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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ㅊㅈ 한낮의 기차

S2015. 12. 7. 04:47

140710





나는 한낮의 기차를 타고 있었다. 해는 흐린 구름 뒤에 가려졌으나 아직 저물지 않았다. 갈수록 거세져가는 빗물이 있는 힘껏 창을 향해 내려쳤다. 저 끝에서 사방으로 퍼진 빛줄기가 땅으로 꽂혔다.
무작정 나와 버려, 가지고 있는 건 사지 멀쩡한 몸뚱이 하나였다. 옆에는 역시나 사정이 다르지 않은 네가 잠들어 있다. 목적지는 물론 정하지 않았다. 정처 없이 아주 먼 곳으로 향할 뿐이다.
어깨에 걸린 작은 머리통은 가끔씩 색색대었다. 아직 살아있음이다. 너에게서 삶을 찾고 있다.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입가는 미소가 걸렸다. 덩어리진 입술이 귀여워 검지손가락으로 스리슬쩍 건드려보았다. 그럼에도 표정은 여전하다. 잠에서 깨어나면 물어봐야겠다. 무슨 꿈을 그리 즐겁게 꾸었느냐고.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잠들면 앞에서 사라져버릴 걸 알았다. 내가 꾸는 꿈은 너다. 가만 눈을 감고 있는 김종인, 너다. 아마 모르고 있을 것이다. 무얼 바라보면 살아가는 지 알 리 없다. 네가 사라진 현실은 두려움만 가득하다. 그곳은 나 혼자였다.
우리는 함께해야한다. 그렇게 그 어느 곳에도 도착할 수 없다. 기차가 달리는 철로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종인이 너는 그저 잠에 빠져있으면 된다. 우린 함께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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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발화점

S2015. 12. 7. 04:46

140708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나는 그렇게 고향에 다시 와 있었다. 산 너머에 머물던 바람이 단숨에 앞으로 당도했다. 며칠 전에 눈이 내렸었는지 흐려진 주변이 약간 부수어져 보였다. 잘게 갈린 흙더미는 얼음 밭 위에 흩뿌려져 있기도 하였다. 떠났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어라 쉽게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냄새가 풍겼다. 이건 오직 이곳에서만 맡을 수 있다. 숨을 크게 들이면 코끝에서 금방 흩어져버리기 일쑤였다. 안타까움마저 일었다.억울함은 공기 중에 맺혀 떠다니고 타다 남은 재가 곳곳에 덮였다. 시야를 닫지 않아도 당시 장면들이 눈길이 닿는 곳곳에 떠오른다. 비명으로 점철된 공간에 갇힌 여러 명은 오직 한 목소리를 내었다.
도저히 기억더미에 쌓아두고 싶지 않았다. 귀청이 터질 듯 맴도는 웅성거림을 밖으로 밀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깨달았다. 실을 아무리 끊어내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시작점으로 돌아가 다시 말아 올리면 된다. 골 안쪽이 언뜻 뒤흔들려왔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채 가지만 쭉 내뻗은 나무가 여러 모양으로 하늘거려 보였다. 

도망 가. 카이야, 도망 가! 정신을 휘어 감는 그 목소리들은 눈 위에 찍히는 발자국을 따라 울렸다. 전에는 밖을 향해 넓게 찍혀있었다면 지금은 안쪽으로 좁게 찍혀간다. 걸어가고 있는 길 바로 옆을 스쳐지나가는 어린 나는 겁에 잔뜩 질려있다. 상기된 두 볼과 눈 알갱이들을 묻힌 발이 바쁘게 움직였다. 흰자는 벌겋게 떴지만 한 번 깜짝이지 않았다. 꾹 다문 입 모양이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필시 저주를 담고 있었을 것이다. 죽인다. ‘불’을 드러내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이미 완전히 뒤로 넘어가 보이지 않는 어린 나의 음성이 얼핏 들려왔다. 이건 현재에 사는 나에게서 끌려올라오는 고함이었다.

우리 집안은 숨어 살아야했다. 도망 다녀야했다. 타 능력자들이 내모는 압박을 이기기 어려웠다. 고작 너희와 우리의 힘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삶 자체에서 내쫓겼다. 무엇이 그리도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가진 각 능력을 열고 잠글 수 있다. 그렇기에 흩어진 공간을 모아서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길을 밟아 움직인다. 아마 그게 그들 입장에서는 위험하게 느껴졌을 것이라 어림짐작할 뿐이다.
그 날, 모든 게 타올라 사라져버리고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부지 앞에 섰다. 하늘에서 내려온 새하얀 결정들에 푹 덮였는데도 탄내가 코를 찔렀다. 콧속이 아려올 지경이었다. 무릎을 내려 땅을 덮은 흰 덩어리들을 손바닥으로 주욱 쓸어냈다. 그을린 나무판자가 드러났다. 남아있던 부족 핏줄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 전부 이 밑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주변을 완전히 털어내자 몸을 드러낸 큰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을렸지만 확실히 남아있다. 까맣게 태운 잿가루가 어떠한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후후 불어 형태를 자세히 만들었다. 초점을 다시 잡고 봐도 같은 모양이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었다.
뒤집힌 삼각형 안에 꽉 들어찬 눈동자, 우리 능력을 묶어 한 곳에 가두게 하는 문장이다. 다른 곳에서 우리의 약점을 알고 있을 줄이야. 어떤 게 된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건 부족 내에서 다들 쉬쉬하는 절대적 기밀이다. 그걸 도대체 이들이 어떻게.
어릴 적 기억이 재조합 되어갔다. 뜻을 알 수 없는 언어들이 훅 모여들어 고막을 찌를 듯 웅성거려왔다. 해방되지 못한 자들이 앞에서 제각기 내지르고 있음이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라야했다. 
직각으로 꺾어 아예 부숴버렸다. 한순간 공간에 꽉 차 머물러있던 바람이 사방으로 터졌다. 여태까지 영혼마저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다 이제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것이다. 
더욱 분명해졌다. 이 그을음으로 봤을 때 확실히 ‘불’이 한 짓이다. 우리 부족을 전부 잡아다 죽여 놓은 것도 모자랐는지 겨우 명맥만 이어가던 우리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핵심인물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그 무엇도 묻지 않을 것이다. 불을 잇는 후계자가 전부 책임지게 할 생각이다. 

“어머니, 아버지.”

성대가 잠겨있어 약간 떨려왔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땅에 댔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뵙지 못하였다. 그대로 이마를 내렸다. 찬 기운이 가득 차올라왔다. 이렇게 추운 곳에서 줄곧 기다려왔을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응축된 물이 옷에 녹아 스며들어왔다. 몇 번이고 다잡았던 마음이 여기에서 굳건해졌다.

“누나도 오랜만이야.”

몸을 일으켜 고개를 길게 꺾어 올렸다. 부연 검은 색이었던 하늘 저 끝에서 허연 가루가 소리 없이 춤을 췄다. 서서히 내려오는 눈이었다. 조금 더 두텁게 감싸안아줄 것이다.
불 후계자는 곧 진정으로 그들을 이끌 수장에 오른다.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소리 내어 불렀다. 찬열. 너를 찾아 반드시.
머지않아 모든 소리는 눈밭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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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3평생일

S2015. 12. 7. 04:38


140707




스물아홉, 내 생일을 축하한다. 3평짜리 원룸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노래를 부른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스물아홉 박찬열, 생일 축하합니다. 듣는 이가 하나밖에 없는 노래였다. 아주 잔잔한 음이었다. 바닥을 검지손톱으로 툭툭 쳐가며 박자를 맞췄다. 악기도 없어 속으로만 가락을 만들어냈다. 남이 보면 조금 궁색 맞아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일순간 들었다. 얼른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빈 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게 생일이 된 열두 시에 해야 할 일 목록에 들어가 있지는 않았다. 스팸 문자 한 통 오지 않은 핸드폰은 침대에 던져버렸다. 이미 시계 기능으로만 사용된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기대를 했다.
편의점에 나가 조각케이크라도 사올까 하다가 지금 내 처지에는 그것마저 사치라는 걸 깨달았다. 밤바람이라도 쐬고 오는 게 낫나싶다. 좁은 고시원은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방에는 창문 하나 없어 답답함이 가중되었다. 두꺼운 책들 몇 권이 낮은 책상 가득 펼쳐져있는 게 어지러웠다. 지금 저기에 다시 앉아봤자 글귀들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터였다. 
똑똑. 
작은 두드림이 벽에서 전해져왔다. 항상 고요했던지라 이 하나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시간이 시간인데 노래를 너무 크게 불러버려 불만이 들어왔나 보다. 여태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어 심장이 괜스레 쪼그라들었다. 소음이 오고가는 일이 적으니 방음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문득 잊었다. 한심한 나 자신을 꾸짖으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탁 쳤다. 살과 살이 붙었다 떨어지는 찰진 소리가 났다.
죄송하다고 사과할까 말까 벽에 붙어 고민하였다. 그냥 짧게 주의를 준 걸 수도 있는 일이다. 혼자서만 큰 일로 여겨 앞서 나가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 귀도 대보고 반대편에서 어떻게 더 반응을 하는지 기다리다 난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이제 조용히 하면 된다. 어차피 바람 쐬러 나갈 생각이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문 근처 벽걸이에 걸린 모자를 썼다. 방에서만 나가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채워진 안쪽 자물쇠를 다 풀고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답답함을 벗고 싶었다. 문을 열자 숨을 들이키느라 열린 기도로 침 한 방울이 또르륵 새어 들어갔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복도에 웬 사람이 서 있었다. 그것도 이쪽을 향해 바르게 있다. 덕분에 사레가 들어버렸다. 그렇다고 크게 기침을 할 수도 없어 손으로 입을 막아 최대한 안쪽에서 걸러냈다. 고통을 씹어내는 작업이었다.
상대도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가끔씩 복도에서 마주한 남자다. 낯이 익었다. 한 손이 둥글게 말려 공중에 뚱하니 떠 있었는데 내 쪽에서 먼저 열지 않았다면 딱 노크를 할 자세였다. 아마 지금 내 눈은 잔뜩 핏발이 서 있을 터였다. 지금 저 사람이 왜 여기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살아야한다. 무슨 일인지는 일단 속이 진정된 후에 듣고 싶었다.
손잡이를 쭉 잡아끌어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했다. 턱, 하는 소리가 나며 더 이상 닫히지를 않았다. 아래쪽에 들어찬 발이 눈에 잡혔다. 양말조차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당연히 그 주인은 앞에 있던 남자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내 등을 두들겨주며 자기까지 안으로 들어왔다.
그나마 방에서는 속 시원하게 기침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옆방까지 들리지 않는다. 토하듯 구역질까지 하는데도 남자는 계속 등을 적당한 세기로 두드렸다. 후에는 살살 쓸어주기까지 한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호흡을 고르며 쳐다보았다.

“저 옆방.”

눈빛을 느끼고 그제야 고개를 쓱 들어 자신을 소개하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노크가 전해진 방향에 사는 주인이었다. 역시 사과를 했어야하는 게 맞나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숨이 턱 막혔다. 옆 방 사람들과 사이가 틀어져봐야 좋을 건 없었다. 주인에게 잘못 이야기가 들어가면 최악의 경우는 여기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그건 결코 좋지 않은 전개였다. 실수를 깨닫고 곧장 얼굴을 최대한 죄송하다는 느낌으로 구겼다.

“들었어요. 오늘 생일이라고.”

예상과는 다른 말이 이어져 나와 조금 당황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내려던 입이 쑥 말려들어갔다. 혼자 듣는다고 생각한 생일 축하 노래는 사실 정확히 두 명이 듣고 있었다. 가요도 아니고 자축하는 노래를 들켜버려 쪽팔렸다. 
그런데 남자에게서는 계속 의외의 문장들이 줄줄 쏟아져 나왔다. 조금 신기했다.

“사실 갑자기 케이크가 땡겨서 사왔는데 혼자 먹기 궁상맞아서 입도 안 댔거든요.”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수상했는지 자기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열심히 양손을 휘적 거리도 했다. 그러면서 약간 미안하다는 듯 눈썹이 아래로 축 내려갔다.

“근데 초는 20개뿐이에요.”

이 말이 뭐라고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정말로 미안하다는 느낌이 완연했다. 전혀 그럴 일이 아닌데 저런 표정은 너무 부조화했다. 크게 웃지 않기 위해 입 앞을 막아섰으나 이건 사레에 든 것보다 훨씬 참기 힘겨웠다. 그런 가운데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발 빠르게 공동 주방 쪽으로 향해갔다.
제법 커다란 케이크 상자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당연하게 내 방으로 들어와 문까지 꼼꼼하게 닫아 잠근다. 노래는 아까 불렀으니 생략하자면서 장난스럽게 입을 쭉 찢어 웃었다. 참 신기한 감각이었다. 분명 창문은 여태까지나 지금이나 똑같이 없는데 어쩐지 청량감이 들었다. 거기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안쪽에서부터 넘겨 부는 것이었다.

“전 김종인이에요.”

손가락으로 푹 찍어낸 케이크를 제 입에 넘기면서 가볍게 알렸다. 반대 손으로는 나이를 나타내는 개수를 폈다. 들고 온 초와 같은 숫자였다.
크림을 꾸역꾸역 넘겼다. 한 움큼 베어 문 케이크에 혀로 김종인이라는 이름을 새기며 목구멍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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