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621
나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선배는, 그림자도 참 잘생겼네요.”
앞서 걸어가던 발이 박자를 놓쳐 어긋나는 모양을 가졌다. 얼핏 넘어질 뻔했다. 내가 재빨리 기타 가방을 붙잡은 덕에 선배는 다시 곧게 설 수 있었다. 그럴 리 없는데 그 등판을 다 차지한 기타 가방 안에서 현이 팅팅 튕기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딱 벌어진 어깨임에도 끈이 흘러내려 다시 고쳐 메기도 했다. 혹여나 잃어버릴까 귀퉁이에 적어 놓은 이름이 마침 눈에 띄었다. 박찬열. 이름까지 잘생겼어요. 옆에 새겨진 열매 그림은 내가 그려준 것이다. 동글동글 귀여운 열매.
찬열 선배가 우뚝 멈춰서 나도 따라 멈췄다. 땅만 보고 있던 터라 그 잘생긴 그림자가 내 것과 겹쳐지는 순간을 보았다.
한 템포 쉬었다가 아주 느리게 돌아보는데 귀신이라도 본 눈알이다. 목젖이 꿀렁이는 것이 딱 보였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작게 말했다 생각했는데 반응을 봐서는 아니었다. 불에 달아오른 솥뚜껑에 손을 대 아픔이 서서히 느껴지는 것처럼 번져났다.
허, 김종인 이 미친놈. 둥그런 뒤통수에 넋을 잃었던가보다. 아니면 걸을 적에 교복 바지 겉으로 나타나는 다리 선에 홀렸던가. 스스로를 꾸짖어도 이미 말은 튀어나간 뒤였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그를 지나쳐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불렀는데, 그건 뼈가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일기장에 써야겠다. 오늘은 김종인이 미친 말을 지껄인 경사스러운 날이다. 씨발.
“너, 너도 잘생겼어.”
이번에는 내 발걸음이 어긋났다. 잡아주지 않아도 혼자 중심을 잡고 얼른 뒤로 돌았다. 그곳에는 엄청 어색하게 입을 쭉 찢어 웃고 있는 잘생긴 얼굴이 있었다. 여기서는 뭐라고 받아쳐야할지 모르겠다. 내 거지같은 말에 고맙게도 해준 대답이다. 나 역시 거기에 맞는 어떤 응답이든 빨리 하고 싶었다.
“네? 이거 이번에 쓸 노래 가사인데.”
씨발. 하필 해도 이딴 말만 골라나온다. 말 좀 곱게 하면 뭐가 덧나기라도 하냐, 김종인 새끼야! 정신은 몸을 수도 없이 채찍질했다.
찬열 선배 얼굴이 폭발할 것처럼 발개져갔다. 저것마저 한숨 나오게 잘생겼는데 또 헛소리 내뱉을까 두려워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걸었다. 점점 사이가 벌어져간다는 것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쪽팔려서 며칠 동안 선배 얼굴 못 보게 생겼다. 그게 또 억울해 이번에는 마구잡이로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자꾸 날 따라오는 내 그림자에 괜히 화를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