 고마워. 우리 평생 가자.]



너무 뜬금없어서 뜻을 알기 어려웠다. 확실한 건 살짝 격앙된 음성이었다. 무어라 답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가싶더니 끊어졌다.

사과도 받아준 데다 도리어 고맙다고까지 했다. 무엇보다 평생 가자는 말이 가장 마음에 꽂혔다. 눌려있던 부담에서 풀려난 해방감이었다. 다 좋았지만 대체 왜 이러는지 쉽게 이해가 안됐다. 분명 전화가 끊어진 뒤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 여기고 서둘러 핸드폰 인터넷을 켰다.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실시간 검색어 창에 유독 급격하게 솟아오른 단어가 있었다. 수호 공개고백. 저게 왜 떠 있는지 꼭 알 것만 같아 더욱 충격이었다. 단 2어절만으로 모든 상황이 그려졌다. 이건 분명 도경수가 뭔가 일을 치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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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카이짱팬 여덟.

L2014. 6. 1. 03:20

 

 

 

 

 

08.

 

 

살아오면서 누나와 함께했던 추억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나마도 사진을 보고나서야 아, 우리가 여기도 갔었고 저기도 갔었지 하는 정도다. 머리에서 골라 찾다보면 누나만 상황에서 쏙 빠져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기억 저편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누나는 다소 폭력적이었다. 남자 아이는 엄히 다스려야한다는 말을 때릴 때마다 했던 것 같다. 가늘고도 하얀 손바닥은 멀리서 인사할 때 보는 것보다 등짝을 휘두를 적에 더 자주 맞닥뜨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많이 보는 일은 누나가 내 물건을 빼앗아갈 때였다.

분명 엄마는 나와 누나 한 명씩에게 간식을 나누어주셨다. 엄마가 등을 돌리고 단둘이 남게 되면 절로 긴장이 되었다. 미처 판단을 세우기도 전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난 바닥에 나가떨어져 있었다. 분명 내 손에 들려있어야 할 간식 역시 누나 아귀에 잡혀있을 때가 다반사였다.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으면 누나는 의기양양하게 내 몫의 과자 봉지를 먼저 뜯었다.

상냥한데다 양보를 잘하는 누나란 나에게 환상과도 같았다. 쭉 이어져 온 작은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만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든 지금에 와서 내가 누나 방을 뒤지는 건 합당하다.

 

누나가 그것을 버렸을 리 없다. 분명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버리지 않았음이 확실한데 책상과 침대 밑을 다 훑어보아도 발견하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서랍장을 열었을 때 형형색색 속옷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 바람에 서둘러 닫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방금 내 모습을 아무도 본 사람은 없겠지.

이렇게까지 구석구석 뒤졌는데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필시 품속에 꽁꽁 감추고 다니는 것이다.

두피에 땀나도록 누나 방을 뒤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때 홀랑 가져간 카이 포토카드가 필요하다.

처음에 샀던 열 장 중에서 유일하게 든 바로 그 카이를 원한다. 도경수에게서 카이를 받아냈는데도 왜 이리 찾고 있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도경수와 교환했던 카이가 사라졌다. 납치에 이어 이번에는 미아가 되었다. 물론 갑작스레 사라진 게 아니다. 더 정확히 짚어 말하면 잃어버렸다. 그를 넣고 다니던 지갑을 통째로 잃었다. 장소는 아마 공항으로 짐작한다. 소개녀와 카페에 있을 때까지는 있었다. 공항에서 카이에게 줄 음료를 살 때도 계산을 안전하게 마쳤다. 아마 음료 병에 붙일 쪽지를 쓰면서 의자에 두고 온 듯싶다. 개찰구 앞에서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공항으로 달려갔지만 있을 턱이 없었다. 도경수에게 카이가 인사해줬다고 주절주절 자랑할 때까지가 제일 행복했다. 그는 조용히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제 계 많이 타려고 액땜했나보다. 그 말은 날 더욱 울적하게 만들었다.

안에는 내 삶의 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학생증, 체크카드, 신분증, 현금 등등. 그 중 어떤 것보다도 카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시켰다. 지갑 깊숙이 웅크리고 앉아 내가 찾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카이가 상상되어 코가 시큰했다.

신분증이나 체크카드는 다시 발급받으면 된다. 지갑은 사면된다. 돈은 벌면 된다. 하지만 카이는 아니다. 한번 떠나간 카이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려면 많은 여정을 거쳐야했다. 지금도 다른 카이나마 찾아보지만 없지 않은가. 앨범 몇 장을 더 사야 그가 나올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상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샀는데 오히려 안 나오면 슬픔만 가중될 것이다. 잃어버린 물건 다 필요 없으니 카이만 돌려달라고 제발 사정하고 싶었다. 그게 진짜 어떻게 얻은 카이인데... 9장을 바쳐 소환한 귀중한 몸인데... 가능하다면 누나가 주는 쪽이 가장 빠르겠지만 가장 불가능한 확률이다. 무엇보다 직접 말을 꺼낼 용기가 부족했다.

10장중에 겨우 하나 들어있던 카이를 나에게 돌려주지 않을래, 누나?

들어줄리 만무하다. 턱도 없다.

 

 

내 방으로 돌아와 이불 위로 뻗었다. 들썩하는 매트리스 먼지를 코로 전부 흡수해내고 입으로 크게 뱉어냈다. 주책없이 눈가가 뜨겁게 차올라서 베개를 꾹 집어 얼굴을 파묻었다. 한이 최고치에 달했다. 소리라도 질러야 풀릴 듯하다. 아무나 잡고 속사정을 털어놓고 싶다. 왜 아무도 내 슬픔을 몰라 주냐고 목 놓아 울부짖고 싶다. 이건 카이가 와도 못 들어준다.

카이 너는 카이 포토카드 있니. 공허한 마음 속 외침은 이곳에서만 공명했다. 만약에라도 꿈에 나온다면 그때 물어봐야겠다. 너는 네 얼굴이 박힌 포토카드를 얻어냈느냐고. 있다면 나 좀 주지 않겠느냐고.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을 것 같으니 술이라도 한 잔 해야겠다. 오늘도 이렇게 인간 박찬열은 한 단계 더 강해졌다.

 

 

 

 

 

결국 카이는 꿈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멤버가 나왔다. 꿈속에서 우리는 아주 절친이었다. 굉장히 신나게 이야기하고 놀았는데 깨어나니 장면들이 전부 뭉그러졌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니 까먹어도 상관은 없다. 근래에는 카이가 출현하는 빈도가 뚝 떨어졌다. 위험을 감지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팬들 꿈에도 다니느라 카이가 많이 바빴는지도 모른다. 다른 이라도 나와서 꿈자리를 빛내주었으니 분실한 포토카드에 대해서는 얼른 잊어야겠다. 다른 멤버가 나온 것도 어떻게든 달래주려고 그런 것이라 스스로 다독였다.

체크카드는 죄다 정지해 놓았고, 일단 지금은 공강 시간을 이용해 학생증 재발급을 받으러 가는 길이다.

입 주변에 슈크림을 덕지덕지 묻히며 함께 걷고 있는 변백현은 구시렁구시렁 말도 많다. 빵이 잔뜩 들어차 있어 뭔 소리를 하는 것인지 직접 맞춰야했다. 그가 하려는 말은 대충 이랬다.

 

 

“졸업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웬 재발급.”

 

 

하기야 이 시점에 학생증 하나 잃어버렸다고 재발급 받는 것도 웃기다. 하지만 그거라도 있어야 졸업하고서도 내가 대학생이었다는 증거 하나 남기는 거 아닌가. 그래서 집에 중고등학생 때 학생증도 다 보관해 놓고 있다. 그것은 내가 그 시절을 지나왔다는 하나의 흔적이다.

굳이 구구절절 말하지는 않았다. 학생증이 있어야 대학생 할인을 받지. 그렇게 말했더니 혀로 슈크림을 날름 훔치며 고개를 주억댔다.

 

 

“야, 그런데 너 1학년 때 학생증 발급받으면서 거기다 핸드폰 번호 적어놓지 않았냐?”

“맞아.”

“그럼 누가 주워서 연락해주지 않을까?”

 

 

작게 반짝이는 눈에 나도 덩달아 헉했다가 곧바로 기대를 지웠다. 학생증은 꽤 안쪽에 끼워놓았다. 누군가 주웠더라도 그렇게 깊게는 찾지 않을 것이다.

 

 

“그럼 벌써 왔겠지. 근데 이미 하루 지났잖아.”

 

 

핸드폰 화면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고 한숨을 훅 내쉬었다. 잊으려고 했는데 자꾸 머리에서 아른거린다. 그래도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 한다. 곁을 떠나간 지갑이다. 지갑 가져간 사람님, 현금은 얼마 없지만 그거 다 가져가시고 카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추신, 지옥 가세요.

신청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쪽 담당자도 날 이상하게 보는 듯하였다. 이때쯤에 학생증을 새로 만드는 사람은 거의 드문데. 작게 말했지만 분명 들으라고 한 것이었다. 혼잣말이라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컸다. 내 학생증 내가 다시 만들겠다는데 타인들이 나서서 이리저리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저 허허 웃었다. 어쨌든 신청은 금방 끝냈다. 다음 주에 찾으러 오란다.

다음 강의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은 터라 주변을 돌았다. 그렇게 지겹게 다녔던 학교 캠퍼스인데 곧 졸업이라 생각하니 공기가 남다르다. 중간고사 학점을 개떡으로 빚어놓아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햇빛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게 제법 따갑다. 구름이 미처 가려주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쪼여온다. 기말고사는 기필코 잘 봐야지. 둥글납작한 변백현 뒤통수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 다 먹은 슈크림이 아쉬워 쩝쩝 입맛을 다시던 그는 내 손길에 경기를 일으켰다.

 

 

“야, 맞다 너 현이랑은 어떻게 됐어?”

 

 

아래로 축 쳐진 눈매를 슬쩍 올리며 묻는다. 이 반응을 보니 그날 내가 그녀를 두고 나간 일을 모르나보다. 지현이는 나름 입이 무거운 사람인 것 같다.

 

 

“착해 보여.”

 

 

대화하면서도 느꼈었다. 혹여나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질까 쉼도 없이 주제를 꺼내는 그녀였다. 당시에는 머리에 카이밖에 없어서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했다.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더 잘해주어야겠다. 물론 변백현이 원하는 관계가 아닌 하나의 인연으로만.

 

 

“미적지근하네. 별로였어?”

“조금 갑작스러웠잖아.”

“원래 인생은 갑작스러운 거야.”

 

 

넉살 좋게 등을 퍽퍽 치면서 웃는다. 이 말에는 동의한다. 원래 모든 것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기회라고 부른다. 준비가 되어있는 자라면 무난히 받아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놓쳐버릴 것이다. 내가 받아낼 기회와 그렇지 않을 기회는 어떤 것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보면 사건이 벌어지기 전,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어떠한 복선을 깔아주기 마련이다. 내 인생에서도 그러한 복선을 알 수 있다면 그건 과연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다. 하루에도 수백 명과 스쳐지나가고 사소하게 여기는 작은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지금은 한없이 먼지 같은 일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불어날지 현재에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변백현에게 등을 계속 얻어맞으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우다다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공상에서 깨어났다.

 

 

“백현이 형!”

 

 

키가 훤칠한 청년 하나가 변백현 어깨를 잡아끌어 등에 풀썩 올라탔다. 약간 경사진 땅이라 그는 당연히 휘청거렸다. 둘러진 팔을 움켜잡고, 넘어지지 않으려 빠른 걸음으로 저 밑까지 내려갔다. 매질하던 손이 없어져 휑해진 등이 어색해서 슬슬 쓸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청년은 밑에서 아직도 그에게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변백현보다 훨씬 컸다. 의지의 변백현, 용케 엎어지지 않는다. 느긋하게 뒤를 따랐다.

무거우니 이만 떨어지라는 외침에도 청년은 꼭 붙어있다. 두 다리는 이제 땅에 곧게 대고 있었으나 고개를 완전히 꺾어 관자놀이로 변백현 정수리를 누른 자세로 섰다. 눌려있는 꼴이 땅에 푹 박힌 것 같아 우스웠다. 홀로 팔짱을 끼고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든지 미간을 쿡 쑤시고 있다. 성가셔하는 듯 보였다. 허나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가까이 다가온 날 발견했는지 청년은 변백현을 쿡쿡 찔렀다. 하고 많은 곳 중에 볼을 찔리니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는 작은 심호흡 끝에 순식간에 다리를 접었다. 정수리 위에 온 무게중심을 싣고 있던 청년은 텅 비어버린 공간에 의해 옆으로 쏠려 한쪽 발로 한참을 낑낑거렸다. 눌려있던 정수리를 가볍게 툭툭 털어낸 변백은 히죽 웃었다.

변백현은 나 모르는 새에 인맥을 참 많이도 만들었다. 나를 짤막하게 같은 과 친구라고 소개했다. 매섭게 생긴 눈알이 아주 빠른 새에 날 머리끝부터 발까지 훑어 내렸다.

 

 

“はじめまして、セフンです.”

 

 

당연히 ‘안’으로 시작하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하’였다. 예상과 너무도 틀어지는 말이었다. 언어 자체가 이쪽이 아니었다. 다행히 기초적인 일본어라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방금 이 사람은 처음 뵙겠습니다, 세훈입니다라고 하였다. 끔뻑끔뻑 쳐다보다가 내가 먼저 오른손을 선뜻 내밀었다.

 

 

“찬열데스.”

 

 

전에 변백현이 같이 붙어 다닌다는 일본어과 아이가 얘였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눈을 세모모양으로 뜨고 있던 세훈은 내 반응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이내 내민 손을 툭 잡아 아래위로 재빨리 흔들었다.

 

 

“신선하네요.”

 

 

얼마 후, 이어져있는 손을 변백현이 툭 끊어냈다. 한쪽 팔을 쭉 끌어내 세훈을 길 한복판에 세워두었다.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버럭버럭 언성을 높였다. 할 일없이 나타나서 민폐 끼친다고 꾸중을 한다. 저렇게 형다운 말을 하는 변백은 낯설었다. 항상 뭐하나 빠진 듯이 행동하는 그가 저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아 나름 진지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말을 받아내는 후배는 생글생글 웃고 있다. 똑바로 안 듣는다고 정강이를 차는 것까지 보고나서 자리를 떴다.

세훈같은 유형은 처음이라 당혹스러웠다. 옆에 일행이 있는 것을 보고도 잡아채가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슬슬 걸어가다 보면 다음 강의 시간에 대충 맞겠다. 변백현은 뭐, 알아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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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2014. 5. 29. 20:27

 

 

 

 

07.

 

 

변백현은 애초에 소개를 목적으로 만남을 조장했던 것이다. 응해줄 생각은 있다. 나에게 바라온 것은 더 깊은 관계성이겠지만 꼭 연인에 관련되어 생각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그럴 생각조차 없다. 사람 하나에 엮여있는 관계는 무궁무진하다. 지금처럼 누군가가 이어준 만남이 생길 수도 있고, 오랫동안 보아온 친구, 뜻이 맞는 일행,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어딘가에서 이상형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게 설사 브라운관 속이라고 할지라도. 만나기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찾아가야 할지라도.

마음이 너무 초조했다. 무의식중에 손톱을 물어뜯으려하기도 했다. 시간은 야속하게 죽죽 흘러갔다. 가능하다면 못으로다가 박아놓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건 진즉에 포기했다. 얼추 맞춰서 공항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 8시 34분, 출발해야 한다. 어찌나 불안했으면 다리가 달달 떨렸다. 대화중이라 차마 어쩔 수 없이 얼굴은 웃어야했다. 상대가 포크라도 떨어뜨렸으면 줍다가 제법 소름 끼쳐했겠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는데 사실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동반사적으로 호응이 나간다. 무엇에 대해서 말을 하면 아 그렇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정도로 대꾸를 하였다.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탓도 있다. 다행히 그녀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만, 여보세요."

 

 

간신히 물 마시는 중간이 생겼을 때 진동이 연속적으로 울렸다. 이 시간이라면 당연히 도경수다.

 

 

[너 어디야? 사람 엄청 많아. 들어올 수 있겠어?]

 

 

조용한 카페 안에 퍼진 스피커 음량이 컸다. 지현이는 빨대를 입 안에 담고 얼음을 돌돌 굴렸다. 무관심한 양 시선을 피해준다. 서둘러 줄여놓고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너는?”

[나는 이쪽 귀국장 문 앞에 있어. 아씨, 야 잠깐만 이따 전화할 게.]

 

 

웅성웅성 소리에 파묻혔지만 어떤 말인지는 이해했다.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최대한 미소를 지어야 한다. 그녀는 한번 쪽 빨아올린 음료를 삼켜내고 올려다보았다.

 

 

“미안, 중요한 사람이랑 만나야 해서 먼저 갈게. 커피 잘 마셨어."

 

 

여기서 말하는 중요한 사람이란 물론 김종인이다. 지현이는 살짝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너무 다급하게해서 그녀가 내 말을 이해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가방을 매지도 못하고 든 채로 뒤도 보지 않고 달렸다. 지하철? 버스? 아직 퇴근시간이랑 겹치는 때다. 그러면 역시 지하철이 낫겠지. 짧은 새에 최단경로를 파악하고 발을 꺾어 돌아나갔다.

 

 

 

 

 

카드를 찍는데 지하철 들어오는 음성이 들려 서둘러 계단을 뛰어내렸다. 두발을 동시에 짚어놓자마자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들숨 날숨이 한데 엉겨 거친 콧바람을 만들었다. 까만 눈알들이 도록도록 굴러왔다. 얼른 몸을 돌려 섰고 가슴을 크게 들었다 놓았다.

최신통화목록 제일 위에 있는 이름을 옆으로 밀었다. 통화음은 역시나 재미없는 기본이다. 얼마 후 뚝하고 통화음이 끊겼다.

 

 

“나 탔어.”

[어, 알아서 뚫고 와.]

 

 

자기말만 내뱉고 통화가 단절되었기에 이 자식이? 싶었는데 메신저로 사진이 우르르 전송되어왔다. 사람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몰려있다. 아직 9시정도밖에 안됐음에도 엄청난 인원이다. 도경수 쯤은 거뜬히 파묻힐 수준이었다. 그 역시 근래에 이렇게까지 많이 몰린 적은 없다고 한다.

도착해 올라가는 길에 역시 같은 이유로, 비슷한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리들은 서로 견제하느라 발을 바삐 움직였다. 나 역시 견제는 되었지만 그들을 따라가지는 않았다. 아직 준비할 과정이 남아있어 화장실로 빠졌다. 가방 끈에 걸려있던 스냅백과 안에서 홀로 방황하던 알 없는 안경을 꺼냈다. 이럴 용도는 아니었는데 맞게 쓰니 나름 신변보호는 된다. 아무렴 맨 얼굴인 것보다는 낫지.

국제선 귀국장으로 가보았다. 하나둘 방대하게 펼쳐진 사람 머리통들이 보였다. 저들 중에 도경수를 찾는 건 무리다. 나름대로 방안을 모색했다. 얼쩡거리는 도중 진동이 먼저 울렸다.

 

 

[어디야.]

“다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들어갈 것 같아.”

[하긴.]

 

 

뒷말을 더 잇지 않아 한동안은 주변 잡음만 잡혔다. 침묵은 금방 깨졌다.

 

 

[그럼 너 그냥 밖에 나가있어. 어차피 차타고 이동해야 되니까 거기로 갈 거야. 주차장 쪽이나... 아, 아니다 그냥 거기 있으면 시간될 때 우르르 몰려올 거야. 차든 사람이든.]

“너도?”

[응, 이겨라.]

 

 

밀지마세요! 하는 한 여성의 비명과도 같은 괴성이 스피커 너머에서 들리다 통화는 또 다시 끊겼다. 얼핏 너나 밀지마라는 낮은 목소리와 육두문자가 쏟아진 것도 같다. 저쪽은 많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다소 흐지부지 끊났지만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은 정확히 들었다. 뭘 이기라는 것인지도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그래, 이기자. 주먹을 꾹 쥐고 눈을 크게 떴다.

 

멤버들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금방 그쪽으로 갈 테니 차 근처에 알아서 잘 있으란다. 지금에서는 그것보다 어려울 일이 없었다. 도로 안쪽에 밴을 포함한 다인승 승합차 3대가 줄지어 붙었다. 어린 사람들은 앞옆뒤 덕지덕지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살기위해 물러서야 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공항 내부에서부터 사람들이 파도처럼 떠다녔다. 가히 아수라장이었다. 그들이 나타나는 공항이 이정도로 살벌한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겠다. 난 그저 카이가 보고 싶을 뿐인데 왜 이래야하지. 문득 현재 상황을 되짚게 되었다.

그를 보고 싶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결론을 깔끔하게 매듭지었다. 그러자 방금보다는 이곳에 있어야한다는 마음을 먹기가 훨씬 수월하였다.

그를 위해 음료수 하나를 샀다. 자주 먹는다고 전에 종종 언급했던 음료다. 옆에 접착식 메모지도 붙였다. 글귀도 몇 자 적었다.

 

 

카이야, 오랜만이야. 안전히 한국에 돌아온 걸 환영해. -카이짱팬

 

 

양 팔다리에 소름이 돋아나도 괜찮다. 어차피 읽어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받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보다 어림에도 양심 없이 항상 존칭어에 형이라고 불렀는데 오늘은 변장을 해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름을 쓸까 말까하다 그냥 안 썼다.

 

 

밤바람이 불 때마다 온몸이 오스스 떨려왔다. 역시 집을 들렀어야했다. 일교차가 심한 지금에는 저녁 시간 때 맞춘 옷이 필요하다. 한 시간 넘게 밖에서 찬 음료를 들고 서 있다 보니 추위가 전신으로 휘감겼다. 이 얕은 질환이 낫는 법은 비교적 쉽다. 카이를 보면 된다. 그러면 춥지 않다. 이건 정말이다. 과학적 고증은 들 수 없지만 카이를 보면 바로 전까지 느끼고 있던 고통이 싹 잊힌다.

안에서 겹겹이 싸여 둥근 무리를 이루던 사람들이 마침내 대이동을 하였다. 눈치가 있다면 알아챌 수 있다. 이정도 파급력을 가진 것은 그들이다.

유리문이 열리자 플라스틱 팩에서 쏟아진 젤리처럼 까만 머리통들이 몰려나왔다. 웅성대기만 했던 소음에 몇 배가 그곳부터 물밀 듯 퍼졌다. 틈바귀에서 간신히 솟아난 살구 색을 보니 마침내 익숙한 얼굴이다. 아직 깊숙이 들어서있었지만 짙은 인상을 가진 이 역시 번듯하게 떠올랐다.

 

카이다. 발이 먼저 움직였다가 생각을 한 후 뒤를 돌았다. 보이는 것보다 멀다. 저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가까이 오기위해서는 나라도 길을 터야한다. 딱히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다.

차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나왔다. 이어져있는 인도에 서서 자리만 지켰다. 몇 발자국 차이인데도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다르다. 저기는 너무 꽉 막혀있었다. 밖인데도 답답했다. 그 속에서 사방으로 꽉 눌려있는 저들은 얼마나 더 숨이 막힐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뭉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뒤에서 보아도 알 수 있다. 밀치고 밀쳐지는 저들 사이에서 표정이 많이 어두워져있다. 번져 나오는 분위기 자체도 시커멓다. 그저 보고 싶어서 왔을 뿐이다. 하지만 저런 모습을 보려고 온 건 아니다. 밝게 웃는 얼굴이 가장 좋다. 웃어주었으면 한다. 가까이에서 그저 얼굴만 보는 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느끼는 행복이 그에게도 역시 묻어나기를 바랐다.

 

세상 모든 피로가 담긴 카이 얼굴을 보자 그대로 사고가 정지했다. 소개팅 자리인지 모르고 억지로 끌려 앉혀진 사태보다 훨씬 불편해보였다. 걷고 있음에도 갈 곳을 잃었다. 초점 역시 불분명했다. 아까 내가 느끼고 있던 감정에서 적어도 몇 배는 떠안고 있었다. 시차 적응도 안 된 이들에게 지금은 너무 가혹하다.

 

 

 

 

 

쓰고 있던 모자를 푹 눌렀다. 가장 가까운 출입구는 사람들이 다 막아서서 최대한 멀리까지 가야했다. 멤버들은 여전히 길을 뚫고 있다. 계속해서 큰 소리가 오고 갔다. 아예 장소를 벗어났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이건 어떠한 관계도 아니다. 무작정 강요하고 있음이다.

도로를 끼고 걸어 거의 끝 쪽 출입구까지 왔다. 지하철을 타러 가려면 출입구를 통해 공항으로 들어가, 왔던 길을 똑같이 되돌아가야한다. 그래도 아직은 저 근처로 가고 싶지 않았다.

인도 끄트머리에 발바닥을 아슬아슬하게 붙이고 섰다. 휘청 휘청대는 몸뚱이를 느끼며 무리들을 바라보았다. 작게 자른 찰흙들이 엉겨붙어있는 모양새다. 그나마 여기는 저기보다 평안했다. 바삐 움직이는 이들은 많았지만 적어도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도경수는 아직 저 안에 있다. 무리들이 조금 헤쳐지기를 기다려야겠다.

 

모자랑 안경도 벗었다. 몽글몽글 맺혀있던 땀방울이 바람에 씻겨갔다. 시원하다. 입으로 말이 나왔다. 덕분인지 찬기가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만 바라보았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 구름이 많은 것도 아니니 틈새로 숨은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속으로 날짜를 셌다. 순간, 뭉쳐져 웅성거리기만 하던 소음이 조금 다른 형태를 가졌다. 왼쪽 시야에 하얀색 승합차 한 대가 걸렸다. 도로가 이쪽으로 이어져있어 차 역시 어쩔 수없이 여기로 와야 했다. 아직 거리가 조금 떨어져있을 때도 잠시 앞 차창을 뚫어져라 보았다. 누가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어쩐 일인지 캄캄하게 막혀서 구분이 되지를 않는다. 안에 누가 있는지는 몰라도 허리는 절로 굽혀졌다. 약속처럼 꿋꿋이 해왔던 인사방법이었다. 멤버가 없다면 매니저라도 받으라는 마음이었다.

 

다가온 속도가 그렇게 빨랐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멈출 정도로 느리지도 않았다. 하얀색 차는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그리고는 어쩐 일인지 정확히 조수석 부분이 내 앞으로 닿았다. 멈춰선 차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보니 저쪽 차들은 아직 멈춰 섰다. 아마 저들끼리 속도를 맞추기 위함인가싶다. 차가 멈춘 것을 보고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덩어리들이 바삐 뛰어온다. 저러다 넘어지면 깔리지.

까맣게 칠해진 창을 응시하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제 어쩌면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길거리에서 이와 같은 차종에 본능적으로 머리를 조아린 적도 있다. 아마 그 때 그 안에 있던 사람은 꽤 당황했을 것이다.

어디다 시선 둘 곳도 없어서 까만 창만 빤히 보았다. 그런데 정말 이 뜬금없는 타이밍에 창이 살짝 내려갔다. 그것도 약간 공간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끝없이 까만 막이 밑으로 사라졌다. 뭔가 길이라도 물어보려나 싶어서 목을 비스듬하게 꺾었다. 그리고 곧장 숨을 집어삼켰다. 완전히 창이 사라진 그 안에는 다름이 아니라 카이 그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뜯어봐도 카이였다. 짙게 깔린 졸음 가득한 눈을 두툼하게 접어 넣고 둥글둥글한 얼굴을 가진 그다. 활동 명 카이, 본명은 김종인인 딱 그 본인이었다. 그는 머리를 밖으로 살짝 빼고 정확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사람들에 치여서인지 피곤함이 흩뿌려져있다. 그 안에서 깜빡이는 두 눈이 정면으로 꽂혔다. 아래에서 쏙 나온 손은 좌우로 똑바로 흔들렸다.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발도, 얼굴도 얼어버렸다. 어느 신체 기능도 바른 구실을 못했다. 정확히는 뇌부터가 명령을 내릴 정신이 아니었다. 그나마 동공 혼자 절로 커져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지금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

간신히 앞으로 걸음을 떼려는 이내 옆에서 귀를 찌르는 고음들이 터졌다. 우르르 쏟아져오는 덩어리가 앞을 가렸다. 순식간이었다. 카이는 흔들던 손을 멈추고 눈을 굴려 주변을 인식했다. 상대를 향한 묘한 두려움이 겹쳐지는 게 설핏 보였다. 열릴 때와는 반대로 창문이 닫히는 건 아주 빨랐다.

앞을 막았던 그들은 밟아 나가는 차 뒤꽁무니까지 마저 쫓아갔다. 뒤에 머물렀던 다른 차들도 같은 도로를 쌩쌩 지나쳤다.

손에 꽉 차게 들고 있는 핸드폰이 몸을 죽어라 흔들었다. 진동은 느꼈지만 그저 느껴질 뿐이었다.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흰색 차를 눈앞에 그리는 것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 가방에 들어있는 음료가 떠올랐다. 아, 이거 못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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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카이짱팬 여섯.

L2014. 5. 20. 11:44

 

 

 

 

 

06.

 

방송국에 가고 싶다고 졸랐다. 그 말에 도경수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그럼 가라는 단문만 뱉어냈다. 어떻게 가냐고 묻자 버스 타고 가라고 한다. 누가 그걸 물었나. 같이 가달라는 의미를 빙 돌려 말한 것인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심드렁해 있다. 정수리를 쥐어박고 싶은 욕망에 불탔지만 간신히 참았다. 이 녀석은 때리고 싶게 생겨서는 의외로 어렵다.

한번쯤 음악방송도 보러가고 싶었다. 허나 그곳은 거의 최종 보스가 사는 던전 급에 가까웠다. 방송국 앞은 언제나 여학생들이 진을 쳤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몰래 혼자 가 본적 있긴 하다. 그저 앞에 아주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기만 했음에도 다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방송국 앞에서 서성이는 남성이 어색한 것이다. 달려드는 눈빛을 참지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전문가 도씨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전혀 신경 안 쓴다고 쫄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당당한 놈이 밖에서는 절대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그냥 무시해 버렸다. 다른 스케줄이라도 확인해 볼까 싶어 휴대폰 버튼을 눌러 화면을 켰다.

 

 

“아니면 라디오에 사연이라도 보내봐.”

“라디오?”

“사연 뽑히면 전화연결 해주는 코너 있어.”

 

 

그냥 두기가 안쓰러웠는지 생각지도 못한 길을 뚫어준다. 직접 보러가고 싶다니 알려준 방법이 이따위다. 앞에서 직접 움직이는 카이를 보고 싶어 굳이 방송국까지 가려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잘해봤자 목소리다. 잠시 고민했다. 내가 너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상대 쪽에서 갑자기 한 번 크게 박수를 쳤다. 그거 경우에 따라서는 방송국 측에서 불러. 안에 들어갈 수 있어.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에 머리가 번쩍 뜨였다. 그다지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었지만 해서 나쁠 건 없었다. 무엇보다 굳이 사람들이랑 부딪치면서 기운 빼지 않는 부분이 괜찮았다. 뽑히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고정은 아니지만 게스트로 무슨 요일에 나올지는 알 수 있다. 그게 도경수가 마저 얹어준 말이었다.

 

집에 가서 보니 벌써 메일을 통해 라디오 게스트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프로그램과 요일을 쫙 뽑아다 보내주었다. 이제부터는 주제에 맞게 사연을 지어내는 일이 남았다. 이것 역시 도경수가 알려주었다. 꼭 사실대로 쓸 필요 없다는 조언 아닌 조언이 메일에 같이 첨부되었다. 그리고 중복되는 내용은 절대 안 된다며 별표까지 붙였다.

자판에 손을 올리기 전에 공중에서 잡아 위로 쭉 당겼다. 뚜두둑, 마디끼리 부딪쳐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과제에 임할 때보다 더욱 진지한 자세였다. 이런 나를 누군가 훔쳐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방문 걸쇠까지 단단히 눌러 잠갔다.

일단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검색했다. 보내준 요일에 맞는 사연으로 무얼 써야하나 살피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주제만 보았을 때는 아주 쉬웠다.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범위가 어디까지냐가 중요하다. 너무 흔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독특해버리면 오히려 부분을 벗어난다. 진위여부에 대해 궁금해 할게 뻔했다. 나보다 훨씬 많은 글을 읽고 쓰는 사람들이다. 어벙하게 속이면 멍청하다는 소리만 듣는다. 참신하면서도 재밌는 일을 끌어내는 건 맨 바닥에 우물을 일구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마땅히 떠오르는 내용도 없었다.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한심했다. 사연으로 올릴 흥미로운 사건 하나 없이 살았다. 그 잠깐 동안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우선 쉬자. 이 많은 라디오들 중에서 나와 관련된 주제 하나쯤 없겠어?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이런 일에 쓸 만한 사람이 근처에 마땅치 않다. 도경수? 도와줄 리 없다. 변백현? 도움 받을 생각 없다. 좁은 인맥을 탓하며 이번에는 고개를 길게 돌렸다.

네 번째로 적혀져있는 라디오 사이트에 들어갔다. 저녁 시간에 노련한 입담을 가진 아이돌 멤버 두 명이 이끄는 프로그램이었다. 여기는 제발 할 말한 내용이기를 바랐다.

하얀 바탕에 까만색 굵은 글씨로 쓰인 주제는 머리 한 구석에 확 박혔다. 앞선 것들에 비해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나싶어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이거라면 굳이 갖은 방법으로 쥐어짜 생각하지 않아도 가능했다. 예시로 들어준 내용과도 아주 잘 들어맞았다. 번져나가는 박동이 어느새 몸 전체로 느껴졌다. 할 수 있다. 쓸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희망에 부풀었다.

거의 잊혀져가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을 끄집어냈다. 살짝 들췄을 뿐인데 나름대로 쉽게 떠올랐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다 쓴 후 제목을 다듬었다. 한참 들여다보다가 특수문자에 있는 검은 색 별을 앞에 달았다. 이렇게 하니 역시 눈에 쑥 들어온다. 도경수가 보낸 메일 내용에서 얻은 숨겨진 팁이다. 이정도면 되겠지. 얼굴을 마주대고 대화하는 건 자신 있었지만 그걸 글로 옮기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길게 주절주절 써도 작가들 흥미만 떨어뜨릴 것 같아 이만 마쳤다.

등록버튼을 누를 때까지 마우스 왼쪽에 닿은 손가락이 계속 떨려왔다. 에라이. 나도 이제 모르겠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미동이 느껴졌다.

등록자 열에 박찬열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박혔다. 이제 된 거다. 밀어닥치는 사연바다에서 헤엄치다 낚싯바늘에 얻어 걸리기를 바란다.

 

 

 

 

 

 

 

 

 

 

 

성적이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그것보다 낮았다. 이유는 알고 있다. 집중할 수 있는 때가 적어진 탓이다. 도서관에 억지로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니 책 내용이 눈에만 머물렀다. 변백현은 이번에 올랐다고 자랑만 연속이다. 성적을 캡처해서 바탕화면에 놓고 틈만 나면 들이밀었다. 저놈을 확 쥐어뜯을까. 금발로 색 뺐을 때 머리털을 다 뽑았어야했다.

 

 

"어째 너 공부하는 꼴을 못 봤다 했어."

 

 

등을 두들겨주기에 이제라도 쓸데없이 위로하나했더니 보다 형편없는 말이었다. 둘러진 팔을 위로 높게 잡아 꺾었다. 아프다고 비명에 비명을 지르는데 웃음이 섞여있어 기분이 푹 썩었다. 방학은 언제 오나. 그래야 얘 얼굴을 당분간이라도 안 볼 텐데.

 

 

"야, 내가 밥 살게. 이따가 후문 쪽 카페로 와."

 

 

변백현은 들어 올려 졌던 팔뚝을 탈탈 털면서 입안이 보이게 웃고 가버렸다. 그렇게 말하면 내 화가 그냥 풀릴 줄 알았나보다. 완전 풀렸다. 진수성찬마냥 크게 먹어야지. 변백현 통장 뚫리는 흥겨운 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다음 수업 강의실을 찾아가는데 때마침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 뜬 프로필 사진이 잘생긴 남정네 눈인 것으로 봐서는 필시 도씨다. 물론 본인 얼굴은 아니었다. 알 사람들은 알아볼, 라인이 뚜렷하고 큼지막한 리더 눈이다. 이걸 바로 눈치 챈 나도 나였다.

 

 

「애들 오늘 입국한대 갈래?」

 

 

공항출두 문자였다. 당분간 해외 스케줄이 있어서 고요했던 서울이 또 떠들썩해지겠다. 강의실 제일 뒤에 자리를 잡고 화면창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일단 손가락을 자판 위에 굴렸다.

 

 

「몇시?」

「도착은 밤 11시쯤일 듯」

 

 

검지로 유리를 툭툭 쳤다. 뒤이어 어느 공항으로 오는지도 알려주었다. 지하철 막차가 몇 시인지 확인하자 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슬아슬하다. 내일 수업은 1교시인데다 애들이 정확히 그 때 오리란 보장도 없다. 아직 공항까지는 가본 일이 없었다. 그럼에 오랜만이라는 이유라도 붙이고 가서 카이를 보고 싶었다. 이렇게 다급해지는 기분은 오랜만이다.

교수님이 들어오시는 게 보여 이따가 답하겠다고 했다. 정보망을 주머니에 넣어놓았다손 치더라도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교수님 얼굴이 커졌다 작아졌다, 색깔이 까매졌다 하얘졌다 하였다. 마지막으로 카이 얼굴 본 것이 언제였더라. 해외 일정으로 도경수가 공항에 들렀던 날이 거의 삼일 전이다. 그렇다면 난 이주일정도 그를 보지 못한 것이다. 막상 세보니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친구들 중에는 반년정도는 못보고 산 아이들이 다섯 손가락을 넘어간다. 그럴 것인데 왜 이리도 김종인이라는 이 아이만은 가슴에 담겨있는지 모르겠다. 안보이니까 사무친다. 못 보니까 그립다. 미칠 노릇이다.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데 또 얼굴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핸드폰을 꺼내들어 사진첩을 켰다. 이렇게 보고나서야 슬슬 이목구비가 바르게 잡힌다.

 

나에게 있는 카이 사진은 딱 세 장이다. 한번 고삐를 놓아버리면 용량이 폭발할 때까지 쑤셔 넣을 것이 염려되어 세 장만 추렸다. 본래 가진 짙은 고동색머리를 내린 모습들이다. 무대 위 카이도 좋지만, 내 옆에 바로 가까이에 있는 듯한 김종인이 더 좋다. 김종인은 어린 티가 나면서 수수하다. 오히려 카이 때보다 다가가기 어려울 때가 많았지만 어째서인지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이는 김종인이었다. 그에게서는 다른 냄새가 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 아이만이 가진 독특함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앞에서는 이미 모르는 내용만 언급하고 계신다. 이번 수업은 어차피 교양이었으니 괜찮다. 중간고사 학점이 날 향해 발악하는 모습이 언뜻 스쳤다. 넌 이제 됐어, 우린 이미 끝난 사이야.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는 기말고사 학점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과연 끝까지 팔 벌린 인자한 형태일지는 모르겠다.

수업은 그냥저냥 마쳤다. 사진첩에 있는 사진 세 장에서 뭘 볼게 있다고 평소에는 한없이 더뎠던 시간이 이리도 빨리 가버렸는지 이해가 안됐다.

강의실을 나서는 동시에 리더짱팬에게 답장을 썼다. 용건만 담아 간결하게 쳤다.

 

 

「이따 거기」

 

 

숫자 1은 역시나 바로 사라졌고 달리 답은 오지 않았다.

잠깐 가서 변백현 통장만 털어나오려 했다. 긴 시간을 허비할 새가 없었다. 수업이 끝난 뒤라 할 일이 많았다. 집에도 가야하고 거기서 다시 밖을 나설 채비가 필요하다. 수업이 오후 여섯시에 끝났고 밥 먹는데 길어봤자 30분, 퇴근시간이니 넉넉잡아 집 가는데 한 시간, 씻고 단장하는데 한 시간, 공항까지 가는 거리가 또 한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맞추면 딱 9시 반이다. 정확히 11시에 한국에 떨어져도 이 시간이면 간신히 세이프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미리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 된다. 도선생 1장 1절 말씀, 일찍 가서 기다려라 그러면 그들이 내 앞으로 올 것이다.

그런데 큰 변수가 생겨버렸다. 할애할 시간은 30분밖에 남겨놓지 않았는데 카페에 갔을 때 변백현은 혼자가 아니었다. 웬 머리 긴 숙녀분이 그 앞자리에 같이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지나쳐갈 뻔했다. 당연히 혼자 있는 멍청한 놈만 찾아 헤맸는데 여자 사람이랑 함께라니. 슬쩍 뒷걸음질해 인사를 건넸다.

 

 

"어, 박찬열 왔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안쪽에 밀어 앉히고 저가 바깥을 꿰찼다. 어쩌다보니 여성분과 마주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머리긴 여성분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기는 동작까지 동시에 넘어갔다. 어찌해야할 바를 몰라 앞에 놓인 물만 밀어 넘겼다.

 

 

"이쪽은 무용과 지현이. 우리랑 동갑이야. 현이야 얘는 우리 과 박찬열."

 

 

어영부영 서로 인사를 끝냈다. 이미 메뉴는 주문해놨으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아니다. 지금은 어떤 메뉴가 나와도 얹힐 상황이다. 방금 전 물도 간신히 마셨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주기를 바랐다. 허벅지를 질게 꼬집자 인상을 찌푸렸던 변백은 금세 준수한 척할 때 주로 쓰는 표정을 얼굴에 그렸다.

 

 

"요즘에 네가 많이 외로워보이길래."

 

 

안에 숨긴 뼈마디를 단박에 간파했다. 아이돌 쫓아다니는 짓 그만하고 현실에나 충실하라는 뜻이다. 성질이 확 났다. 오래된 친구라고 할지언정 이건 과도한 간섭이다. 더욱이 앞에 덩그러니 앉아 우리 얼굴만 번갈아보는 여성에게는 더 큰 실례였다. 나 잠깐 전화 좀. 그렇게 나가버린 변 양반은 음식이 테이블 위에 놓일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동안 식기들 부딪치는 소리 외에는 고요했다. 먼저 운을 뗀 건 여성분 쪽이었다.

 

 

"혹시 오늘 다른 약속 있으세요?"

 

 

여자는 오감을 포함 여섯 번째, 육감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하였다. 포크에서 미끄러진 웨지감자를 다시 눌러 꽂고 그녀 쪽으로 눈을 올렸다.

 

 

"아니... 계속 시계만 보고 계셔서 다른 약속이라도 있나했어요."

 

 

별다르게 잘못 한 것도 없는데 목소리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접시를 바라다보며 흘낏 동자를 움직였다 얼른 다시 내린다. 벌어진 입에는 이어진 말이 나오는 대신 소스에 버무린 비트잎 한 잎이 들어갔다.

내가 그렇게 티나게 행동했나보다. 아니면 줄곧 울리는 메신저 창 때문일 수도 있다. 잘생긴 눈알이 프로필 사진으로 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 흥미를 가장 이끄는 건 당연히 진동 쪽이었다. 학교 끝났냐. 끝난지는 이미 오래다. 답장은 굳이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6시 48분. 아직은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분을 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7시 반까지는 어떻게든 헤어지도록 하자. 목표를 단단히 잡았다.

계산을 하고 나간 줄 알았더니 변백현 이 놈 자식이 몸만 쏙 빠져나갔다. 결국 내가 긁는 수밖에 없었다. 어색했던 식사도 간신히 목표시간에 맞춰 끝났고 이제 돌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저, 얻어먹은 게 죄송해서... 커피는 제가 살 게요."

 

 

지현이라는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베푸는 인간성을 가졌나보다. 괜찮아요, 그 간단한 말이 목구멍에 턱 걸렸다. 몸은 이미 그대로 따라 나갔다. 옆 건물 다른 카페로 옮겨왔다. 아까보다야 이야기를 이어가는 건 수월했다. 어차피 동갑이니 말도 놓게 되었고 나름 교점도 많았다.

 

8시 14분. 아직 나는 그녀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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