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히방

공지사항

ㅂㅈ 응, 종인아

S2014. 6. 15. 01:50





한 2주정도 되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장기간 서 있을 생각은 없었다. 타이밍을 못 잡은 탓이다. 쉽게 다가갈 수가 없어 일단 때를 살폈다. 그렇게 생각한 부분부터가 잘못이었다. 기다리면 안됐다. 초장에 치고 빠지기를 했어야했는데 우물쭈물 거리다 결국 이렇게 돼 버렸다. 
아마 엄청 수상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꼴불견으로 보일지 상상하기도 싫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모두 경계하는 눈빛을 던졌다. 거기에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여기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한 그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이 날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받는 야멸친 시선은 고통이었다. 남들이 수군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바짓단을 잡고 변명하고 싶었다. 
현재 상황에 앞서 말을 아예 걸어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나름 계획도 세웠다. 3일 정도 서 있으면 얼굴정도는 알게 될 테니 그 뒤에 편하게 다가가려 했다. 곧 있으면 말을 걸 수 있다. 그렇게 마음먹자 참을성이 생겼다. 모레면 대화할 수 있어. 내일이면 대화할 수 있어. 
4일 째 되던 날, 때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주변 학생들도 적은 때였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정신도 맑았다. 예감이 괜찮았다. 기다리는 자에게는 역시 복이 오는구나하여 작은 감격도 했다. 그 날은 펄떡펄떡 뛰는 잉어를 한 손으로 낚아채는 꿈도 꾸었다. 어쩐지 재수가 좋을 것 같아 집에서 나서기 전, 넥타이도 잉어랑 비슷한 색깔로 골라 맸다. 





“학생, 여기 다니세요?” 





이름은 알아도 부를 수 없었다. 왼쪽가슴에 버젓이 박혀있는 이름 석 자가 정말 석(石)처럼 느껴졌다. 목젖이 절로 파들파들 떨렸다. 애초에 건네려고 한 말은 사실 저게 아니다. 뭔가 더 길고 확실한 의도를 전하려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성큼성큼 코앞까지 걸어와 버렸다. 아이를 놓치면 안 되었다. 붙잡아야한다는 일념으로 낸 생각한 수준이 고작 이랬다. 차라리 도를 믿느냐 묻는 게 나을 뻔 봤다. 물론,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찍혀있을지도 몰랐다. 
끔뻑이는 눈망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한 선을 그어냈다. 대답은 대충 뱉어내고 서둘러 자리를 떠 버렸다. 침 뱉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겼다. 속으로 계속 비명을 질렀다. 일 초만 더 생각했어도 저것보다는 나았을 거다. 물어볼 말이 많았는데 한 번으로 끝나버렸다. 대화는커녕 대답 하나도 신통치 않았다. 변백현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 첫 번째, 천장에 달아둘 튼튼하고 예쁜 밧줄 사기. 두 번째, 잉어 색 넥타이 버리기. 

다른 때라면 벌써 나오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날 피하려고 후문으로 빠져나간 것일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이제 오지 말라는 암묵적인 표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아직 아이는 학교에 있다. 연락을 따로 취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에게 잡혀 반성문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뒤늦게 정문을 빠져나가던 한 학생이 낸 통화소리 덕분이었다. 





“별 재능도 없는 게 예체능 한다고 야자 째잖아.” 





거기까지 들었을 때는 사실 아무 생각 없었다. 예체능을 하면 야자를 안 해도 되는 구나 그래서 종인이가 항상 일찍 나왔던 거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김종인 새끼 얍삽하게 생겨서 주먹 존나 매워.”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예체능 하는 김종인이 학교에 두 명 일리도 없을 터였다. 뭐라 물어보기도 전에 놈은 정문을 빠르게 가로질러 길을 건너가 버렸다. 소리라도 질러볼까 하다가 말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폐 깊숙이 숨을 채웠다가 곧 뱉어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저 놈을 잡아다 앞에 무릎을 꿇려놓고 방금 내뱉은 말에 대해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종인이가 미처 때리지 못한 반대쪽 아구를 돌려 차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달래주어야 한다. 다른 이들이 상처 주지 않아도 홀로 자신을 긁어대고 있었을 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너는 저 놈이 말한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분명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온통 속으로 집어삼키고 파랗게 뜬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정황상 선생이 그것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아이만 괜찮다면, 나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조심조심 가까워져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은 주변을 핸드폰 불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그러다 웬 빛이 확 끼쳐왔다. 당연히 손으로 막아섰고 그 사이에서 한 아이가 웃음보를 터뜨렸다. 플래시에 눈이 익숙해지자 서서히 인영이 바로 잡혔다. 김종인이다. 종인이었다. 그가 서 있었다. 
거짓 없는 딱 진실 된 웃음소리였다. 벌어진 입에서 앞니가 가장 도드라져보였다. 나 역시 아이를 따라 미소가 흘러나왔다.  





“아저씨 맨날 여기서 뭐했어요? 혹시, 나 기다렸어요?” 





너무도 단도직입적인 질문이다. 이 한 문장에서 젊은이가 뿜어내는 패기가 흘러넘쳤다고도 할 수 있다. 앞에 놓인 호칭은 사실 조금 충격이었으나 애써 넣어두었다. 





“아니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보니 시간이 맞았어요.” 





뒤로 가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는 나만 느낀 게 아니다. 어두워도 종인이가 짓는 표정이 어떤 식으로 차 있을지는 쉽게 예상됐다. 이러다가 겨우겨우 온 기회를 내가 집어던져버리는 꼴이 될까봐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침착하자. 그렇게 생각할수록 자꾸 뒷머리가 간지러워왔다. 정리하는 척 몇 번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팬이에요.” 





내 생각에도 너무 대뜸 냈다. 아이를 안아주려고 한 의도가 이상한 쪽으로 빙 둘러졌다. 역시 당황한 게 분명했다. 방금 전까지 당당하던 기운이 훅 사그라졌다. 앞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도망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까지 했다. 





“고맙습니다.” 





뒤이어 들리는 대답은 아주 간결했지만 진심이 담겨있었다. 덕분에 목이 꾹 막혀왔다. 이렇게나 자기 재능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아이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가 있나싶다. 아까 그 놈을 그렇게 보냈으면 안 되었다. 잡아서 목을 쳤어야했다. 자기가 한 말이 어떤 말인지 눈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또 다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문득 아이를 보았을 때 어떤 때보다도 해사한 얼굴이었다. 쉽사리 눈을 마주칠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만일 종인이 자신을 언제 처음 봤던 것이냐 묻는다면 쉽게 답해줄 수 없다. 대충 학원 홈페이지 영상을 본 줄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알려주지 않는 거다. 그 영상도 보기는 했지만 그게 계기는 아니었다. 조금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부터 지켜봤냐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이는 날 기억 못하고 있다. 최대한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상책이다. 
그곳은 길거리였다. 그는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음악도 없다. 무대조차 없다. 그저 둥글게 세워진 작은 플라스틱 상자가 전부였다. 안에는 근육이 섬세하게 새겨진 몸을 가진 아이 한 명만 들었다. 하얀 천이 몸 전체를 둘레둘레 휘감았다. 사이로 비집고 나선 짙은 피부색은 투명한 플라스틱 밖으로 그대로 비춰졌다. 
거리 공연 같아보였는데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였다. 뭐라도 도움을 주어야한다는 사명감이 갑자기 차올랐다. 가던 길을 멈추고 안에 든 사람 뒤로 돌아가 섰다. 들고 있던 서류 가방까지 발밑에 내려두었다. 이어서 일정하게 박수했다. 가만 서 있던 아이는 소리에 반응하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나, 느꼈을 때는 이미 박자를 자기 쪽으로 끌고 가 있었다. 내 박수가 어떤 음조를 타고 있는지 보여주는 몸짓이었다. 시야를 완전히 닫아내고 일정하게 울리는 짝짝 소리에만 집중하였다. 내려앉은 속눈썹까지 춤에 포함된 느낌이었다. 입이 절로 벌어졌다. 아이가 추는 선만 보자면 정말로 어디선가 음악을 틀고 있는 듯하였다. 그는 유연하게 강약을 조절할 줄 알았다. 박수 소리가 잦아드는가 싶으면 움직임마저 작아졌다. 그래서 멈출 수 없었다. 음악이 끝나면 무용수도 멈출 것이라 생각했다. 
한 가운데서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생기자 사람들은 단숨에 모여들었다. 내가 치고 있던 박자에 맞춰 여러 명이 따라 가락을 만들어냈다.  
짤막한 공연이 끝난 뒤 사람들은 제 갈 길을 찾아갔다. 아이는 조용히 문을 열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로 뛰어가 버렸다. 하얀 천이 나풀거리며 어떤 잔상을 남겼다. 뒤이어 플라스틱 상자를 철수하러 온 이들에게 이게 무엇이냐 묻자 무용 학원에서 나왔단다. 관객에 대한 공포심을 죽이기 위해 학원에서 만든 일종의 프로모션인 것 같았다. 
그게 나와 아이가 만난 처음이다. 덕분에 거래처에 늦어 하마터면 건수가 하나 날아갈 뻔했지만 그랬다고 하더라도 후회 없었을 것이다. 여태 느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언제 다시 찾아올 지모를 감정을 아이가 끌어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평생에 걸쳐 잊지 못할 순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종인이가 나에게 나이 많은 삼촌이랑 노는 것 같아 싫다고 했다. 원조교제 운운하며 나와 자기 사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애들이 많아 잔뜩 골이 나 있었다. 차문을 거세게 쾅 닫고 포르르 들어가 버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머리 싸매고 고민했다. 과연 고민만해서 풀릴 문제는 아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을 직시해야했다. 안경을 벗고 있으니 얼굴이 흐릿하게 보여 주섬주섬 꼈다. 
정돈 안 된 머리털과 유행지난 뿔테안경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부분을 일단 한번 파고 들어보니 문제점이 끝도 없었다. 앞머리를 꾹 눌러 잡아 위로 넘겨 올렸다. 이마가 보이는 게 어색해서 얼른 다시 내렸다. 무엇보다 서둘러 해결해야 될 건 안경이었다. 사실 종인이랑 사이가 가까워진 후부터 외모에 신경을 써야하는 건 알고 있었다. 학생들이 얼마나 그 부분에 민감한지도 알았다. 그 날 바로 렌즈를 사 놓기는 했었지만 차마 용기가 없어 끼지 못했다. 대뜸 모습을 바꾸고 나타나면 아이가 당황할까봐 걱정됐었다. 하지만 그게 다 쓸데없는 잔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말하기 전에 먼저 했다면 종인이가 속상할 일도 없을 텐데. 
일어나자마자 집 앞 단골 이발소로 뛰어가 문을 두드렸다. 졸린 눈으로 욕을 퍼부으려던 주인 분은 몰아치는 내 부탁에 한숨을 훅 내쉬며 들어오라 하셨다. 표정이 제법 비장해 보였는지 뭐라 말은 못하시고 평소보다 천을 꽉 매는 것으로 화를 대신했다. 
맡고 있는 업무 자체가 발로 뛰는 영업직이다 보니 회사에 발붙이고 있는 경우는 적다. 그래도 일단 사람들 반응을 보기 위해 나갔다. 예상보다 훨씬 굉장했다. 전에는 눈길도 안주던 여자 동료들이 한 마디씩 건넸다. 





“와, 백현 씨, 속쌍 있었구나.” 
“훨씬 젊어 보여요. 왜 여태 이렇게 안 다녔어?” 
“넥타이는 안 매는 게 더 낫겠어요. 아, 넥타이 푸는 김에 단추도 몇 개 풀어요.” 





코디까지 신경 쓰며 자기들끼리 까르륵거리기 바빴다. 내가 보는 것보다는 여자들 눈이 조금 더 나을 테니 말은 들었다. 왠지 계속 앉아있는 이곳이 불편하여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조언 고맙습니다. 일초가 급하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언뜻 안에서 혹시 오늘 소개팅 있는 거 아니냐고 저럴 줄 알았으면 자기가 잡는 거였다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는 내가 본인한테 관심이 있었단다.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눈알이 절로 휘 굴러갔다. 말을 한 게 누군지는 감도 안 잡히지만 저 이에게 관심을 표한 것이 적어도 난 아니라는 건 확답할 수 있다. 난 정말 아니다. 





“종인이 보고 싶다.”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무의식중에 튀어나와 잠시 동안은 내가 뭐라고 했는지 인식 못했다. 음성이 물에 잉크를 퍼뜨린 듯 귓속으로 번졌다. 방금 여기서 말을 한 이는 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저 말도 내가 했다는 소리였다.  
허, 기가 차 헛웃음이 툭 튀어나왔다. 변백현이 제정신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미쳤는지는 몰랐다. 알겠다, 백현아. 네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종인이 보러가자. 나서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훨씬 가벼웠다. 

겉모습이 바뀌자 종인이도 날 대하는 게 조금은 더 편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호칭은 아저씨였다. 나름 만족하고 다녔다. 그렇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종인이 입장에서는 내가 아저씨인 게 맞고 무엇보다 이렇게 같이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감이 무뎠다. 친구들 앞에서는 날 형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거다. 
종인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학생이 날 발견하고 쪼르르 다가왔다. 키가 제법 크고 말랐다. 약간 매서운 느낌을 가진 아이였다. 종종 종인이와 같이 하교를 하던 아이였다. 이름을 볼까하다가 괜한 자존심에 말았다. 조그마한 입을 열어 말하는데 생각보다 가벼운 음성이라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어, 어 안녕.” 
“백현 형이시죠? 전 오세훈이라고 합니다.” 





꾸벅 숙이는 정수리가 둥글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예의가 바른 녀석이었다. 그래, 그래. 고개를 끄덕이고 종인이는 어디 있느냐 물었다. 아직 종례가 안 끝나서 자기가 먼저 나왔다고 했다. 





“종인이가 형 얘기 많이 해요. 형 되게 착하다고.” 





괜찮으면 자기도 데려가서 놀아달라고 괜한 넉살까지 부렸다. 자꾸 형, 형 하는데 말이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면서 왠지 친근했다. 그래서 나 역시 녀석을 조금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근데 왜 나한테 형이라고 해?” 
“종인이가 저한테 말할 때 형이라고 해서 저도 입에 붙었나 봐요. 아,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 형님이라고 할까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단 한 번도 형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사실은 항상 날 형이라고 부르고 있던 것이다. 그게 어떤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간을 잠깐 보고는 종인이 금방 나올 것 같다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마 그 때부터 형 소리에 집착하게 되었다. 전해 듣는 것 말고 직접 듣고 싶었다. 이건 욕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억울하지 않다면 그게 더욱 이상한 일 아닌가. 






“아저씨.” 
“형.” 
“아저씨.” 
“형!” 





고집은 자기 입술만큼 두꺼워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를 않았다. 친구들에게는 나를 형이라고 하면서 왜 내 앞에서는 아저씨로 부르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버틸수록 울적해져 갔다. 내가 받아야하는 편지가 다른 집으로 잘못 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옷 스타일이 아직 부족해서 그런가싶어 아예 싹 고쳐보기도 하였다.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다르게 하고 다녔다. 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모습이라 어색했다. 괜히 입고 나왔나하는 생각이 들 때, 가끔 보여주는 진정으로 놀란 종인이 얼굴은 날 흡족하게 만들었다. 
계속 우기다보면 들어주지 않을까하여 일단 말을 해보기는 하는데 도저히 들어줄 생각을 않는다. 그나마 이번에는 조금 크게 주장을 했더니 들고 있던 치킨을 내려놓았다. 입을 우물우물 움직이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다. 이제야 불러주려나. 탁자에 몸을 깊게 기대고 바라보았다.





“아저씨.” 





절대 한 마디를 안 진다. 그런데도 못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종인이는 지금 그 어떤 때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다. 공부만 하기에도 바쁜데 자신이 정말로 하고자하는 일을 위하여 노력 중이다. 신체적,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이 울분을 풀어야할지도 모를 것이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못하다. 그런 부분을 어떤 형태든 간에 자기 자신을 나에게 풀어주는 게 좋다. 그건 꽤 만족스러운 기분이다. 
치킨 살을 먹기 좋게 발라 입 근처에 대주니 덥석 받아먹었다. 음료가 비어있는 듯 하여 얼른 가서 새로 받아왔다. 버릇처럼 내가 먹으려다 종인이에게 건넸다. 그것 또한 쭉쭉 잘도 먹는다. 마음이 뿌듯했다. 이게 아이 키우는 재미인가 하다가도 그거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라 어려웠다. 
짧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종인이 학원 시간이 다다라서 정리를 위해 일어섰다. 한 마리를 버릴 것 없이 싹싹 발라먹었다.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식성도 좋은 편인데 살이 안찌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항상 만나면 밥부터 먹이는데도 보면 말라있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우리 종인이 더 맛있는 거 사줄 텐데. 
닭 뼈를 종이에 싸서 일반쓰레기에 넣고 얼음을 따로 통에 털어 넣었다. 누군가가 옆에 다가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오빠!” 
“어?” 





오랜만에 보는 친척 동생이 있었다. 머리를 길러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당황하고 있는 중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어릴 적이랑 똑 닮아서 다행히 알아보았다. 동생은 하이힐 때문에 발이 아파 죽겠다며 비적비적 바닥에 비벼댔다. 그럼 왜 신느냐고 조용히 나무라니까 예쁘잖아요, 하면서 또 샐쭉 웃는다. 친구들이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어 길게 이야기는 못하니 번호 바뀌었으면 얼른 알려달라고 핸드폰을 건네 왔다. 
쿠당탕. 큰 쇳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음이 들렸다. 그리고는 저쪽에서 진동을 타고 온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왔다. 





“백현이 형!” 





정확히 나를 지명했다. 동생은 큰 목소리에 놀랐다고 하더라도 내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기서 내 이름을 알고, 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시선이 향한 곳에는 김종인이 서 있었다. 아주 잠시간 눈이 마주했다. 이 많은 사람 중에서 아이만 보였다. 그리고 금방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미안, 나중에 또 보자.” 





곧바로 따라 나갔으나 이미 어딘가로 가 버렸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연락이 닿지 않는데도 어쩐지 심적으로는 안정이 되었다. 나서기 전 종인은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하였는지 알고 있다. 왜 도망 나갔는지는 더욱 잘 안다. 스스로도 놀란 것이다. 
갑자기 팍하고 터지는 웃음보를 멈출 새가 없었다. 거리에서 혼자 웃고 있는 모습이 껄끄러웠는지 주변 사람들이 피한다. 괜히 민망해 손으로 가려내고 우선 차에 탔다. 
한 열 번 정도 하니까 드디어 받았다. 상대 쪽에서는 여보세요 같은 말도 하지 않았다. 아주 조용했다. 눈치를 보고 있는 듯 했다. 핸드폰을 볼에서 살짝 떼고 목소리를 다듬었다. 김종인 하는 행동을 보고 있자면 정말 미치겠다. 이렇게 순수할 수 있구나. 자기는 다 컸다고 생각할 아이에게 귀엽다고 말하면 큰 화를 입을 지도 모른다. 애써 차분하게 진정했다. 





“종인아, 어디 갔어.” 





대답이 없다. 묵묵히 숨만 골라내고 있다. 급하게 뛰어나간 탓에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저... 오늘은 혼자 학원 갈 게요.” 





안에서는 그토록 모난 듯이 툭툭 쏘아댔던 억양이 그새 바뀌었다. 어딘지 조심스럽고 끝이 떨려왔다. 다시금 핸드폰을 멀리 두고 손등을 꽉 물어 씹었다. 속으로 김종인 이름을 세 번 읊었다. 그렇게 해도 끅끅 올라오는 신음이 멈춰지지를 않아서 반대로도 읊었다. 아이를 살살 달래야할 시점이다. 





“종인아,” 
“왜요.” 
“어디야.” 





어느 때보다 더욱 상냥함을 담았다. 혹여나 전화를 끊고 멀리 도망가 버릴까봐 불안하기도 하였다. 한참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보채지 않았다. 급하게 다가가면 파드득 놀라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을 것을 안다. 꾹 다물고 있던 아이가 마침내 대답했다. 그리 멀지 않은 건물이었다. 기다려. 그렇게만 남기고 내 쪽에서 먼저 단선했다. 

인도 근처에 차를 대고 건물로 바로 뛰었다. 입구에 벌써 나와 있어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있다가 날 발견했는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난다. 고개를 슬쩍 까딱이며 입술을 씹어 무는 행동이 엄청난 일인마냥 눈알에 쿡 박혔다. 거의 뛰다시피 달음박질해 종인을 확 안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로 도망갈 것 같았다. 단단히 붙잡았다. 끙끙대며 벗어나려고 하다 결국 포기해버리고 푹 안겨온다. 등을 느리게 쓸어주었다. 
그에 맞게 쉭쉭 불어오는 작은 숨결이 고았다. 달리 놀랄 일도 아닌데 뭐 무서운 게 있다고 이리 꽁꽁 숨었다. 종인이는 내 어깨 위에 이마를 대고 꾹 눌러왔다. 강한 힘이 실려 있다. 투정을 부리는 듯하다. 아이도 찾았으니 이제 그만 학원에 데려다줄까 하는데 종인이가 입을 열었다. 





“혹시 좋아해요?” 





거의 음절마다 뚝뚝 끊어져 들린 말을 억지로 머리에서 이어 붙였다. 어떻게 대답해야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체가 명확한 물음이 아니라 그렇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조금 더 깊숙이 끌어안았다. 





“형이 너를?” 
“아까 그건 실수에요!” 





고요하게 숨만 쉬고 있던 아이가 다시 온몸을 떨었다. 어떻게든 떨치려 했지만 내가 그리 쉽게 놔줄리 없었다. 
어떤 변명도 들리지 않는다. 실수든 무엇이든 일단 뱉었으니 끝난 것이다. 





“여자 때문에 순간 울컥해서...” 





아, 이 순간 난 지금 이 아이를 정의하는 말로 단 한 단어만이 머리에 맴돌았다. 사랑스럽다. 그것을 스스로가 깨닫지 못한 게 다행이라고 한다면 다행이겠다.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있는 힘을 다해 품  속에 집어넣었다. 숨통이 눌린다며 등을 쿵쿵 때려왔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방금 자기가 한 말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나보다. 





“종인아.” 
“왜요.” 
“얼른 졸업해라.” 





어깨에 전해지는 무게가 덜어지나 싶다가 이제는 콩콩 찧어왔다. 별 것 아닌 행동인데 웃음은 더 크게 팍 뿜어졌다. 무어라 정확히 잡아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꽉 차있던 보따리 끈이 풀려, 안에 들어있던 것이 마구 흘러넘쳐 나오는 느낌이다. 벙하니 섰던 아이도 살짝 입가를 올렸다. 우리는 얼마간 아무 말도 없이 웃음소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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