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히방

공지사항

ㅂㅈ 아, 형

S2014. 6. 15. 01:49






한 2주정도 되었다. 고정된 자리인 듯 항상 서 있다. 처음에는 학생 부모님인가 하다 생각보다 젊은 얼굴에 형이나 오빠겠지 하고 넘어갔다. 학교 애들 중에는 하교 후에 가족들이 데리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역시 그런 부류라고 여겼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게 맞다. 날이 지남에 따라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다. 너무 꾸준했다. 언제나와 같이 앞으로 스쳐 가는데 말을 걸기도 하였다. 정말 간단하고도 불필요한 말이었다. 





“학생, 여기 다니세요?” 





다소 낮은 음색이었다. 아래로 쳐진 선한 인상과는 대비되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놀랐고 예상과 다른 목소리에 두 번 놀랐다. 교복만 보면 알 수 있을 것을 굳이 물었어야했나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몇 초정도 바라보고만 있자니 남자도 당황한 기색을 늘어놓았다. 그 역시 내가 이런 반응을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되도록 대답은 짧게 끊고 서둘러 위치를 벗어났다. 이후로는 종종 눈만 마주치는 정도였다. 
얼굴을 턱하니 가리는 뿔테안경을 얹어 쓴데다 넥타이까지 꽉 막히게 맸다. 덥수룩하게 덮인 머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정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흰 드레스셔츠는 긴 팔이 손목 끝까지 덮였다. 까만 정장바지 안에 넣은 셔츠를 벨트로 꽉 맨 모양도 아주 답답했다. 하복을 입고 있어도 땀이 글썽글썽 맺히는 날씨다. 내리쬐는 햇볕을 몽땅 무시한 채 묶여있는 차림을 보면 딱 회사원이다. 
해고 안 당하나. 그런 생각이 들만큼 자주 보였다. 교문으로 출근을 하는 것도 같았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서 정문 이후로 차마 들어오지는 못한다. 그가 끌고 온 것으로 보이는 까만 승용차 한 대는 항상 깜빡이를 켠 채 인도 옆에 놓였다. 


그 날은 옆 반 애와 다퉈 빽빽이 반성문을 쓴 덕에 평소보다 늦게 끝났다. 시비는 그 자식이 먼저 걸었는데 주먹이 나간 쪽이 더 잘못했다며 도리어 혼났다. 야자까지 했으면 아마 오늘 안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학원 수업시간은 지난 지 오래다. 집에 전화가 갈 일도 없으니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느지막이 들어갈까 싶었다. 하늘은 진득한 느낌이 드는 먹색이었다. 올려다보아도 잡히는 흔적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교내를 밝히는 가로등 불이 어색했다. 이때까지 학교에 남는 때는 드물다. 그래서 그 역시 당연히 없을 거라 여겼다. 내가 목적이 아닌 이상 있을 리 만무했다. 
정문에 가까워지면서 괜스레 손이 떨려왔다. 하루 동안 펜을 너무 꽉 잡고 있었나보다. 양손을 접었다 펴며 완화시켰다. 허나 그 정도로는 떨림이 가시지 않았다. 멀쩡하게 잘 흔들거리던 팔이 어느 순간 다리랑 같은 방향으로 나갔다. 차라리 팔짱을 켰다. 
서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보다는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볼 안쪽 살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자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불쑥 들렸다. 어떡하기는 뭘 어떡해. 

하기는, 그게 정답이다. 어떻게 할 일이 아니다. 만일 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꼭 나 때문이라는 법은 없다.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 듯 긴장하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솔직히 의심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결같은 자세로 그 사람은 기둥 옆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혹시? 설마?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이 일에 대해서 누구에게 상담할 수도 없었다. 주제로 삼아지는 인물 탓이다. 
어떤 아저씨가 학교 앞에서 항상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아. 이런 말 해봤자 얻는 게 있는 쪽이 이상하다.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보다 먼저 본인에게 물었을 것이다. 머리가 쿡쿡 쑤셨다. 스토커도 아니고, 어떤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학교 입구에 서 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차라리 무언가 위협이라도 가했으면 신고를 하겠는데 그게 아니니 답 터졌다. 그러니 경비 아저씨도 딱히 손을 쓰지 못한 것이다. 몇 번 주의를 주더니 최근에는 하하 호호 이야기까지 나누는 장면을 보았다. 정말 무서운 친화력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경비 아저씨는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자주 언성을 높이시는 분이다. 
아무튼 중요한 요점은 무엇 때문에 그는 서있는 것일까. 아니, 누구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반인 오세훈과 종례 시간이 맞아 함께 나가는 날에도 그는 여전히 있었다. 또 있네, 맨날 누구 기다리는 거지. 혼잣말과도 같은 물음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왠지 그게 나인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면 반응은 굳이 끌어내지 않아도 보인다. 눈살을 쭉 찌푸려 온갖 주름을 끌어내 비웃을 게 분명하다. 그럴 모습이 선하다. 

정문에 가까워질수록 얼굴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왔다. 앞으로 곧장 이어진 아스팔트 길 대신 잔디 길로 비껴났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자리에 없었으면 했다. 그러면 이제 훌훌 털어낼 수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부동산 관련업자라 마무리 지으면 된다. 여태 땅을 보러온 것이다. 학교가 어딘가로 매입 당하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전체가 대학으로 포함돼서 공부 따위 안하게 됐으면 한다.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헛생각을 이렇게라도 치워버려야 했다. 
하필 저 근처 가로등이 고장 났다. 거의 다 왔음에도 컴컴하게 가려진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 인영인지, 그림자 뭉텅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눈두덩을 꾹꾹 누르면서 계속 걸었다. 어두우니 쌓여있던 피곤이 금세 밀려왔다. 텁텁한 공기가 근처를 연신 휘휘 감아올렸다. 교복 셔츠가 등에 달라붙어서 가방을 아예 벗어 손에 들었다. 그나마 바람이 통해 기분이 나아졌다. 
핸드폰을 꺼내 불빛을 내었다. 발길이 잘 안보여서 그런 것처럼 한발 두발 내딛으면서 시선은 계속 기둥 옆으로 갔다. 내려앉은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갔다. 
번져 나오는 입가를 얼른 가려 삼켜냈다. 기뻐할 일이 아니다. 여기 신날 일이 어디 있는가. 차분하게 자신을 타일렀지만 이미 웃음은 터진 뒤였다. 
서 있다. 불빛에 비추어진 그는 언제나와 같이 테가 두터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눈을 가릴 정도로 긴 앞머리는 시야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플래시를 휙 올리니 얼굴을 휙 돌려 손바닥으로 빛을 가린다. 별 것 아닌 행동인데 웃음은 더 크게 팍 뿜어졌다. 자리에 턱 멈춰서 하하 웃었다. 무어라 정확히 잡아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꽉 차있던 보따리 끈이 풀려, 안에 들어있던 것이 마구 흘러넘쳐 나오는 느낌이다. 벙하니 섰던 그도 살짝 입가를 올렸다. 우리는 얼마간 아무 말도 없이 웃음소리를 건넸다. 












“아저씨.” 
“형.” 
“아저씨.” 
“형!” 





물고 있던 치킨 조각을 내려놓았다. 너무 크게 씹었더니 겉껍질이 한 움큼 들어와서 입 속이 꽉 막혔다. 이어진 대답이 없어 본인이 이겼다 생각했는지 고개를 툭 치켜든다. 쳐진 눈이 의기양양하게 내려왔다. 밉상으로 내려앉은 꼬리를 쭉 올려줄까 하다가 손에 아직 기름이 묻어있어 참았다. 
변 아저씨는 요즘 들어 되도 않는 억지를 부린다. 첫 만남 자체가 아무리 좋게 봐도 수상한 아저씨였는데 이제 와서 형 소리를 강요한다. 하드 렌즈를 낀 눈동자가 지나치게 반짝여왔다. 깜빡임 없이 정확하게 향해있어 내가 먼저 피했다. 안경을 벗으라고 한 것을 이 순간 후회했다. 
입에서는 치킨을 오물오물 옮기면서 슬쩍 변 씨 몸 언저리를 훑었다. 이제 아저씨 티는 어느 정도 사라졌다. 생활에 찌든 탓에 꾸밀 줄 몰랐을 뿐이지 얼굴만 놓고 보면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왕 같이 다닐 거라면 후줄근한 사람보다는 꾸민 사람이 낫다. 때문에 억지를 부렸다. 


그 후로는 하교 시간에 맞춰 기다리는 까만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이미 나름대로 교내 유명인사가 되어있던 아저씨라 궁금증을 안고 물어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뭐하는 사람이냐, 무슨 관계냐 하는 질문이 지분 대부분을 가졌다. 그저 단순히 아는 형이라고 해도 믿지 않았다. 아는 형 정도가 저렇게 꼬박꼬박 찾아올 수 있냐고 반박하는데 받아치기 어려웠다. 내 생각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냥 아저씨와 학생, 그게 다였다. 
아저씨와 내 관계에 대해서 지겹도록 물어오는 주변인들에 짜증이 났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나이 많은 삼촌이랑 노는 것 같아 싫다고 했다. 어떤 무식한 몇 명은 날 원조교제하는 애로 봐서 열 받아 죽겠다고 있는 대로 성질을 퍽퍽 부렸다. 다음 날, 아저씨는 스타일을 싹 바꾸고 나타났다. 고지식해보이던 안경대신에 투명한 눈알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머리는 깔끔하게 다듬어 왁스로 앞머리까지 세웠다. 옷은 언제나 입던 거였는데 넥타이는 없어지고 자리에 있던 단추만 몇 개 풀려있었다. 그제야 날 달달 볶았던 놈들이 수긍했다. 형 맞네. 
그래도 내가 부르는 호칭 자체가 아저씨에서 형이 되는 건 어려웠다. 이미 입에 붙어버린 그걸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건 무리다. 이해해주었으면 하는데 너무 막무가내다. 
이쪽을 향한 어떤 기대감이 몽실몽실 흘러 다녔다. 녹여낸 살을 꿀꺽 집어삼키고서야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일부러 더욱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순순히 불러줄 리 없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었는데 아저씨 혼자 입 벌리고 있던 꼴이다. 예상보다 기대가 꽤 컸나보다. 바짝 붙었던 상체가 뒤로 훅 밀려났다. 한숨을 푹 내쉰 아저씨는 잘 발라놓은 살을 집어 내 입에 쏙 넣어주었다. 얼음만 차있는 잔에 카운터로 가 콜라를 재차 받아왔다. 자기 입 근처까지 갔다가 마저 내게 넘겼다. 마침 목이 메는 시점인지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었다. 

왜 항상 정문 기둥에 서 있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아마 다들 그랬을 거다. 물론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대답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꼭 나 때문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시간이 맞물렸다고 한다. 이건 백 퍼센트 뻥이다. 어수룩한 거짓말에 속을 만큼 어리지는 않다. 거짓을 고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덧붙이는 말이 보다 더 황당했다. 
팬이에요. 횡설수설 앞뒤 없이 말하는 게 진심이 담겨있었다. 아무래도 학원에서 찍은 연습 영상을 본 모양이었다. 홈페이지에 올린다는 말은 들었지만 진짜로 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꽤 열렬한 팬처럼 느껴졌다. 등줄기에 새어난 땀이 싸하게 말라갔다. 잠시 머뭇대다 고맙다고 했더니 얼굴을 푹 숙였다. 
친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면 놓치지 않고 다 들어주었다.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생각들을 털어놓는 건 처음이었다. 저녁 급식 신청을 안 했기에 배는 언제나 곯았는데 그 때마다 사온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번화가에 있는 식당까지 차를 타고가 같이 밥을 먹었다. 학원이 늦게 끝날 때는 맞춰 데리러 와주기도 하였다. 아저씨가 맞춰주는 게 컸겠지만 대화도 잘 맞았다. 정말 괜찮았다. 





“종인아.” 





마지막 한 조각을 마저 발라 넣어주던 아저씨가 나긋하게 이름을 불렀다. 지나치게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이 흐리게 떠졌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얼음을 한 움큼 털어 넣었다. 





“왜요.” 





오독오독 으깨는 틈새로 다소 표독스럽게 내뱉었다. 상대가 다정하면 부러 반발이 생겨난다. 나쁜 버릇이다. 고쳐야하는데 근래에 아저씨가 너무 오냐오냐해주어 아무래도 그른 것 같다. 





“영화 볼까?” 





티슈로 손가락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핸드폰 홈 버튼을 눌렀다. 찍혀있는 시간이 학원 수업 시간에 가까워져있었다. 유리를 소리 나게 톡톡 쳐 보여주었다. 탁자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있던 아저씨는 비죽비죽 입술을 내밀었다. 





“그럼 끝나고 볼래?” 
“요즘에 자꾸 늦어서 혼났어요.” 





아저씨는 괴고 있던 가락들을 각기 따로 움직여 본인 얼굴에 토도독 감쌌다. 입은 가려놓고 시선을 내리깐다. 먹고 남은 치킨 뼈 모양을 일일이 새기는 양 신중했다. 꼬고 있던 다리를 반대쪽으로 바꾸며 진득한 한숨까지 훅 내쉰다. 가끔 보이는 진중한 느낌이 아저씨라는 단어를 지우게 만든다. 둥그런 인상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시선 때문에 때때로 몸이 쭈뼛 섰다. 그러면 형 소리가 목구멍 앞을 똑똑 두들겼다. 





“우리 종인이 많이 힘들겠다.” 





다정함이 한껏 들어간 음성으로 나긋하게 읊었다. 손가락으로 가려져있어 약간 웅얼대는 느낌도 있었다. 앞에 들어간 ‘우리’라는 말에 몸이 파드득 떨리기는 했지만 아닌 척했다. 
역시 어른은 어른이다. 제멋대로인 성격에 최대한 맞춰온다. 지금도 내가 툭 던진 말을 두 손으로 주워 담아 정성스레 놓았다. 아무리 버르장머리 없게 굴어도 어떻게든 보듬어준다. 친절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힘들어지는 것은 나인데 받아버리게 된다. 
아무렇게나 쌓아둔 찌꺼기들도 손수 치워내 주었다. 입 주변에 잔여물들이 묻어있었는지 그것까지 상냥하게 문질러준다. 누가 보면 지극정성이라고 할 정도였다.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아저씨 성격이 원체 이런 유형이라는 것이다. 학교 앞에서 2주 가까이나 끈덕지게 서 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떨어져가고도 남을 기간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고등학생 한 명 돌보기를 자처하고 있다. 그것도 성격이 그렇게 좋은 애도 아니다. 스스로도 내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안다. 입시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엄마도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 나를, 얼마 전까지 생면부지였던 남자가 책임지는 중이다. 팬이라는 존재는 원래 이런 건가. 제대로 발도 떼지 못한 어눌한 몸짓이 뭐가 좋다고. 그래도 괜스레 흡족했다. 
쟁반에 쓰레기들을 전부 담아 저쪽으로 버리러 갔다. 부른 배를 양 손으로 통통 쳐대다 고개를 꺾어 어깨 너머를 보았다. 아저씨가 치킨을 몇 조각 먹었더라. 집어다 줄곧 살만 발라낸 것 같다. 그마저도 내가 다 먹었다. 그래서 이렇게 배가 부르구만. 얼른 소화시켜야한다는 일념으로 가슴팍을 퍽퍽 두들겼다. 배불뚝이 되면 안 되는데. 

가만 기다리기 심심해서 돌아서있는 아저씨를 하나하나 꼬집어냈다. 전에는 촌스러운 핏으로 입었던 바지 대신에 단이 조금 짧아 발목이 보이는 것으로 갈았다. 역시 넥타이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내 한 마디에 훨씬 근사한 모습으로 변해 나타난 것이 뿌듯한 부분 중 하나다. 종종 지나가는 여성들이 아저씨를 힐끔 쳐다보며 소곤소곤 대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럼 내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는 것이다. 아저씨가 전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이렇게까지 시선을 받지는 못했다고 장담한다. 
스타일을 바꾼 덕에 분명 젊어 보이는 효과는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형이라고 불러주지는 않을 거다. 아저씨로 평생 못박아놓을 생각이다. 최근 들어 형 소리에 집착하는 게 보여서 약 올리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아예 몸을 완전히 돌려 다리 사이에 의자 허리를 끼웠다. 쓰레기들을 일일이 분리하는 뒷모습을 관찰했다. 이제 보니 셔츠도 허리 쪽 라인이 들어간 것으로 바꿨다. 
모르는 사이에 하나씩 변하고 있었다.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뭐 더 달라진 거 없나 기억 속 모습과 계속 비교했다. 연신 눈알을 굴리며 머리에서 발까지 훑어냈다.  
신발을 새로 산 것 같기도 해서 미간을 푹 찌푸렸다. 그냥 보고 있으니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사람들이 앞을 왔다 갔다 하여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색은 전에 신던 거랑 비슷한데 디자인은 달라보였다. 더 자세히 보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헌데 시야 근처로 웬 하이힐 굽이 바싹 붙어왔다. 우리 일행 중에 여자는 없었다. 보고 있던 발은 분명 아저씨 것이 맞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난 분위기는 아니다. 붉은 하이힐이 바닥을 휘휘 젓고 있다. 위를 따라 올라가자 웨이브를 굵게 낸 여성이 잡혔다. 그녀는 손에 쥔 휴대전화를 아저씨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웅얼웅얼 입술을 움직이며 눈매까지 샐쭉 접는다. 
옆쪽 의자에 두었던 가방을 집는 것과 몸을 일으킨 건 거의 동시였다.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보다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등받이가 교복 틈에 걸리며 의자가 그만 엎어지고 말았다. 쿠당탕, 무게감 있는 쇠붙이가 바닥에 맞닿는 소리가 깨지게 울렸다. 





“백현이 형!” 





그에 질세라 더 크게 질러 나온 목소리 때문에 이목이 절로 집중되었다. 왜 불렀는지 모른다.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했던가보다. 무작정 튀어나온 터라 집어삼킬 틈이 없었다. 아저씨는 눈을 동그랗게 떠 이쪽을 정확하게 응시하였다. 한 눈에도 놀랐음을 알 수 있는 크기였다. 세상이 일시적으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아저씨 옆에 서 있는 여성분을 슬쩍 보았다. 둘은 같은 표정이었다. 곧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다녔지만 딱 두 명만 현실과 동떨어졌다. 그 중 하나는 물론 나였다. 
일어났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장소를 박차고 나갔다. 마구 뛰었다. 어디든 들어가 숨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바람이 얼굴 구석구석으로 달라붙었다. 발이 빨라져가자 살점이 뜯어져나가는 듯 따가웠다. 
저 안에서 내가 뭐라고 지껄였던 건지 되새겼다. 앞뒤는 다 잘려나가 오직 한 장면만 둥둥 떠다녔다. 아, 형. 형이라고 했다. 그것도 엄청 크게 소리쳤다. 못 들었을 리가 없다. 비교되는 두 단어는 글자 수부터가 다르다. 
마음속에서 박아놓았던 아저씨라는 못이 단숨에 녹슬었다. 망했다. 주머니에 쑤셔진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려왔다. 진짜 망했다.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 숨부터 골랐다. 절로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화면에 떠오른 ‘아저씨’가 흐려져 보인다. 죽어라 뛴 덕에 미친 듯이 쿵쿵대는 박동이 전체로 퍼졌다. 손끝까지 달달 떨렸다. 받을 수 없다. 받는다고 해도 도저히 할 말이 없다. 가까스로 막고 있던 벽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내가 왜 그랬지. 아저씨가 아니라 왜 형이라고 했지. 나는 왜 또 도망나왔지. 모르겠다. 날 모르겠다. 다 모르겠다.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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