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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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카이짱팬 넷.

L2014. 5. 13. 10:50

 

 

 

 

 

04.

 

 

예상은 했지만 도경수는 아주 전문적이었다. 그가 가진 능력은 매니저와 멤버들 연락망을 가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인회 일정이 끝나고 천천히 나가려고 하는 때에 팔목을 잡혔다. 사람들 틈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뚫고 지나갔다. 밀치는 사람 따로, 사과하는 사람 따로 있었다.

많은 이들의 눈총이 날 헤집어놓았다. 도경수는 밑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았나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말해봤자 그가 좋은 소리를 해줄리 없었다.

대체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 건지 금세 숨이 찼다. 집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뒤에 있는 나도 신경을 써 줬으면 하였다.

비상구와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를 번갈아 타면서 도착한 곳은 지하였다. 타이어와 바닥이 마찰하면서 만들어진 지독한 냄새가 가득했다. 도경수가 차가 있어서 이리로 왔나하는 생각은 바로 접었다.

그는 주차되어있는 승합차 두 대를 가리켰다. 경호원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몇 명 주변에 돌아다녔다. 작은 몸이 밀치듯 시멘트벽에 날 숨겨두었다.

 

 

“멤버들 나오면 저쪽으로 갈 거야. 잘 따라와.”

 

 

출구로 이어진 길을 눈짓으로 쭉 살폈다. 꽤 긴데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고개는 끄덕였다.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자 경호원들이 반복해서 소리쳤다. 얼른 위로 올라가라고 하는데 순간 엄청 찔렸다. 유난히 큰 눈이 뻔뻔하게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그나마 위안했다.

숨이 막히지도 않은지 마스크를 쓴 채다. 경호원들은 수상한 행색을 한 도경수를 무시했다. 나 역시 그다지 옆에 붙어있고 싶지는 않았다. 계속 보는 저 눈초리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이곳을 벗어났을 것이다.

어디선가 여학생들이 구석구석에서 뛰쳐나왔다. 넓은 주차장 전체에 비명이 얽혔다. 경호원 여러 명이 일순간 한쪽으로 붙었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있어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틈바귀에 카이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토기가 몰렸다. 머리 안쪽이 웅웅거리고 생각이 하얗게 불탔다.

옷깃이 끌려갔다. 도경수가 잡아끌어 당겼다.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리고, 그걸 신호로 그는 아주 빠르게 차 사이를 넘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기가 무섭게 차 역시 저쪽에서부터 출발했다. 정확히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도경수는 어느 때부터 발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흰색 승합차를 노려보았다. 나도 옆에 같이 서서 차를 가만 응시했다. 조수석에는 팀 리더가 타고 있었다. 도경수 역시 이를 본 듯했다. 마스크를 집어 내리고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경례 자세를 취한다. 그 멤버도 이런 도경수를 본 것이 틀림없었다. 반갑다는 느낌이 확 드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알만했다. 역시 도경수는 비범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 저들이 자신을 기억하는지 포인트를 잘 잡고 있다. 똑같이 해야 하나 머뭇거리다 타이밍을 놓쳤다. 대신 본능이 예의를 붙잡았다. 차가 가까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허리를 깊게 숙였다. 두 대 모두 그렇게 떠나갔다.

 

 

“오, 괜찮은데?”

“뭐가?”

“그렇게 인사하는 거.”

 

 

작은 머리통에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철컥철컥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거수경례한 사람이 말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둘 중 어느 차에 카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인사 하는 건 봐줬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하나씩 욕심이 늘어가는 것인가 보다. 아무것도 몰랐던 몇 시간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눅눅한 냄새는 계속해서 풍겨오고 있었다. 조금 어지럽기도 해서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도경수는 이미 마스크를 올려 쓴 뒤였다.

저게 냄새를 좀 막아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황사용 마스크라도 다음에는 들고 와볼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뜸 내 핸드폰을 들고 간 그는 무언가를 입력했다. 전화를 거는 폼으로 봐서는 자기 번호를 해놓은 듯하다. 엄청난 거라도 준 양 건네주는 손에서 자신감이 넘쳐 나왔다.

 

 

“너 내 일행해라.”

 

 

도경수가 도대체 어디까지 내 범주를 벗어날지 감히 예상도 안 된다. 대답은 굳이 하지 않았다. 거절은 거절한다는 눈이었다.

남자 팬이 흔치 않은 이곳에서 아마 많이 외로웠나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 역시도 이를 놓치면 안됐다. 우리 둘은 조용히 손을 마주 잡았다.

 

 

 

 

 

현실성이 부족해진 게 확실하다.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피곤한 것은 확실했다. 내일은 오전 수업이라서 이렇게 뜬눈으로 있을 수 없다. 억지로 눈을 우겨 닫고 나서도 여전히 깜빡였다.

천장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저 얼굴이 진짜로 앞에 있는 것 같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지금까지 어디서 뭘 했냐고, 왜 이제야 나타났냐고 한다.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입이 떨이지지 않았다. 너야말로 지금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얼굴만 둥둥 떠 있던 그림자 덩어리가 점점 모양을 바꿔갔다. 팔다리가 생겨나는가 싶더니 알몸이 되어 배 위에 떨어졌다. 너무 어두워서 그런지 생김새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목소리도 들린다기보다는 안쪽에서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악수를 못해주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대신 그것보다 더 좋은 걸 해주겠다면서 밋밋한 가슴을 가까이 붙였다. 따뜻한 숨이 코 바로 앞에서 끼쳐왔다. 아랫도리에 둥글게 문질러지는 자극에 전신이 굳었다.

숙맥처럼 보였는지 잘 빠진 그림자는 부서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어딘지 익숙한 소음이었다. 창가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던 달빛이 힘을 더했다. 흐드러져있는 금색 머리카락이 맨 먼저 보였다. 진한 피부가 묘한 향을 만들어내며 하늘거렸다. 내 위에 올라가있는 사람은 확실히 남자였고 알고 있는 이였다. 남자는 혀로 입술을 야살스럽게 굴렸다.

 

 

 

 

 

“변백현, 죽여 버린다.”

“이 새끼 왜 또 아침부터 지랄.”

 

 

결국 방이 푸르스름하게 변해가는 시간이 되어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심한 가위에 눌린 터라 눈 주변이 시커멓다. 거울 속에서 마주한 얼굴은 가히 가관이다.

동방이라도 가서 눈을 붙일까하다 자체휴강이 되면 큰일이라 강의실로 왔다. 한참 뒤 변백현이 왔을 때 욕이 절로 나왔다. 잠을 푹 자지 못해서 괜히 기분이 나빴던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직접적인 연유였다. 다른 이들이 봤을 때 어이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머리색 뺐냐.”

“어제 했는데. 왜.”

 

 

변백현은 괜히 정수리를 벅벅 긁으며 별로야? 묻는다. 어울리는 건 나중 문제였다. 평소 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저 머리스타일이 눈에 밟혀 죽겠다. 전등에 따라 반짝이는 금발 머리가 유독 거슬렸다.

밤새 양기를 뺏어간 남자와 같은 머리를 한 변백현은 너무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심한 욕을 지껄여주고 싶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 껴서 나타난 금발 남자는 충격을 남기고 떠났다. 분명 얼굴을 봤는데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 더 뇌리에 박혔다. 처음이었다. 남자 때문에 팬티가 젖어있는 경험은. 나이 먹고 하얗게 묻은 속옷을 내 손으로 직접 빨게 될 줄이야. 묘한 죄책감과 책임감만은 예전에 느꼈던 것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남자가 나와서 애무한 것 정도로 몽정을 해 버린 난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런 말을 변백현에게 해봤자 별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재차 노려보는 것으로 대화를 끊었다. 그 역시 아침부터 욕을 들어서인지 입술을 쭉 내밀고 멀리 떨어져 앉았다.

 

빈 시간을 이용해서 캠퍼스 밖으로 나왔다.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도경수라 저장돼 있는 번호를 찾아 누르려다 멈칫 했다. 전화로 하기에는 뭔가 민망한 내용이다. 번호 자체는 그가 먼저 알려주었다. 그래도 이런 용도로 쓰라고 준 것은 아닐 것이다. 문자로 보낼까, 메신저로 보낼까 한참을 고민하다 일단 카페에 들어갔다.

음료를 앞에 두고 열심히 화면을 만졌다. 눈을 감아 곰곰 떠올려 보았다. 어릴 적에 했던 첫 몽정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수영복을 입은 갈색 머리 여인이 숲 속에서 나타나 날 호수로 이끌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 그 때는 분명 여자였는데......

카이를 본 뒤로 내 안에 새겨져있던 정의가 미묘하게 엇갈려가고 있다. 새벽에 나왔던 그 남자가 알고 보니 김종인이라면 난 이제 완전히 끝이다.

관자놀이를 누가 누르기라도 하는지 무지막지하게 저려왔다. 아무리 봐도 너무도 확실히 끝을 향해 곧장 뛰어가고 있다. 한 걸음마다 데드라인이 다섯 걸음 가까워져 온다.

어제 만났던 종인은 머리를 노랗게 빼서 야한 느낌이 강했었다. 그 얼굴이 오늘 새벽에 나타난 남자와 자꾸 겹쳐 보여 더 죽을 것 같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아닐 거야. 수도 없이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남자는 김종인이었다.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종인이라고 확신하자 점점 기억이 또렷해진다.

도경수라면 혹시나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그건 그것대로 궁금하면서도 징그럽다. 한 자리에서 고민을 반복했다. 커피는 서서히 식어갔다.

그냥 한번 물어보자는 마음에서 서둘러 자판을 쳤다. 혹시 팀 리더가 꿈에 나왔던 적이 있냐고 물었다. 확인을 누르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숫자 1이 사라졌다. 답장 또한 아주 빨랐다.

 

 

「ㅇㅇ」

 

 

반발할 수 없는 명확한 대답이었다. 그랬구나. 하긴 도경수 입장에서 보면 안 나온 쪽이 더 억울하고 이상할 것 같다. 너무 뻔한 질문을 했다. 내가 필요한 건 이것보다 더 깊은 내용인데 말이다. 어떻게 돌려 말해야 될지 정리가 되지 않아 엄지만 공중에서 움직였다. 화면에 상대 쪽 말풍선이 하나 더 생겨났다.

 

 

「왜? 너 김종인나옴?」

 

 

너무 놀라 딸꾹질이 튀어나왔다. 목구멍이 바짝 조여 들어온다. 쉽사리 긍정하는 뜻이 손으로 옮겨가기는 어려웠다. 도경수는 꽤 감이 좋아 보였다. 내가 어떤 말을 뱉으면 그 뒤까지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는 내용이 담긴 답장을 가까스로 보냈다. 미적지근해진 커피를 꿀꺽꿀꺽 넘겼다. 이번에도 숫자는 금방 사라졌다.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걱정과 두려움을 같이 껴안고 있었다.

뜬금없이 진동이 울려와서 보니 도경수라는 석자가 버젓이 화면에 떴다. 전화가 올 정도면 이게 그리 중요한 일이었던가 곱씹기까지 했다. 이거 받아도 되는 건가.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먼저 확인했다. 창가 자리에 이어폰 꽂은 여성 분, 두 테이블 옆에 커플 한 쌍, 조금 멀리서는 우리 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몇 명이 옹기종기 모였다. 이정도면 전화를 받을만하다. 커피로 한 번 더 목을 축였다.

 

 

“여보세,”

[너 김종인이랑 잤냐?]

 

 

지금은 커피를 마실 때가 아니었다. 아직 끝 쪽에 머물러있던 커피가 순간 열린 기도 쪽으로 흘러갔다. 토하듯 터져 나오는 갈색 액체는 주변인들 시야에도 정확히 걸렸다.

도경수는 이제 무서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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