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히방

공지사항

ㅊㅈ 3평생일

S2015. 12. 7. 04:38


140707




스물아홉, 내 생일을 축하한다. 3평짜리 원룸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노래를 부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스물아홉 박찬열, 생일 축하합니다. 듣는 이가 하나밖에 없는 노래였다. 아주 잔잔한 음이었다. 바닥을 검지손톱으로 툭툭 쳐가며 박자를 맞췄다. 악기도 없어 속으로만 가락을 만들어냈다. 남이 보면 조금 궁색 맞아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일순간 들었다. 얼른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빈 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게 생일이 된 열두 시에 해야 할 일 목록에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스팸 문자 한 통 오지 않은 핸드폰은 침대에 던져버렸다. 이미 시계 기능으로만 사용된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기대를 했다.
편의점에 나가 조각케이크라도 사올까 하다가 지금 내 처지에는 그것마저 사치라는 걸 깨달았다. 밤바람이라도 쐬고 오는 게 낫나싶다. 좁은 고시원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방에는 창문 하나 없어 답답함이 가중되었다. 두꺼운 책들 몇 권이 낮은 책상 가득 펼쳐져있는 게 어지러웠다. 지금 저기에 다시 앉아봤자 글귀들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터였다. 
똑똑. 
작은 두드림이 벽에서 전해져왔다. 항상 고요했던지라 이 하나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시간이 시간인데 노래를 너무 크게 불러버려 불만이 들어왔나 보다. 여태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어 심장이 괜스레 쪼그라들었다. 소음이 오고가는 일이 적으니 방음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문득 잊었다. 한심한 나 자신을 꾸짖으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탁 쳤다. 살과 살이 붙었다 떨어지는 찰진 소리가 났다.
죄송하다고 사과할까 말까 벽에 붙어 고민하였다. 그냥 짧게 주의를 준 걸 수도 있는 일이다. 혼자서만 큰 일로 여겨 앞서 나가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 귀도 대보고 반대편에서 어떻게 더 반응을 하는지 기다리다 난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이제 조용히 하면 된다. 어차피 바람 쐬러 나갈 생각이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문 근처 벽걸이에 걸린 모자를 썼다. 방에서만 나가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채워진 안쪽 자물쇠를 다 풀고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답답함을 벗고 싶었다. 문을 열자 숨을 들이키느라 열린 기도로 침 한 방울이 또르륵 새어 들어갔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복도에 웬 사람이 서 있었다. 그것도 이쪽을 향해 바르게 있다. 덕분에 사레가 들어버렸다. 그렇다고 크게 기침을 할 수도 없어 손으로 입을 막아 최대한 안쪽에서 걸러냈다. 고통을 씹어내는 작업이었다.
상대도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한 남자다. 낯이 익었다. 한 손이 둥글게 말려 공중에 뚱하니 떠 있었는데 내 쪽에서 먼저 열지 않았다면 딱 노크를 할 자세였다. 아마 지금 내 눈은 잔뜩 핏발이 서 있을 터였다. 지금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살아야한다. 무슨 일인지는 일단 속이 진정된 후에 듣고 싶었다.
손잡이를 쭉 잡아끌어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했다. 턱, 하는 소리가 나며 더 이상 닫히지를 않았다. 아래쪽에 들어찬 발이 눈에 잡혔다. 양말조차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당연히 그 주인은 앞에 있던 남자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내 등을 두들겨주며 자기까지 안으로 들어왔다.
그나마 방에서는 속 시원하게 기침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옆방까지 들리지 않는다. 토하듯 구역질까지 하는데도 남자는 계속 등을 적당한 세기로 두드렸다. 후에는 살살 쓸어주기까지 한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호흡을 고르며 쳐다보았다.

“저 옆방.”

눈빛을 느끼고 그제야 고개를 쓱 들어 자신을 소개하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노크가 전해진 방향에 사는 주인이었다. 역시 사과를 했어야하는 게 맞나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숨이 턱 막혔다. 옆 방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져봐야 좋을 건 없었다. 주인에게 잘못 이야기가 들어가면 최악의 경우는 여기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건 결코 좋지 않은 전개였다. 실수를 깨닫고 곧장 얼굴을 최대한 죄송하다는 느낌으로 구겼다.

“들었어요. 오늘 생일이라고.”

예상과는 다른 말이 이어져 나와 조금 당황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내려던 입이 쑥 말려들어갔다. 혼자 듣는다고 생각한 생일 축하 노래는 사실 정확히 두 명이 듣고 있었다. 가요도 아니고 자축하는 노래를 들켜버려 쪽팔렸다. 
그런데 남자에게서는 계속 의외의 문장들이 줄줄 쏟아져 나왔다. 조금 신기했다.

“사실 갑자기 케이크가 땡겨서 사왔는데 혼자 먹기 궁상맞아서 입도 안 댔거든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수상했는지 자기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열심히 양손을 휘적 거리도 했다. 그러면서 약간 미안하다는 듯 눈썹이 아래로 축 내려갔다.

“근데 초는 20개뿐이에요.”

이 말이 뭐라고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정말로 미안하다는 느낌이 완연했다. 전혀 그럴 일이 아닌데 저런 표정은 너무 부조화했다. 크게 웃지 않기 위해 입 앞을 막아섰으나 이건 사레에 든 것보다 훨씬 참기 힘겨웠다. 그런 가운데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발 빠르게 공동 주방 쪽으로 향해갔다.
제법 커다란 케이크 상자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당연하게 내 방으로 들어와 문까지 꼼꼼하게 닫아 잠근다. 노래는 아까 불렀으니 생략하자면서 장난스럽게 입을 쭉 찢어 웃었다. 참 신기한 감각이었다. 분명 창문은 여태까지나 지금이나 똑같이 없는데 어쩐지 청량감이 들었다. 거기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안쪽에서부터 넘겨 부는 것이었다.

“전 김종인이에요.”

손가락으로 푹 찍어낸 케이크를 제 입에 넘기면서 가볍게 알렸다. 반대 손으로는 나이를 나타내는 개수를 폈다. 들고 온 초와 같은 숫자였다.
크림을 꾸역꾸역 넘겼다. 한 움큼 베어 문 케이크에 혀로 김종인이라는 이름을 새기며 목구멍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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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잡은 손

S2015. 12. 7. 04:31

140705





우리는 극장에서 처음 손을 잡았다. 깍지에 들어차던 촉감이 아직도 선명하다. 축축하게 감겨오는 손바닥이 뜨끈하게 달구어져있었다. 장면이 몇 번이고 바뀌는데도 정신은 온통 그 곳에 쏠려있었다. 순간은 온전히 단둘이었다.
종인이가 먼저 내밀었다. 살금살금 눈치를 보고 있던 것을 알아챘는지 팔 받침대에 턱하니 올려놓았다. 마치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곁눈질로 보는데 캄캄한 내부에 유독 그 옆선만은 뚜렷했다.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빛이 온통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무엇에 홀린 듯 다섯 개로 나뉜 살결을 겹쳤다.

“형.”
“어?”
“뭔 생각해요.”

탁자 아래에서 다리를 들어 곱게 접힌 무릎을 퍽퍽 내려친다. 빨대를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는 것을 보니 심기가 제법 뒤틀린 모양이다. 저를 앞에 두고 눈을 흐리게 뜨고 있던 까닭임에 분명하다. 네 생각하고 있었지. 그렇게 말하면 빤한 대답이라며 입을 쭉 내밀 모습이 선했다. 턱을 반대쪽으로 고쳐 괴었다.

“우리 처음 손잡고 나서 얼마 만에 했나 생각 중이었어.”

말을 이해 못했는지 날 똑바로 쳐다본다. 일순간 두툼한 입술 덩어리가 두 개로 쪼개지며 작은 탄성을 냈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진심으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바닥을 보인 파르페가 빨대 안에서 호록호록 넘어가는 소리만 났다. 그러다 작은 소음이 뚝 끊기는가 싶더니 곧이어 명쾌한 답이 나왔다.

“영화 끝나고 바로.”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사실 그때만큼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이미 손을 잡은 때부터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꼬박꼬박 형, 형 하던 녀석이 내 이름을 아무 거리낌 없이 툭툭 내뱉으며 신음하는 건 꽤 자극적이었다. 그건 뭐, 지금도 같다. 
식빵과 같이 나왔던 생크림을 빨대에 쿡 찍더니 나에게 넘겼다. 입을 벌려 쏙 빨아내자 흡족하게 눈을 휘어 접는다. 다시 한 번 찍어내 이번에는 자기 입에 담는다. 혀로 톡톡 치며 굴리는 꼴이 알만했다. 

“영화 보러 갈래?”
“아니.”

언제나 뒤에 붙던 ‘요’자가 뚝 끊겼다. 누가 보면 건방지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이건 김종인이 보내는 신호다. 빨대를 탁자 위에 놓고 소파 뒤쪽으로 몸통을 쭉 뺀다.

“박찬열 보러 갈래.”

그러면서 손가락을 들어 나를 툭 가리켰다. 시큰둥한 손짓을 그대로 잡아서 감았다. 손바닥이 포개졌다. 그 때처럼 우리는 빠르게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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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엇갈린

S2015. 12. 7. 04:24

140702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가지다. 시작이 있다면 어떻게든 끝이 존재한다. 무엇 때문인지 간에 결국 향하는 곳은 이별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정을 맞춰 잡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사랑할 때만큼은 현재가 영원할 것처럼 행동한다. 엮여들어 하나가 된다. 마음도, 정신도, 그리고 몸도. 하나로 달라붙어 있던 것이 떨어져나가게 되면서 질게 찢겨진다. 그렇기에 아픈 것이다. 깊게 섞여있었을 수록 상처가 심해진다.

사실 잘못은 내가 먼저 했다. 잦은 거짓말로 인해 신뢰를 잃어버렸다. 살살 웃는 얼굴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눈감아준 일도 여러 번이다. 모르는 척 넘어간 적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찬열 형이 그러면 그럴수록 난 더 오기가 생겼다. 이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는 건가, 그래서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 그런 생각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진실된 마음을 알고 싶어 괜히 한 번 떠보기도 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웃고 있으니 후에는 심술을 넘어 짜증이 났다.

다른 사람과 있는데 왜 신경 쓰지 않는 건지 답답했다. 일부러 들키기도 해봤는데 달라진 건 없었다. 이 형이 나에게 마음이 떠났구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점점 자신이 사그라졌다.

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먼저 불러낸 건 나였다.





“우리 이제 그만 할까?”





아주 조심스레 낸 말이었고 자연스럽게 반응을 살폈다. 그 말과 동시에 형은 눈이 정말 커졌다. 못 볼 거라도 본 듯 끔찍하게 구겨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말 웃겼던 건 뒤에 나온 말이었다.





“종인이 네 생각이 그렇다면.”





화가 미친 듯이 올라오는데 거기서 터뜨려봤자 나만 꼴사나워지는 행태다. 억울함이 눈알로 몰려들었다. 깜빡이기도 전에 인정 없이 그대로 뒤돌아 걸었다. 뛰고 싶지 않았다. 도망가는 꼴로 보이기 싫었다. 마음은 먼저 건네준 주제에 이럴 줄 몰랐다. 너무 담백한 마지막이었다.
끝나고서야 알았다.


나는 끝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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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그런 삶

S2015. 12. 7. 04:21

140630





그에게는 현재의 삶, 지금 살아가는 삶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그런 것들이 꽤 부러웠다. 내게는 과거의 삶이 여전히 중요했으니까.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그를 보는 것이 좋았다. 지금은 비록 길이 달라졌지만 당시는 함께였다. 우리는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교내 창가에 달라붙어 눈을 감고 조용히 자신에 대해 알려주던 목소리가 생생하다. 음악을 만들 거야. 네가 추는 춤에 어울리는 음악.

기타 코드를 겨우 외우고 있을 때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별다른 답이 들려오지 않으니 그는 긴 속눈썹을 위로 붙여 나를 가만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 안에 내 얼굴이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 쏙 담겨있다는 게 신기해서 멀뚱하니 응시하였다. 그곳에 갇힌 난 조금 바보 같은 표정이었다. 볕을 그대로 쐬고 있어 졸린 인상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짓는 멍청한 얼굴과는 다르게 그는 한없이 진지한 목소리였다. 종인이 너는 날 위해 춤추는 거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허나 그 말에도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여겼기에 그랬다. 서로에게 했던 다짐은 그게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지킬 것이라 생각했다. 흥얼대는 멜로디는 후에 악기를 타고 흐르면 훨씬 아름다워질 것을 알았다.

이제 와서야 후회한다. 그에게 조금 더 확신을 줄 것을 그랬다고. 정말로 그가 지은 음악에 맞춰 춤추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그 옆에서 작곡도 도와주었을 텐데. 눈물도 나지 않는다. 이제는 흘릴 수 있는 몸도 없다. 정신만이 남아 곁을 맴돈다.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이게 바로 미련인가보다. 살아있을 적에는 미처 몰랐던 감각이다.
박찬열, 박찬열. 아무리 불러도 그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차갑게 식은 날 붙잡고 비명과도 같은 울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정작 나는 여기 있는데 그는 날 보지 못한다.

지금을 살아가야하는 그를 위해 과거는 잊혀 져야하는 것이 맞다. 이제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현재에 속상할 일도 없다. 그게 맞는 것이라 생각하면 또 이상하게 마음이 쓰렸다. 찬열이 살아갈 순간을 위하여 나는 이제 조용히 묻혀간다. 네가 만들어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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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친구라도

S2015. 12. 7. 04:18

140625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 신청합니다. 네, 이 곡은 사실 저희 멤버 카이 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거든요.
숙소에 가만 누워 멤버들 몇 명이 게스트로 선 라디오를 듣고 있던 때였다. 종인은 순간 들려온 이름에 벙 쪘다. 각자 근처에서 딴 짓하던 세훈과 경수 역시 말을 들었는지 그를 휙 쳐다보았다. 여기서 카이라 불릴 이는 한 명밖에 없다. 그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새벽 타임이라 혹여 잘못들은 게 아닐까 싶었으나 사람들 반응으로 봐서는 맞았다. 이어서 찬열이 신청한 노래가 느린 박자를 타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김카이가 이 노래 좋아했었나? 그랬었나?”
“그러게.”



어떻게 된 거냐 말해달라는 눈알 네 개가 둥실둥실 떠다녔다. 왔다 갔다 바라보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으로 다시 고개를 훅 박았다. 별일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찬열 형이 전에 아무 방송에서나 내 이름 언급해준다 했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심장이 어느 때보다도 빨리 뛰었다. 그새 무대 한 번 뛰고 온양 숨까지 찼다. 얼버무린 변명이 어느 정도는 통했는지 경수는 고개를 주억대며 탁자 위 노트북에 다시 집중하였다. 두 명 다 그렇게 넘어갔다면 편했을 터인데 세훈은 여전히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혹여 옆 사람이 들을까 입모양으로만 말을 만들었다. 뭔데. 뭐가. 종인 역시 망설이지 않고 뻐끔대며 받아쳤다. 차가운 반응에, 아니다하며 훅 한숨을 쉬고는 브라운관에 다시 집중한다. 멋쩍게 벅벅 대는 뒤통수를 잠깐 보고 있다가 쥐고 있던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아직 방송 중인 시간이라 전화는 하지 못했다. 대신 문자판에 불이 나도록 글을 옮겨 담았다. 답장은 금방 왔다.



[나 잘했지.]



종인은 관자놀이를 눌러 잡고 머리카락을 쥐어 뽑을 듯이 당겼다. 네가 못해준 말을 내가 대신 해준 거야. 너스레를 떨고 앉았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 알았으면 이 사람한테 세훈이 고백 받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고 일순간 후회했다. 따지고 보면 고백도 아니었다. 그저 형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그 말 하나 들었을 뿐이었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 빠른 년생 주제에 형 소리하는 게 불편한 건가 싶었다. 그래서 호칭은 너 알아서 하라고했더니 뒤에는 김카이라고 부른 것이다.
찬열과 그는 경수를 포함한 룸메이트이기도 해서 단둘이 방에 있을 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그 날은 다른 한 명이 개별 촬영 때문에 자리를 비웠었다. 각자 따로 잠들기 전 침대에서 굴러다녔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찬열 쪽이었다. 



“너 좋아하는 사람 있냐?”
“없어.”
“정말? 그럼 너, 좋아하는 사람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질문이라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조용하자 찬열은 더욱더 붙잡아 물었다. 뭔가 들은 게 있는가하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세훈이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건 정말로 조언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 후로 종인은 세훈을 대하는 게 아주 약간이지만 어색해졌다. 최대한 티는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전보다 옆에 스스로가 가는 때는 줄어들었다. 다른 이들이 볼 때는 눈곱만치도 달라진 게 없을 것이다. 장난치면 받아주고, 말을 걸면 또 받아준다. 허나 먼저 다가가는 일은 극히 손에 꼽게 적었다. 눈치가 빠른 찬열이라면 알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말에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만약 걔가 좋아한다고 직접 말하면 사귈 거야?”



말도 안 되는 물음을 또 던져 와서 형 왜 그러냐며 슬쩍 흘겨보기도 했다. 그것은 친한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그런 거 아니라면 다행이라고만 하였다. 무슨 의미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차라리 형이라면 몰라도 세훈이는 좀. 이건 거의 반 장난 식으로 건넨 말이었다. 종인이 봤을지는 모르지만 이 때 찬열은 입 꼬리가 파르르 떨려 올라갔다. 
세훈이가 직접적으로 고백하면 그 때 다시 말해달라고만 하고 찬열은 침대로 쏙 들어갔다. 먼저 말을 꺼낸 주제에 먼저 끊어버려 종인은 눈썹을 좁혔다.
한동안 둘 다 관련된 말이 없어 잊고 지냈었다. 세훈이 말하는 칭호는 방송에서가 아니라면 김카이로 굳어졌고, 찬열도 카이짱팬을 자처하며 여러 가지를 신경 써 주었다. 불편할 것 없으니 받아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다. 세훈도 그리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다. 찬열이 이렇게 나오면 저가 그 일을 남에게 말했다는 걸 알아챌 것이다. 그건 상당히 귀찮아지는 부분이 올 수도 있다. 



[형 나빠.]



처음에 썼던 욕을 지우고 걸러낸 단어로 골랐다. 마음 같아서는 목이라도 조르고 싶었다. 오늘 방송 끝내고 오면 들어오자마자 방으로 끌고 들어가서 목을 졸라줄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진동이 징 오기에 대충 닫으려했는데 얼핏 본 내용이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내가 너 좋아해서 그래.]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찬열은 평소에 장난기가 너무 많았다. 이것도 분명 장난이다. 놀리려고 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이렇게 말해놓고 종인 자신이 난리법석 부리는 꼴을 즐기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라디오에서 무언가 미션을 줘서 반응을 보는 걸 수도 있다. 그럴 텐데, 그럴 것이 분명한데.



“미치겠다.”



달아오른 얼굴을 양손으로 가려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끙끙 앓는 소리까지 낸다.
친구라도 되고 싶은 쪽은 오히려 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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