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어왔다. 근처에 걸린 풍경이 잘게 울리며 흔들렸다. 얇은 이불 위 준면은 흐드러지듯 누워있었다. 숨소리가 고르게 오르내렸다. 주변에 아이들이 여럿 앉았다. 혹여 곤히 자는 준면을 깨울까싶어 거리를 유지한 채였다. 손에는 색칠 도구가 하나씩 쥐어져 있다. 크레파스, 색연필, 마카펜 등 종류도 여러 개였다. 순간 얼굴을 푹 찡그리고 있던 한 아이가 크게 재채기를 했다.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이 꽂히며 약속이라도 한 듯 손가락으로 입술을 갈랐다. 다행히 숨을 크게 들이쉬기만 했을 뿐 깨지는 않았다. 대신 구석 자리에 누워있던 아이가 눈을 떴다. 근처에 있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은 탓에 벌떡 일어났다. 덜 깬 눈이 반쯤 감긴 채 끔뻑거렸다. 그럼에도 꽤 커다랗다.
“경수야, 쉿.”
그 중 하나가 여전히 손가락을 대고선 경수를 향해 속삭였다. 경수는 친구들과 준면을 번갈아 보았다. 베개와 이불을 양 손에 각각 들고 종종 걸어 나왔다. 아이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중간에 있는 준면에게 다가섰다. 곧 원래 제 자리인 양 베개를 놓고 눕기에 이르렀다. 잠에 드는 건 금방이었다. 준면은 아직도 깨지 않았다. 단발머리 여자 아이 한 명이 먼저 상체를 들썩였다. 그걸 신호로 동시에 곁으로 바짝 몰려들었다. 비질비질 흘러나오는 웃음을 눌러 참으며 각자 손을 놀렸다. 바람이 조금 더 깊숙이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다들 흩어졌다. 본래 침상으로 돌아가 이불을 푹 덮어쓰거나 앉아있던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댔다. 준면 주변에는 이제 경수만 있는 셈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그림자가 곧장 다가서 준면을 흔들어 깨웠다. 눈두덩을 비집어 올린 그는 눈을 몇 번이고 비볐다. 갈라진 목소리가 샜다. 상을 바르게 잡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엄마아.”
“잠깐 애들 보랬더니 네가 자고 있으면 어떡하니.”
바로 옆에 경수가 있어서 차마 큰 소리는 내지 못했다. 대신 허벅지를 제법 세게 때렸다. 아픔을 호소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잠이 덜 깨서인지 뚱한 표정으로 입을 내밀었다. 원장은 준면과 얼굴을 마주한 순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티는 내지 않고 문을 향해 손가락을 밀었다.
“가서 세수하고 와, 얼른.”
준면이 나가자 조금 열려있던 창을 먼저 닫았다. 혹시나 자는 중에 실례를 한 아이가 없나 살펴보았다. 다행히 다들 얌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자리 옆에 마구 어질러진 색칠도구를 주워 담았다. 정리를 다 하고 재우라 그렇게 강조를 했는데 교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다시는 준면을 낮잠 시간에 두고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얼추 정리를 끝내고 보니 벽걸이 시계가 간식 시간에 다다랐다.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뒤를 돌자 이미 일어난 원생이 있었다. 원장 쪽을 향해 앉아있다.
“경수야.”
입모양을 부러 크게 움직이며 작게 이름을 불렀다. 부름을 무시한 경수는 이내 무얼 찾는 건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이 가까이 널브러졌던 파랑색 크레파스를 떠올린 원장이 통에서 꺼내다 주었다. 그러나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젠 아예 이불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준면이 들어왔다. 얼굴을 몇 번이나 비벼 씻었는지 새빨갰다. 아직 색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그를 발견한 경수가 그제야 밝게 웃었다. 잰걸음으로 뛰어가 준면의 다리를 모아다 꼭 끌어안았다. 다리 사이에다 얼굴을 비볐다. 준면은 원장인 제 엄마를 보았다가 손바닥만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얕은 웃음소리가 정수리를 통해 들려왔다.
간식으로는 작게 자른 밤고구마와 요거트를 차렸다. 입맛에 맞지 않는 아이를 위해서 오렌지 주스도 가져다놓았다. 종일반 선생님들이 모여 아이들에게 순서대로 배식을 해주었다. 준면은 집게로 고구마를 집어 식판 위에 하나씩 올려주었다. 받아가는 아이들 중 몇이 속닥이며 웃었다. 눈 주변에 아직 파란 원이 흐리게 남아있는 꼴 때문이었다. 저 녀석들이구만. 집게사이에 껴 있던 고구마 하나가 그만 으깨졌다.
“주세여, 경수.”
작게 들린 목소리에 앞을 보았다. 팔을 쭉 뻗어 식판을 한껏 높이 들고 있었다.
“아 미안 경수야. 자, 맛있게 먹어.”
다음 차례에서는 요거트가 놓여졌다. 양 선생님 역시 경수에게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를 건넸다. 식판에 고구마와 요거트가 다 올라왔음에도 경수는 가만 서 있을 따름이었다. 줄이 밀리자 근처에 있던 최 선생님이 아이를 잡았다. 경수야 선생님이랑 저기 가서 먹자. 허나 들리지 않는다는 듯 요지부동이었다. 식판만 가만 내려다보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상황을 가만 넘겨보던 준면이 서둘러 움직였다. 주스 통을 따는 손이 다급했다.
“경수 유제품 못 먹잖아요. 전에도 다 토했구.”
뒤늦게 떠오른 특이사항에 어른들은 탄식을 터뜨렸다. 곧이어 칭찬이 쏟아졌다.
“원장 쌤 보세요. 준면이가 애들 잘 돌본다니까요.”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들어와도 될 거 같은데.”
도마 위 고구마를 칼질하던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집이나 물려줄 것이라며 준면이 맡은 고구마 통에 조각들을 더 부어넣었다. 가까이 다가선 엄마에게 시선을 옮겨 붙인 건 잠깐이었다. 집게를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모자는 각자 일에 집중했다.
배식이 끝나고 준면은 남은 고구마를 작은 그릇에 옮겨 담았다. 물론 본인 몫이었다. 원아들이 앉는 의자는 너무 낮아 대충 바닥에 자리를 잡으려 했다.
“엄마! 요기요기.”
애탄 부름이 들리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경수가 의자까지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카펫 위에 엉거주춤하게 섰다가 빠르게 아이 옆으로 갔다. 분명 받은 지 한참 되었는데 한 입도 대질 않았다.
“경수 형아 기다린 거야?”
동그랗게 뜬 눈이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대답이라 여기고 고구마 하나를 집었다. 주스를 들고 있던 경수가 얼른 고구마로 바꿔 들었다. 그리곤 준면을 올려보았다. 입을 작게 벌리니 비슷하게 벌렸다. 고구마 끝을 작게 베어 물었다. 작은 입은 그걸 또 따라했다. 그리 급하게 먹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물을 마시는 걸 보고 이번에는 컵으로 손을 옮겨 입에 댔다. 눈은 계속 준면을 보고 있던 덕에 입가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얀 옷이 금세 노랗게 물들었다.
“아유 경수야, 잘 보고 먹어야지.”
소매를 쭉 빼내어 물기를 닦아주자 아예 준면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그는 안 되겠다 싶어 경수가 식판을 다 비울 때까지 바라보기만 했다. 눈을 맞추고 오물오물 먹는 모습에 그리 맛있냐며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그 때마다 꼬박꼬박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찌나 환하게 웃는지 목구멍 안쪽까지 훤히 보였다.
학교가 끝나면 향하는 곳은 어린이집이었다. 가끔씩 일손을 돕던 게 언젠가부터 고정인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달리 갈 곳이 없었을 뿐더러 아이들도 준면을 잘 따랐다. 형, 오빠 또래인 준면이 아이들에게 있어 선생님보다 편한 건 당연했다. 심한 장난을 칠 때도 있었으나 같이 놀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중에서 경수는 특히나 준면에게 많이 의지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낯을 많이 가리다보니 말 걸기도 어려웠다.
6세 반에 새로 들어온 원생이 있다기에 인사를 하러 교실로 들어갔다. 모서리 부근에 앉아 바깥쪽을 등진 작은 등이 바로 눈에 띄었다. 다가가려하자 양 선생님이 말렸다. 이름은 도경수인데 말을 걸면 자지러지게 운다며 아까부터 쭉 저 상태라고 했다. 도로 나가려다말고 준면은 가방을 빈 서랍장 안에 넣었다. 소꿉놀이 장에서 역할 인형과 블록들을 두 팔 가득 안아들었다. 시야가 가려져 걸음이 더뎠다. 그동안 양 선생님이 알려준 이름을 입에서 반복했다. 도경수. 도경수.
종일반으로 등록한 아이들은 대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었다. 엄마와 오래 떨어져있는 게 어떤 기분인지 준면은 잘 알았다. 이곳이 싫어서 우는 게 아니다. 단지 적응이 필요한 것이다.
바닥에 물건들을 죄 늘어놓고 경수 바로 근처에다 블록을 쌓았다. 어수룩하지만 반듯한 문이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인형 몸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복슬복슬 볶은 머리에 앞치마를 두른 인형이었다. 가슴팍에는 ‘MOM’이라 적힌 스티커가 붙었다. 목을 가다듬은 그에게서 높은 미성이 흘러나왔다.
“똑똑똑, 경수야 엄마 왔어요.”
그제야 경수가 이쪽을 인식했다. 인형과 준면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눈 주변이 붉게 일어나 있었다. 어찌나 울었는지 볼에는 눈물길이 그대로 그어졌다. 그에 비해 눈알은 지나치게 새카매서 놀랐다. 주변이 전부 그 안에 담겨있었다. 한 번 깜빡일 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역할을 잊지 않고 반복했다.
“똑똑똑, 경수야 엄마예요.”
이번에는 인형 쪽을 보지도 않고 준면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엄마라고 적힌 인형보다 준면에게 집중한 모양이었다. 울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주쳐왔다. 까만 동공에 얼굴이 그대로 비춰오자 등이 따끔따끔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일단 입을 광대에 밀어붙였다. 몇 초정도 사이가 떴다. 거짓말같이 경수의 눈이 두툼하게 접혔다. 입 모양이 동그랗게 말려서 색색 숨소리가 번졌다. 볼은 발갛게 익어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것 같았다. 자신을 보고 웃은 게 맞나싶어 한 번 더 이름을 불렀다.
“경수야.”
“응!”
말을 끝맺기 무섭게 대답이 바로 붙어왔다. 등에 맺혔던 땀이 한순간에 말라갔다. 묘하게 안심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준면은 원내에서 경수에게 ‘엄마’로 불리고 있었다. 발음이 어수룩한 탓에 뭉개져 들렸지만 뜻은 정확히 통했다. 6살 아이가 초등학생 6학년 남아를 엄마라고 부르며 쫓아다니는 모습은 꽤 우스웠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달걀을 데리고 다니는 병아리라며 저들끼리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은 금방 지나갔다.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온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달리 인사조차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준면은 어린이집으로 오는 발길을 끊었다. 그 시간동안 경수는 매일같이 엄마를 찾았다. 이따 밤에 온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기다렸으나 찾아오는 건 ‘진짜’ 엄마였다. 서럽게 울 때도 있고 선생님들 뒤를 쫓아다니며 묻기도 했다. 엄마 어디 갔어요? 우리 엄마 언제 와요? 경수가 물어오는 주체가 준면이라는 걸 깨달은 선생님들은 이제 다른 말을 했다.
“엄마는 학교 갔지요. 경수도 내년에 여덟 살이니까 학교 가서 볼 수 있겠네.”
학교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는 말이 마음에 크게 박힌 듯했다. 이후로는 엄마를 찾는 대신 학교에 언제 갈 수 있느냐 물어왔다. 하루하루 날짜를 세는 게 일이 되었다. 유치원 졸업식 날에 경수는 진정으로 기뻐했다. 이제 학교 갈 수 있다고 펄쩍 펄쩍 뛰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어른 손을 뿌리치다시피 하고 온 교실을 돌아다녔다. 물론 그곳에 준면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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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어갔다. 집 안에 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열어젖혔음에도 후텁지근한 공기는 계속 맴돌았다. 한 시간 전에 온다던 에어컨 기사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부채질을 할 때마다 바람과 땀이 비등하게 솟았다. 벌써 몇 명이나 집 안 온도 문제로 왔다 갔다. 쿵쿵대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걸 보니 또 누구 한 명이 오는 듯하다. 부채질 속도를 높였다.
“아 준면 형! 이러다 쪄죽겠어!”
노크 한 번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하숙생이 불만을 토로했다. 얼굴이 벌개져서 숨을 푹푹 몰아쉬고 있었다. 민소매에 반바지를 챙겨 입고서도 더위를 이길 순 없었다. 준면은 티슈 두어 장을 가볍게 뽑아서 내밀었다.
“이참에 선풍기를 사.”
“아니 폭염주의보 쏟아진 날 에어컨을 고장 내면 어떡해!”
“야 내가 냈냐. 에어컨도 가끔은 쉬어야지 응? 그렇게 더우면 가서 등목을 하세요.”
“샤워 세 번이나 했어. 더 더워.”
그리고는 2층보다 차라리 여기가 낫다며 소파에 엎드렸다. 거의 달라붙어있다시피 하여 언뜻 녹아내린 것처럼 보였다. 한동안 준면이 내는 부채질 소리만 방 안에 찼다. 엎어져있던 그가 이번에는 바르게 누워 고개만 돌렸다.
“맞다 형. 내 옆방 나간지가 언젠데 청소 안 해?”
어깨만 짧게 들어 올릴 뿐 달리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부채질 소리가 공명했다. 방금 전보다 좀 더 빨라졌다. 열린 창 너머로 매미가 한참 울었다.
얼마 가지 않아 초인종 소리가 집 안 전체에 퍼졌다. 그와 동시에 준면이 벌떡 일어났다. 부채가 살을 때리는 차진 소리가 났다. 접힌 쥘부채를 들고 바삐 방을 나섰다. 에어컨 기사가 이제야 왔는가보다. 바깥 날씨 덥다고 도로 돌아갈 새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잠금쇠를 빠르게 풀어내고 급하게 당겼다. 땀은 쏟아져도 미소가 만연했다.
허나 앞에 서 있는 상대는 기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심지어 교복을 입었다. 외부인은 출입금지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또 누가 친구를 부른 모양이다. 하숙생 중에 이정도 되는 또래가 있나 곰곰이 생각했다.
“누구 찾아왔어요?”
현관 벽에 몸을 기대고 물었다. 집에서 제일 어린 애라고 해도 스물은 넘었다. 혹시나 집을 잘못 찾았나싶어 나름 친절한 목소리를 냈다. 접었던 부채를 다시 폈다. 하늘하늘 지펴지는 바람이 나름 시원했다. 창문만 열게 아니라 현관을 열고 있을 걸 그랬다고 짧게나마 반성했다.
“여기 방 내놨다고 해서 왔습니다.”
인상과 달리 푹 내려앉은 음성에 부채질이 느려졌다. 요즘 학생들은 목부터 2차 성징이 오나 생각했다. 확실히 광고를 내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연락을 먼저 하고 오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이번 건 당황스러운 방문이었다. 옆을 보니 캐리어까지 끌고 왔다. 방을 보지도 않고 입주할 생각이었나 보다. 준면은 바깥을 마저 살폈다. 일행은 없는 듯 보였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곧장 내뱉었다.
“미안한데 고등학생은 부모님이랑 같이 와야 돼요.”
돌려보내기 위해 한 말이었다. 어제만 됐어도 돈만 있다면 당장에 내주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새 입주민을 받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짐까지 싸들고 온 노력이 가상해도 어쩔 수 없었다. 준면의 말에 그는 어딘가 절망한 눈치였다.
“정말 미안해요. 날도 더운데 헛걸음하게 해서. 일단 방이라도 볼래요? 아직 청소를 못해갖구 좀 그렇긴 한데 어떤지는 봐야죠.”
그 말에 기운을 차린 학생은 주인 마음이 바뀔라 얼른 짐을 끌고 들어왔다. 마침 준면 방에서 하숙생이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뭐야, 기사아저씨 아녔어? 신나서 나가길래 난 또. 근데 누구?”
“이쪽은 학생이 입주하게 된다면 만날 옆 방 사람이에요. 이름은 몰라도 돼요.”
“왜 형 맘대로 그래. 안녕하세요. 박찬열이예요. 나보다 어린 거 같으니까 말 놔도 되지? 학생이 하숙하게?
이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었나. 어어 잠깐만 나 말하잖아.”
준면은 찬열을 일절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손님 역시 그 뒤를 따랐다. 혼자 남은 찬열은 거실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부엌으로 쏙 들어갔다.
겨우 한 층 차이인데도 기온이 천지차이였다. 찬열이 차라리 1층이 낫다한 이유를 이제야 이해했다. 지금 에어컨이 고장 나 그렇지 평소에는 시원하다며 괜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방 문에는 직접 적은 푯말이 걸려있었다. ‘빈 방’이라고 적힌 그것을 떼어내며 열쇠를 꽂아 돌렸다. 활짝 열었다가 얼른 다시 닫았다.
“혹시 봤어요?”
학생은 눈을 굴렸다. 동그란 머리통이 가로 움직였다. 준면은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다. 퀴퀴한 냄새가 일순간 코를 찌를 정도였다. 이런 상태일 줄 몰랐다. 은근슬쩍 옆으로 옮겨와 찬열의 방을 열었다. 여기도 아수라장인 건 매한가지였으나 저쪽보다는 나았다.
“구조 자체는 비슷하니까 참고해요.”
“저 있잖아요.”
운을 먼저 띄우더니 한참 말이 없다. 방이 너무 더워서 그런가하여 창을 열기 위해 움직였다. 등을 돌리자 그제야 말을 이었다.
“계약서부터 쓰면 안 되나요.”
“그걸 부모님이랑 같이 해야 되는 거예요.”
“꼭 유효한 게 아니라도요.”
학생은 교복 밑단을 힘껏 잡아 쥐었다. 땀은 흘리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욱 답답해 보였다. 이제 보니 명찰이 없었다. 창을 여는 대신 복도로 돌아 나왔다. 마침 계단을 올라오는 찬열과 맞닥뜨렸다. 볶은 소시지와 맥주 한 캔을 들고 오던 그는 방에서 나오는 둘에게 왜 거기서 나오냐 소리쳤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대답은 하지 않고 지나쳐갔다.
인쇄한 계약서에 형광펜으로 부분마다 색을 입혔다. 체크된 것만 일단 적으면 된다고 이르자 펜을 잡아 한자 한자 꼼꼼하게 채워나갔다. 물을 한 잔 떠다 놓고 옆에 서서 확인을 했다. 순간 성명 부분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자음과 모음을 나눠서 읽다가 이제는 입으로 소리를 냈다.
“도경수.”
목구멍에서 튀어나온 이름이 뇌로 꽂히는 감각이 들었다. 귀가 먹먹해졌다. 찌르듯 연신 이어지던 매미소리가 이제 작게 들려왔다. 본인 이름이 들리자 바로 고개를 쳐들었다. 얼굴을 다시금 확인했다. 꼼꼼하게 살폈다. 왜 알아차리지 못했나 싶을 만큼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언젠가와 같았다.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준면을 오롯이 응시하였다. 구물거리는 무언가가 등줄기를 타고 기어 올라왔다. 목둘레에 꼭 맞게 둘러지더니 울대 부근을 아프게 눌렀다. 덕분에 말을 골라낼 수 있었다.
“전 김준면이예요.”
이름을 들어도 아이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책상을 돌아 경수 맞은편에 앉았다. 작성을 끝낸 그가 앞으로 종이를 내밀었다. 다른 부분은 다 넘기고 이름을 다시 꼼꼼하게 읽었다. 성명란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쓴 석자를 또 몇 번이고 되뇌었다.
“몇 학년이죠?”
“올해 2학년이요. 고등학교.”
경수는 물 한 모금을 막 넘긴 참이었다. 급하게 삼켰는지 잔기침을 냈다. 놀란 준면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팔을 기대고 등을 두들겨주었다. 한참 후에야 진정되었다. 숨을 몰아쉬던 경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감사인사를 건넸다. 아직도 등에 대고 있던 손을 얼른 치웠다. 종잇장들을 가지런히 모아 서랍 안에 넣었다. 손바닥 물기에 의해 종이 끝이 울었다. 손목 운동을 하는 양 가볍게 털어냈다. 작은 플라스틱 상자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다음에는 연락하고 오도록 해요.”
짐은 잘 맡아줄 테니 이만 돌아가라고도 덧붙였다. 현관 앞에서 준면은 부채를 건넸다. 차렷 자세로 가만 서 있자 날이 많이 덥지 않느냐 넌지시 물었다. 그제야 허리를 반으로 접어 두 손으로 받아갔다. 배웅인사는 짧았다.
방으로 돌아온 준면은 벽을 차지한 책장 전체를 급하게 뒤졌다. 구석에 세워놓은 작은 사다리까지 대고 위에서부터 찾았다. 책 사이사이를 일일이 털어냈다. 한참을 뒤적이던 끝에야 손이 멎었다. 여행 책자 속에 꽂혀있던 것은 사진 한 장이었다. 커다란 꽃다발을 든 준면과 환히 웃고 있는 어린 경수였다. 사다리에서 차분하게 내려왔다. 책 안에 있었는데도 먼지가 묻어있어 옷에 닦아냈다. 구석에 찍힌 날짜를 흐리게 보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준면은 서랍 안 계약서 위에 사진을 대충 덮어두었다.
1층 끝 방으로 향하다 부엌으로 방향을 바꿨다. 달그락거린다 싶더니 역시 여기 있었다. 천정에 숨겨놓았던 조미김을 꺼내왔다. 마른 반찬을 두르고 저녁을 챙겨먹는 민석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무언가 부탁이 있을 때 짓는 표정도 함께였다. 봉지를 뜯어 밥그릇 근처에 고이 올려두었다.
“바빠?”
“언제.”
“내일.”
“뭔데.”
“청소.”
젓가락이 그릇을 찢을 듯 크게 박혔다. 정수리 가운데에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파릇파릇 움직이는 모습에 종종 물을 흩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대신 컵에 떠다 옆에 바쳤다.
“이번 달 월세에서 돈 빼줄게.”
왼손가락 다섯 개가 버젓이 올라왔다. 준면은 고개를 저으며 나머지 셋을 접었다. 지지 않고 이번에는 네 개로 강력하게 주장했다. 턱을 검지로 톡톡 치던 준면이 그 중 하나를 억지로 꺾었다.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미소와 함께 끄덕였다. 결국 세 장으로 협상이 끝났다. 매끈한 눈매가 인상을 푹 찡그렸다. 쌀알을 신경질적으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
에어컨이 돌아가자 창은 항상 닫혀있었다. 집안 분위기가 차분하게 바뀌었다. 정확히는 도경수가 이곳에 입성한 뒤부터 형성된 기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다시 찾아온 그는 역시나 혼자였다. 부모님이 바쁘다고 해서요. 짐 찾으러 왔어요. 캐리어를 쥐어 끄는 경수를 잡은 건 준면이었다.
“그 때 방 못 봤죠. 지금은 정리 됐는데.”
방 앞에 걸린 푯말에는 ‘도경수’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경수는 손잡이를 잡은 채로 푯말에 시선을 뺏겼다. 인기척을 느끼고 밖으로 나온 찬열이 둘을 발견했다. 뭐가 그리도 반가운지 양 팔을 흔들었다.
“오늘부터야? 밤에 좀 시끄러울 수도 있는데 암튼 잘 부탁한다. 형, 우리 새로운 하숙생 들어온 기념으로 오늘 파티, 아아 나 말하고 있잖아.”
준면은 등으로 문을 닫았다. 다급하게 여느라 겹쳐 잡은 손은 들어오자마자 놓았다. 방을 편히 볼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로 단출하지만 아늑한 느낌이었다. 더 필요한 게 있다면 개인적으로 들여놓아도 상관없었다.
“잘 보고, 마음에 들면 바로 계약해요.”
“저 혼자 왔는데.”
“괜찮아, 괜찮아. 돈은 그 때 받으면 되니까.”
그 말에 경수가 환하게 웃었다. 눈이 둥그렇게 접히는 모양이 여전했다. 감사하다며 허리를 숙였다.
무상 거주한다는 것에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집안일에 집중했다. 주말마다 청소를 도우러 오는 아주머니께서는 요즘 집이 깨끗해졌다고 즐거워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몰라도 요리 솜씨 역시 제법이었다. 밤중에 옆방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딱히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도움을 주었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방학이라고 하기에는 경수가 집에 있는 날이 길었다. 사실상 경수가 등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되도록 무시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쓰였다. 궁금증은 날로 더해졌다. 차라리 처음에 아는 척을 할 걸 그랬다고 이불을 찬 일도 있다.
정해진 때가 되면 문을 두들겼다. 온전히 도경수가 만들어낸 시간이다. 머그컵 안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창가를 두들기는 빗소리와 어울렸다. 준면이 다 마실 때까지 경수는 반대편에 앉아있다. 이 역시 도경수가 만들어낸 공간이다.
“달다.”
경수가 작게 미소 지었다. 눈을 계속 맞춰 오는 바람에 준면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창문을 때리는 빗물이 제법 굵었다. 의자 끄는 소리에 다시 앞을 보았다. 경수는 상체를 길게 내밀고 앉아 책상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벌어지는 입이 느렸다.
“형은,”
뽑혀 나오는 목소리가 진득했다. 입 안에서 맴도는 핫 초콜릿보다 진하게 감겼다. 귀로 들린다기보다 입에서 입으로 곧장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목구멍에서 무언가 터진 것 같았다. 컵에서 입을 떼고 주먹으로 입을 가려내 작게 기침했다.
“어땠어요?”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나 준면의 등을 살살 두드려주었다. 귓가에 음성이 옮겨 붙었다.
“난 힘들어요. 지금도.”
경수가 더욱 가까워졌다. 밀려오는 그림자를 그대로 받았다. 까슬까슬한 촉감이 혀를 감쌌다. 목 뒤가 뻐근하게 올라왔다. 코끝이 시리다. 천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 바닥이 천장으로 솟구쳤다. 머그컵 안에 담겼던 초콜릿이 흘러넘쳤다. 넘실넘실 떠다니던 준면은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왜 이렇게 답답한가 했더니 이불이 입 안에 들어가 있었다.
기묘한 꿈을 꾼 덕에 경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끌어안았다. 부엌에서 식기들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틀어놓은 텔레비전이 거슬려 아예 꺼버렸다.
시리얼을 말아 한 입 크게 문 백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옆자리 종대를 쿡쿡 찔렀다. 데운 우유에 빨대를 꽂아 마시던 그가 신경질적으로 털어냈다. 백현은 개의치 않고 말을 붙였다.
“봐, 이상해.”
“모가.”
백현이 턱짓하는 곳에는 경수가 서 있었다. 싱크대에 기대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부엌과 거실을 이으면 정확히 준면과 일직선상이었다.
“나 쟤 별로.”
“못 됐네.”
백현에게 더 이상 대꾸해주지 않았다. 마시던 빨대를 빼고 그대로 들이켰다. 싱크대에 넣으려고 하자 경수가 받아들었다.
“제가 할 게요.”
“어, 안 그래도 되는데. 고마워. 야 똥 나 먼저 간다.”
“잠깐만 같이 가!”
백현은 시리얼을 양 볼 가득 구겨넣고 가방을 챙겨 나갔다. 그 사이에 경수를 한 번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기고 간 음식물을 싱크대 안에 쏟아버리고 포트에 물을 올렸다. 머그컵 하나를 놓고 찬장에서 갈색 통을 꺼내 옆에 두었다. 거실에 홀로 앉은 준면 쪽으로 걸어 나왔다. 경수가 가까이 왔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눈을 뜨고 잠든 것처럼 보였다.
“저기.”
얼굴을 가까이 내밀고 나서야 눈알에 생기가 돌았다. 초점이 맞춰지자 얼른 몸을 뒤로 젖혔다.
“어어, 어? 어어?”
“아침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직도 멍한 정신으로 부엌을 넘겨보았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소리가 싹 걷혔다. 그나마 덜 산만했다. 준면은 배를 꾹 눌러보았다. 옷 위로 판판한 모양이 잡혔다.
“난 그냥 커피.”
어쩐지 경수가 산뜻하게 웃었다. 꿈에 나타난 얼굴과 겹쳐보였다.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부엌으로 향하려는 준면을 막아섰다. 피곤해 보인다며 뜨거운 물은 위험하니 방에 가져다주겠다고 하였다. 거부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아까 텔레비전에서 떠들어대던 게 일기예보였나 곱씹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맑던 하늘이 우중충하게 깔렸다. 창문을 열라는 식으로 사정없이 두들겼다.
그와 비슷한 소리가 문 뒤에서 났다. 머그컵에 피어나는 김이 따뜻해 보였다. 경수 역시 편안한 기색이 감돌았다. 컵받침에 고스란히 놓고는 반대편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준면에게 향한 눈이 퍽 부드러웠다. 꿈 때문에 괜스레 신경이 쓰이는 것 뿐이다. 어쨌든 지금은 현실이었다. 커피를 들고 오는 일은 평소에도 잦았고, 언제나 저곳에 앉아서 빈 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별 다를 게 없었다.
커피를 입에 담은 준면은 순간 멈칫했다. 경수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아주 천천히 삼켜냈다. 커피가 너무 달았다. 빗방울이 더 거칠어졌다. 언뜻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