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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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카이짱팬 다섯.

L2014. 5. 17. 00:12

 

 

 

 

 

05.

 

좋아하는 사람이 꿈에 나타나는 건 당연해. 그리고 네가 한 건 꿈이 아니야. 그럼... 뭔데? 음, 그건 그냥 귀접이지. 귀접은 몸이 피곤할 때 많이 나타나. 아... 하긴. 어제 많이 피곤했지. 그러니까 괜히 김종인한테 미안해하지 마. 그냥 즐겨.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거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며칠 전 도경수와 했던 통화 내용이 계속 머리 안을 휘저었다. 완벽한 답은 얻지 못했지만 한 떨기 걱정은 덜었다. 선 경험자가 괜찮다고 한다면 괜찮은 것이다. 중간 중간마다 날 위로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어구들은 대부분 우리 둘 모두에게 속했다. 도경수는 굳이 그것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딱 보면 딱이다.

눈치 빠르다는 소리를 제법 듣고 살아서 알 수 있다. 확실하다. 도경수도 겪은 일이다. 어디까지 갔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모든 일에서 나보다 훨씬 앞서 나가있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 길을 그대로 걸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답답했다.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내는 방법이 최선이다. 도경수 말이 백 번 맞다. 즐기면 되는 것이다. 즐기자.

 

 

잠들기 전마다 했던 마음가짐 덕분에 뜻이 통했나보다. 이불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결이 불어왔다. 살며시 눈을 뜨자 벽에 붙어있는 내가 느껴졌다. 발밑에 축축한 감각까지 들었다. 단이 긴 검은 바지와 단추가 몇 개 풀어진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마치 정말로 현실인 듯 굉장히 생생했다. 내려다보니 풀잎이 주변에 가득이었다. 잔뜩 날이 선 발등 뼈가 바로 보였다. 수평선 너머에 줄지어 피어있는 작은 꽃송이들이 흐리게 반짝였다.

아무리 보아도 바깥인데 등 뒤에는 벽이 있다. 과연 벽일까 싶었는데 마침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귀에서 들리는 건 아니었다. 속 안에서 울려왔다.

 

 

또 보네.

 

 

얼른 몸을 틀어 상대와 마주했다. 그는 나와 등을 대고 있던 것이다. 어쩐지 벽이 들락날락한다했다. 어둡게 깔려있던 침대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얼굴이 이제야 선명해졌다. 하얗게 색이 빠져있는 머리카락이 투명하게 보였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눈코입을 보지 못했을 때도 예감하고 있었다.

 

 

김종인.

 

 

두터운 선이 눈과 눈썹 사이를 가르고 있다. 코끝이 망울져보였다. 시선이 둥글게 다가오며 유한 미소를 내보였다. 두툼하게 잘라낸 덩어리 두 개가 가벼이 나눠졌다. 더 이상 엇나갈 수 없게 딱 그 얼굴이었다.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불렀어?

 

 

인식하기 전에 벌써 고개가 끄덕였다. 너무 예상한 반응이었는지 푸스스 웃음을 냈다. 그러고는 내 턱을 손가락으로 훑어 옆으로 지나갔다. 바로 쫓았는데 벌써 저만치 떨어졌다. 아무리 뛰어도 멀게만 느껴졌다. 잡힐 것처럼 근처에 다가왔다가도 다시 훅 거리가 떨어졌다.

한참 이름을 불렀다. 제발 멈춰달라고, 가지 말아달라고 질러댔다. 김종인은 한없이 달려 나갔다. 속에서 울려대던 목소리마저 묻혀가고 있다.

숨이 차 자리에 우뚝 서서 무릎을 잡았다. 그렇게 몇 번 호흡을 가다듬다 문득 뒤를 돌았다. 풀잎은 여전히 수평선에 걸쳐져 뻗어있다. 여태까지 달려왔던 길을 거슬러 뛰어갔다. 저곳을 향해 간 종인은 이제 점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곳은 신경 쓰지 않고 반대쪽만 집중해서 내달렸다. 일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꽃밭에 코를 묻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마침내 처음 눈을 뜬 곳으로 찾아왔다. 거기에는 종인이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햇살을 닮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일렁였다. 일정 거리가 되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속으로는 셈을 했다. 꺾어지는 숫자에 맞춰 뒤꿈치를 풀잎에 붙였다. 그가 닿아올 수 있도록 느린 발걸음으로 움직였다.

하나. 하나. 하나. 하나... 닿았다.

 

공기를 코로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면 종인은 숨을 내쉰다. 내가 내쉬면 그는 들이쉬었다. 편안한 감각이다. 작은 쉼터 안에 있기라도 한 듯 마음이 놓였다.

맨발바닥이 푹신하게 들어 올려졌다. 축축함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또 끝났구나. 오늘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얼굴을 봤다는 부분이다. 지난밤에 대한 괜한 죄책감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그 역시 말해주는 것도 같았다.

시야를 닫았다. 종인은 여전히 살을 맞대고 서 있다. 확실한 온기가 느껴져서 꿈이 아니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참 견고한 세계라고 마음이 읊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종인 역시 조용히 소리를 내었다.

 

 

꿈이 아니야.

 

 

 

 

 

 

 

 

 

시끄러운 알람 음이 침대에 번져나갔다. 금방이라도 두개골이 깨질 것 같았다. 양 옆으로 정확히 갈라질 소음이다. 눈이 안 떠져서 급박하게 손바닥을 놀렸다. 한참만에야 화면을 밀어 넘기고 고요함을 되찾았다.

첫 번째로 울린 알람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이런 일은 거의 드물었다. 심해에서 표면으로 한순간에 끌어올려진 느낌이라 개운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꿈이다. 이 상태로 눈을 감으면 꽃밭으로 전송될 수 있으려나. 꺼풀을 열고 닫을 때마다 앞에 있던 종인이 흐려져 갔다. 이상 생각해 봤자 허무해지기만 더 하겠나.

어깨를 열심히 돌리며 간밤에 날아온 메신저들을 확인해 보았다. 변백현이 잔뜩 날아와서 날 부르고 있었다. 무음이라 다행이지 하마터면 꿈속에서 진동 벌레들을 만날 뻔했다.

하지만 쉽게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다 쓸모없는 내용들이라 넘기고 있었는데 단 한 단어가 내 몸뚱이를 세게 때렸다. 뻐근하던 근육들이 일제히 날 짓누르며 침대 밖으로 향했다.

 

 

「과제했냐고 똥멍충아!」

 

 

했을 리 없다.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마당에 끝을 보았을 리 만무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단장을 마치고 튀어나갔다. 익숙한 통화음이 이어지며 얼마 후 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지금 어디야.”

[아 뭐야 박찬열 나 지금 졸려......]

“과제는.”

[어? 어어. 다 했지. 끝냈지.]

 

 

목소리에서 졸음이 묻어나온다. 비몽사몽간에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지금 찾아가도 제대로 된 사고는 못할 것이라 짐작되었다.

학교 쪽으로 향하던 발을 다른 곳으로 틀었다. 자취하는 놈이라 새벽같이 찾아가도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된다. 이건 편리하게 굴려먹을 수 있다는 뜻도 같이 담고 있다.

시간을 확인하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꿈에서도 그렇게 뛰더니 현실에서도 일어나자마자 한다는 게 뜀박질이다. 종인이 꿈이 아니라고 말했던 건 이걸 이야기하려던 것일까. 문득 원망스러워졌다.

뛰는 속도를 더 올렸다. 빠르게 맞닿는 공기 감촉에 물기가 어렸다. 원망해야할 건 꿈에서 나타나 뛰어다니게 만든 종인이 아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인정하는 순간 급속도로 현실이 다가와 앞을 막아버릴 것이다. 난 아직 축축한 풀잎들이 가득 펼쳐져있는 꽃밭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내 전화로 잠에서 깨어난 변백현이 열심히 방어한 덕에 과제를 베끼지 못했다. 이건 절망이었다. 학점이 이렇게 도루묵이 되는가싶어 여기서 변백현을 죽일까하는 생각도 했다. 허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교수님께서 과제 제출 기한을 밀어주셨다. 이건 희망이었다.

수업 중에는 한껏 노려보던 변백현이 다 끝나고 나자 성큼성큼 다가왔다.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목을 졸라왔다. 여전히 머리색은 금빛 찬란하다. 그래도 전보다 상대적으로 편해졌다. 비슷한 머리라 할지라도 얼굴은 전혀 다르다. 변백현은 두 번 죽었다 깨어나도 카이를 따라갈 수 없다.

그런데 점점 조르는 힘이 강해져서 천장에 하얀 빛이 보일 지경이라 얼른 손을 쳐냈다. 숨 쉴 구멍은 남겨두고 목을 졸라야지. 눈빛을 보아하니 억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기야 밤까지 새면서 작성한 과제물인데 그럴 만도 하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여섯 음절로 변백현을 다스리는 법을 알고 있다.

 

 

“돈가스 사 줄게.”

 

 

 

 

 

*

 

 

 

 

 

도경수와 만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앨범 활동하고 있을 때 바짝 달려야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때 아니면 마땅히 볼 곳이 없다면서 날 볶아댔다. 학교에 있다가도 그에게서 연락이 오면 바로 달려 나갔다. 그가 부르는 곳으로 가면 멤버들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가 있는 곳으로 멤버들이 따라온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회사 앞까지 가기도 하였다. 고작 세 번 중에 카이를 만난 날은 딱 하루였다. 도경수가 보려는 멤버는 내가 간 날마다 항상 나타났다. 확률 싸움에서 이미 이기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 엄청나게 크고 대단해 보였다. 실질적으로는 한참 작았지만.

카이가 나타난 날은 처음으로 회사 앞에 찾아갔을 때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위치적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도경수는 이미 그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는지 눈길이 쏠리지 않았다.

대신 내가 모든 것을 받아냈다. 아래쪽에서 향해오는 따끔한 눈초리가 피부를 잘게 두들겨 아팠다. 그나마 안경을 쓰고 있어서 전보다는 빳빳하게 고개를 들었다.

음악 방송이 끝나고 시간이 꽤 지났다.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서 툴툴거리는 미성들이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회식 간 거 아니냐는 울림도 들렸다. 불안함에 도경수를 보자 너무도 확실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회사 뒤쪽으로 주차되는 하얀 차는 전에 봤던 승합차보다 조금 더 작았다. 경차 정도 크기였다. 설마 그 안에서 카이가 나오리라는 생각은 못했다. 안에서는 카이를 비롯한 세 명이 튀어나왔다.

리더도 나오다 안에서 먹은 것으로 보이는 음료수 병 하나를 떨어뜨렸다. 저도 당황했는지 굴러가는 병을 지켜만 보았다. 유리병이라 깨질 줄 알았는데 용케 버티었다.

도경수는 그걸 보고 쪼르르 달려가 병을 주워 리더에게 넘겨주었다. 만담을 옮겨놓은 것 같은 장면이었다. 리더도 그걸 두 손으로 받아 들고 도경수에게 고개를 슬쩍 숙였다.

회사로 들어가는 그들에게 던져지는 것들은 수많은 이름이었다. 아마 자신들 이름이겠지. 도경수는 홀로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멤버들을 한없이 쳐다만 보았다. 내가 입을 벌린 건 딱 그 순간이었다.

 

 

“이번 앨범 대박나세요!”

 

 

우렁차게 울리는 목소리에 들어가려던 멤버들 시선이 모두 이쪽을 향했다. 내 목소리를 제외한 전체가 고요해졌다. 그러고도 몇 번 비슷한 말을 질렀던 것 같다. 기억하는 것 중 하나는 종인이 형, 머리 예뻐요. 새하얀 머리를 위로 넘겨 시원스러운 이마가 딱 마음에 들었다.

 

몇 분 뒤, 카이는 매니저를 동반하고 다시 나와 차를 탔다. 복장이 다소 편해져 있었다. 저쪽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모였다. 이번에도 역시 응원을 해주려 숨을 크게 들이쉬는데 곧바로 막혔다.

카이가 뒷좌석에 타려다 말고 얼굴을 돌렸다. 공중에서 얽힌 시선에 확 굳어버렸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정확히 이쪽을 향한 손바닥은 양쪽으로 흔들렸다.

그것을 신호로 곧장 허리를 숙였다. 연속적으로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그는 얼른 문을 닫았고 차는 출발했다. 멀어지는 차 뒤꽁무니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옆구리가 쿡 찔려와 내려다보니 도경수였다. 왠지 한 건 했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카이는 머리 스타일을 바꿨다.

 

후로 두 번 더 갔을 때는 어쩐 일인지 카이만 만나지 못했다. 아마 시기가 잘 맞지 않았던가보다. 그렇게 스스로 위안 삼았다. 도경수는 저 혼자 신나서 리더와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말했다.

카이가 없을 때도 난 계속해서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더욱이 리더는 도경수말고도 내 얼굴까지 얼핏 기억해주는 듯 싶었다. 카이에게 주려던 선물을 리더에게 주기도 했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약속을 잡지 않고 무작정 상대를 기다리는 일은 힘들다. 체력이 무서울 정도로 깎여갔다. 이렇게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집에 오면 눅진해져 바로 잠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과제는 날 붙잡았고, 더 나아가 물고 늘어졌다. 그래도 항상 가는 건 아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어색한 때는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일도 그러했다.

오늘은 언제나처럼 멤버들이 가끔 오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안을 비롯해서 바깥까지 역시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조금 일찍 와서 자리를 잡기를 잘했다. 이제 이런 계산 머리까지 돌아가는 것을 보니 도경수가 옮은 것이 확실하다.

이렇게 여유로울 줄 알았으면 노트북이라도 가져올 걸. 기한이 모레까지인 과제가 남아있다. 뭐, 밤부터 시작하면 되겠지. 일단 그렇게 일단락 짓고 유자차를 빨았다. 도경수는 건너편에서 케이크 조각을 포크로 떠먹었다. 커다란 눈동자가 뒹굴뒹굴 구르다 딱 멈춰 섰다. 포크까지 테이블에 소리 나게 놓는다.

누가 왔나 싶어서 도경수가 보는 곳을 같이 쳐다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저 여자 손님들만이 도란도란 모여 있을 따름이다. 그를 마주하고 보니까 이번에는 그 큰 눈알이 이쪽을 향했다.

 

 

“왜 그래.”

“너 혹시 종이 있어?”

 

 

뜬금없이 종이는 왜 찾나 싶어 받아온 영수증을 슥 내밀었더니 이게 아니란다. 쉽게 버리지 않는 수첩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슨 중요한 걸 써야 된다고 수첩까지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애꿎은 지갑만 뒤졌다.

순간 무슨 생각이라도 났는지 도경수가 신속하게 지갑을 뺏어갔다. 손에 걸려 나온 물건은 내 신분증이었다. 가락 사이마다 움직이는 놀림이 제법 익숙했다.

저 신분증은 도대체 왜 이리 도경수 손에 자주 들어가는 걸까. 지갑 안쪽에서 뭔가 재밌는거라도 봤는지 잠깐 헛웃음을 냈다. 숨겨둔 카이를 발견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자기 가방에서 꺼낸 얇은 마카 뚜껑을 소리 나게 열었다. 망설임 없이 뒤편을 돌려 무언가를 열심히 긁적거린다.

 

 

“뭐해.”

 

 

메모를 할 생각이라면 거긴 완전 잘못된 곳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빼앗지도 못했다.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민증은 평생 가니까.”

 

 

착실하게 적어낸 끝에 점까지 찍고 돌려주었다. 그 평생 가는 민증에 대체 뭘 적어낸 건지 얼른 들어 확인했다.

낯선 주소가 길게 적혀있었다. 우리 집 주소는 확실히 아니다. 이사를 몇 번이나 다니는 바람에 신분증에 나와 있는 주소를 굳이 바꾸지 않았었다. 사실 귀찮았다. 그런데 도경수가 단숨에 우리 집 주소를 이상하게 바꿔놓았다.

 

 

“숙소 주소야.”

 

 

그래서 그렇게 비밀스러운 곳을 원했던 것이다. 혹여나 나중에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며 알아두라고 했다. 이제는 내가 알아도 될 것 같다나 뭐라나. 믿음이 생겼단다.

이 말은 어쩐지 가시가 담겨있었다. 꽤 많은 일정을 같이 다녀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도경수는 아니었나보다. 카페에서 케이크 먹다가 생긴 믿음은 어디서 뛰쳐나온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주소를 속으로 반복해서 읽어보았다. 학교에서는 그나마 가까웠다. 고맙다고 하자 그는 어느 새 깨끗이 비워낸 접시를 두 번 두들겼다.

도경수 믿음은 4500원짜리 조각케이크 값으로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신분증을 다시 끼워 넣은 지갑을 들고 일어서 카운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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