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히방

공지사항

ㅊㅈ 졸업

S2014. 6. 15. 01:48






계절이 바뀌는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부터 찾아온 가녀린 새싹줄기가 그들이 가지는 일상이 여태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 말해주는 듯했다.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시간 조각에 그대로 찔려버리기에는 무언가 억울했다.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흘러버릴 것이라면 살짝이라도 비껴나가고 싶었다. 
종인이 내 비춘 시선이 잠시 동안 교문 기둥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당당한 형태로 걸린 현수막은 반듯한 글씨체로 졸업을 알렸다. 그 밑에 적혀있는 날짜는 바로 오늘이었다. 초점이 흐리게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발길을 곧장 뒤로 돌려 멀어져갔다.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가는 강당 정반대를 가로질렀다. 

평소에 잘 입지도 않았던 교복 매무새를 다듬으며 찬열은 강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머리통을 헤아려보았다. 동그랗게 솟은 정수리를 계속해서 눈으로 쫓아보았지만 어디에도 그가 찾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바지춤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바로 번호를 찍어 귀에 붙였다. 쉼 없이 이어지는 통화음은 매번 달갑지 않은 여성이 받아넘겨 끊겼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키패드에 올렸다가 그대로 앞머리를 쓱 쓸었다. 왁스로 빳빳하게 세운 머리카락이 고집 센 그 녀석과 비슷하게 느껴져 가장 삐죽하게 솟은 부분을 슬쩍 억지로 눌러 내렸다.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약속 장소를 그곳으로 잡기라도 한 듯이 성큼성큼 나아가기까지 했다. 발길이 잦아든 건 학교 건물과는 따로 분리되어 있는 체육관 건물 앞에서였다. 손가락 뼈마디가 각기 따로 움직이며 천천히 문손잡이를 잡았다. 가만히 서서 손잡이부터 문 전체 모양까지 하나하나 눈에 담아냈다.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과 겹쳐 보이는 건물 가장 높은 곳까지 놓치지 않았다. 
문을 세차게 당겨 시야를 크게 잡고 주변을 살폈다. 2층 관람석 쪽에서야 마침내 그가 그리도 찾아 헤맨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볼통거리는 얼굴이 아래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김종인-.” 





건물 전체로 소리가 공명했다. 진동이 퍼져나가며 분명 위까지 울렸으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시선만이 엮였다. 찬열은 얼른 손을 들어 퍼덕거렸다. 그럼에도 종인은 아무 감정 없는 눈길을 그대로 던지고 머리카락마저 아래로 숨겨버렸다. 
찬열은 낮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렇다고 얼굴을 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옅은 미소가 살며시 내려앉아 있었다. 
건물을 찾아올 때보다 조금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단숨에 2층까지 밟아 올라간 그는 곧 상대와 마주하였다. 





“종인아.” 





이번에는 작게 읊었다.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았음에도 마치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듯이 나지막했다. 
종인은 자리에 주저앉아 마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있을 뿐이었다. 앉아있는 아이 앞으로 완전히 다가간 찬열은 눈높이를 맞췄다. 





“나 봐봐.” 





내리깔린 속눈썹이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뻣뻣한 머리카락을 다시 한 번 쓸어 올리며 고개를 비스듬하게 꺾었다. 다리를 접어 몸을 불편하게 구기고 있는 모습이 어린 아이와 겹쳤다. 이제 학교 안, 최고 학년이 되는 녀석이 맞는지 모르겠다. 본인은 모를 다소 귀여운 표정도 서려있었다. 찬열이 저도 모르게 큭큭 소리나는 입을 얼른 막아섰다. 여전히 불만을 가득 띤 얼굴은 이쪽을 향할 생각이 없었다. 
종인의 시야가 막힌 것은 순식간이었다. 갑작스런 암전에 버둥거렸다. 그러다 얼굴 위를 덮은 것에서 이미 몸에 익은 향을 맡았는지 잠시 멈칫한다. 찬열이 입고 있던 교복마이였다. 마이로 덮어낸 뒤통수를 찬열은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서서히 버둥거림이 멈췄다. 한 겹 너머 안에 있는 숨소리만이 차분하게 들려왔다. 





“이제 내가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냄새를 잔뜩 묻혀놔야지.” 





다분히 장난 섞인 음색이었다. 품 안에 안긴 종인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색색대는 호흡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남들이 못 넘보게.” 





여전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찬열은 입매를 위로 가볍게 올렸다. 머리통을 담아냈던 교복마이 아래 부근을 살짝 집어내 드러냈다. 그곳에는 고집을 잔뜩 머금은 입술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 두툼한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자 얼마간 기다린 끝에야 잇새로 달큼한 혀가 얌전하게 비집고 나왔다. 그걸 놓칠 새라 미끼를 채가는 물고기 같은 속도로 종인을 집어삼켰다. 교복마이로 뒤덮인 목덜미 부근을 꽉 끌어안고 체취를 가득 들이켰다. 점차 섞어낼 때마다 호흡이 가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입술이 자꾸만 이성을 끌어당긴다. 날카로운 치열이 혀를 찌르는 감촉을 느끼며 입천장을 느리게 쓸었다. 종인이 내는 신음성이 목구멍 바로 앞까지 차올랐다. 온몸에 힘이 전부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순간,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둘 모두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붉게 달아올라 축축하게 달떠 뒤집힌 입술을 커다란 손이 다가와 슥 닦아냈다. 그것에 밀려 가지런한 윗니가 약간 보였다가 얼른 다물어진다. 

여전히 그는 싱글벙글한 얼굴이다. 이번에는 교복마이를 내려 방금 전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하관을 가렸다. 잠시간 어둡게 갇혀있어 밝은 빛이 들어가자 종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느 새 치켜 올라간 눈매만이 찬열을 향해있었다. 
종인은 아무 말도 않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릴 따름이었다. 앞에 있는 그를 전부다 담아내기에 눈 두개는 너무도 부족했다. 그에 비해 찬열은 단호하게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잊지 마.”  





느리게 다가와 한쪽 눈꺼풀에 경건하게 입을 맞췄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아랫입술로 슬쩍 쓸어 담기까지 했다. 곧 꿇어앉았던 무릎이 망설임 없이 본래 가진 형태로 되돌아갔다. 더 이상 인사는 없었다. 찬열 또한 이제 이곳에 없다. 
그가 두고 간 교복에 그대로 코를 박았다. 숨이 저 끝까지 매달렸다. 아무리 들이쉬어도 공허함은 가시질 않았다.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 손은 여전히 옷을 꽉 그러쥐고 있었다. 혼자 남은 그곳에서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비껴나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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