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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카이짱팬 서막.

L2014. 5. 7. 23:13

※본 내용은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픽션입니다.

 

 

 

 

 

 

누군가를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한 순간 마주친 것만으로 사랑하게 됐다는 꿈같은 이야기는 믿어주면서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한 번 본 것만으로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는 비웃다니 말이 안 되죠.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도 사랑이에요. 사랑은 평등한 겁니다.

-타블로, 꿈꾸는 라디오 中.

 

 







언제가 처음이었더라. 정확한 날짜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분명 텔레비전 채널을 수도 없이 돌리고 있었다. 이렇게 재미없는 것들만 골라할 수가 있나하는 마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요일이었던 것 같다. 그 때 했던 그 프로그램은 일요일 아침 고정프로였으니까. 아무튼 케이블까지 쭉 돌고 다시 공중파에서 헤매던 때였다.

열심히 위쪽 화살표만 누르고 있던 터라 순간 지나갔던 얼굴에 멈칫할 새도 없이 채널이 넘어갔다. 헐? 방금 뭐였지? 내가 뭘 본거지. 혹여나 방금 나왔던 장면이 지나갔을까싶어 서둘러 아래 쪽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그 얼굴은 아직 앵글을 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얼굴에 넋을 놓은 건 처음이었다. 이국적인 생김새에 놀랐고, 저리 잘생길 수 있나싶어 두 번 놀랐다. 물론 호불호가 강한 상이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완전 내 취향이었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혼을 앗아갔다.

출연진들이 짤막한 연기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런 데로 재미도 뽑아냈다. 끝난 후 광고로 넘어갔음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참 뒤 현실성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불렀다. 이봐, 학생. 방금 네가 본 연예인은 남자야. 그리고 너는?

 

 

“남자......”

 

 

처음은 실수였다고 치부할 수 있다. 현실이 날 구원해주었다는 생각에 악수를 청하였다. 며칠 후에 그 손이 뺨을 후려치리라고는 가만 있다 얻어맞은 현실도, 심지어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평일 저녁이었다. 흥밋거리라고는 두피 때만큼도 없는 시간대다. 거실 바닥에서 관자놀이를 기대어 누웠다. 슬슬 지겨움을 못 이기고 한 예능프로그램 재방송에 멈추었다. 그리고 또 만났다. 아니, 아니 만난 게 아니라 보았다. 머리 스타일은 바뀌었지만 확실히 그 때 그 남자다. 제법 큰 눈으로 카메라를 계속 응시하고 있다. 옅게 미소를 띠고 있기도 했다. 전체 패널들이 잡혀있을 때도 유독 한쪽으로만 시선이 쏠렸다. 그 남자는 마치 카메라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응시하듯 계속 쳐다보았다. 화면에 잡힐 때마다 언제는 안경을 쓰고, 또 언제는 쓰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저 연예인은 정신없게 왜 저러냐했겠지만 나는 여지없이 넋을 놓았다. 미친 사람이었다. 어떻게 안경을 쓴 것도, 안 쓴 것도 둘 다 잘 어울릴 수가 있나.

 

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두 번이나 정신을 뽑아간 저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당장에 검색창을 켰다. 연예인이다 보니 인터넷에 정보가 자세하게도 나와 있다.

정체는 비교적 단순했다. 가수였다. 그것도 아이돌이다. 몇 번 들어봤던 그룹이기도 했다. 인원수가 많아서 인터넷 기사로 접해본 게 다인 그런 그룹이다. 세상에, 내가 아이돌을... 그것도 남자 아이돌을... 손이 떨리다 못해 이젠 두 다리까지 달달거렸다.

심호흡을 하고 침착하게 아이돌 그룹 팬 카페를 검색했다. 왠지 여기까지는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럼 그럼. 여자들도 가끔씩 보면 여자아이돌 좋아하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그럼 그럼.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아이돌이 좋아서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식 없이 일단 가입하기 버튼을 누른 것에 대해서는 딱히 얹을 변명하지 않겠다.

그런데 가입 절차에서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닉네임을 설정하라고 한다. 박찬열...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아 공지를 읽어봤다. 실명은 안 된다고 쓰여 있기도 하니 뭔가 무난하게 흘러가는 그런 것이 필요했다. 그 애 이름이 뭐더라. 김종인. 마음속으로 낸 질문에 누군가가 번쩍 대답을 했다. 어떤 정신머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고오맙다.

종인까지 썼다가 얼른 지워냈다. 그러고 보니 본명과 활동명을 달리하는 사람이었다. 괜히 본명으로 해놓으면 진성팬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책상에 머리를 박고 손가락만 놀려서 자판을 쳤다.

 

가입이 끝났다. 이렇게 카이짱팬 님이 탄생하게 되었다. 사실 카이남팬으로 하려고 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여자가 많았기 때문에 괜히 돋보이기 싫었다. 나는 내가 여기까지 한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우스웠다. 카이짱팬이라니. 헛웃음이 새어나와 한동안은 자세를 굳히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 카페 등급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신청 글을 올려야했다. 뭘 이렇게 구구절절 써야하는 게 많은지 일일이 다 검색해 보면서 작성해 나갔다. 인간 박찬열. 한다면 한다.

곧이어 스케줄 표를 보기 시작했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무대를 보면서 저곳에 가고 싶다! 하는 마음이 뭉실뭉실 피어났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쳤네. 박찬열이 미쳤네. 내가 왜 이러고 있네? 아직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지만 차분히 밟아나갔다.

그리고 사실상 모든 일의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여느 때처럼 일정을 살펴보고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한 부분이 있었다.

 

 

20yy.mm.dd. 8:00 ㅁㅁ역 ㅇㅇ백화점 5층 브랜드 이그조 홍보모델 팬 사인회 - 카이.

 

 

팬 사인회. 팬 사인회. 팬 사인회. 몇 번이고 읽었다. 모니터가 타들어갈 것처럼 눈을 굴렸다. 옆에 자리한 이름도 계속 곱씹었다. 유명 옷 브랜드 이그조의 단독모델인 건 알고 있었다. 슬쩍 가서 옷을 사고 눈치껏 브로마이드를 받아온 일도 있다. 그런데 팬 사인회라니. 이건 가야해. 날짜도 마침 주말이었다.

왠지 혼자 가는 건 기다릴 때도 심심할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재미없는 통화음이 몇 번 가더니 이내 받았다. 역시 새벽에도 대기조는 여전하다.

 

 

“야, 변백!”

[아뭐야... 야 지금 몇 시인데,]

“됐고. 이번 주 토요일 날 ㅁㅁ역 가자.”

[뭐? 왜?]

"알았지? 가자."

 

 

그렇게 끊어버렸다. 남자, 그것도 아이돌 팬 사인회 장에 남자가 한 명인 것보다는 두 명이 눈에 덜 뜨일 것이다.

 

 

 

 

 

 

토요일 전날에는 제대로 잠도 못 잤다. 일찍 가야할 것 같은 마음에 10시에 잠자리에 누웠건만 보람도 없이 몇 시간 째 뜬눈이었다.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 지하철로 향한 그 날, 같은 목적으로 온 사람 중에 남자는 역시 변백현과 나뿐이었다. 각자 번호표를 받고 뒤로 돌아나가 시간이 될 때까지 최대한 떨어졌다. 소녀들의 시선이 꽂히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두 명이라 눈에 덜 뜨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상 그 두 명이 친구라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민망함에 아예 고개도 들고 다니지 못했다. 이런데 처음이라며 오히려 변백현이 혼자 신났다. 임마, 나도 처음이다.

그 시선들을 다 떨쳐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김종인, 활동명 카이. 이 사람 역시 딱 들어왔을 때부터 이쪽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하하.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카이짱팬입니다. 한순간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 돈으로 직접 앨범까지 사왔다. 가수이니만큼 왠지 앨범에 받아야할 것 같았다. CD를 열고 안쪽에 있는 자켓 사진에서 개인 컷을 펴보았다. 여기다 받아야지 했는데 그러면 얼굴에 펜이 그어질까 싶은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다 받아야지.

역시 눈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크고 움푹 파였다. 따지자면 쌍꺼풀라인이 굉장히 짙어서 그렇게 보였다. 화면으로 거쳐서 볼 때도 느꼈지만 참... 취향이다.

 

한참 기다린 끝에 차례가 되어 앨범을 슥 내밀자 굉장히 기뻐하는 내색이었다. 우와, 직접 산거에요? 하는 목소리에 내가 다 떨렸다.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했다. 싸인을 먼저 슥슥 하고나더니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맞췄다. 그 때 나는 현실감이 마이너스로 뚝 떨어져있었다. 이대로 받고 나가기에는 아쉬웠다.

 

 

“안녕하세요. 박찬열입니다!”

 

 

목소리가 얼마나 컸을 지는 잘 모르겠다. 저쪽에서 다음으로 대기를 타고 있던 변백현이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만 들렸다. 망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는 다시 머리를 내리고 앨범에 싸인 외에 무언가를 쓱쓱 적어냈다. 멍한 정신으로 정수리만 쳐다보느라 집중하지 못했다.

 

 

“아, 악수 한번만.”

 

 

스스로 듣기에도 애절한 톤으로 부탁했다. 오른손에 들고 있던 마카를 미처 옮겨내지 못하고 손을 잡았다. 엄청 작았다. 키가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라 내 손에 다 덮이는 크기는 다소 충격이었다. 뭐지?

밖으로 나오는 것도 어려웠다. 5층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변백현에게는 따로 문자를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오른손바닥을 한참 쳐다보았다. 여기에 쏙 담겼다. 그렇게 강해보이는 인상주제에 손이 작다니. 어떻게 잡았더라. 모양을 만들어내 공중에 잡는 시늉을 해보았다.

앨범을 들어 싸인을 확인하는데 바로 위쪽에 To.찬열^^ 이라는 글자가 추가되어있다. 또 다른 충격이었다. 뭐지? 이 웃음표시 뭐지?

잠시 후에 변백현이 내려와 행사 측에서 준 종이에 받은 싸인을 보여주었다. 재밌었다면서 나중에 또 이런 거 있으면 데려와 달라고 했다. 등을 팡팡 때리며 너 그런 얼굴이 취향이었냐고 덧붙이는데 사실 뒤부터는 제대로 못 들었다. 변백현과 내가 받은 싸인이 사뭇 달랐다. 그것만 눈에 들어왔다. 저 웃음표시는 내 것에만 담겨있었다. 변백현 것에는 없다. 너무도 확실한 희열이 일었다.

그 날부터였다. 그렇게 난 당당한 카이짱팬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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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늑대

P2014. 4. 30. 01:15

 

 

 

박찬은 어릴 적 시골에 놀러갔다가 숲에서 풀에 싸여 홀로 남겨져있는 새끼늑대를 데려왔음 원래 도시사람이라 부모님이 도로 놓고오라했는데 울먹이면서 얘 버려졌다고 우리가 키우자해서 키우게됨 울음소리가 크아 카 거린다고해서 카이.. 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음

그 새끼늑대는 사실 버려진게 아니었움 인간과 늑대 사이에서 태어난 그 아이를 어떻게든 살리기위해 관련 사냥꾼을 따돌리려 어미가 숨겨둔거였음 간신히 따돌리고 냄새를 좇아 따라왔는데 자신의 아이가 사라진것을 알고 울부짖음 박찬은 강아지인줄 알고 데려온거임

박찬 집은 저어쪽 부자동네 전원주택 큰 대문 열고 돌계단 올라가면 앞마당있는 집 소박한 연못 하나정도 자리함 그럼에도 새끼 때는 집안에서 키우자고함 밖은 너무 춥고 외롭지않겠냐며 꾸욱 안고 안놔주기에 허락을 얻어냄

방에 데려다놓고 키우는데 어느날은 간식거리를 들고 딱 들어감에 침대에 영 낯선아이가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자기를 바라다보고있었음 박찬은 고개를 휘휘 돌리다

 

넌 누구야?

 

물었음 아이는 박찬이 했던 마냥 똑같이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 입을 열었음 말은 제대로된 만들어지지못했고 대신 쉰 음성이 튀어나오는데 그게 꽤 익숙했음 박찬이 그걸 듣고는 멈칫했다가 카..이?

그 어린아이가 순간 눈을 반짝이면서 꼬리라도 흔들 기세로 상체를 들었음 몇 발자국 더 가까이 가서야 알았음 아이 배부분에 회색털이 먼지처럼 붙어있었음 마치 정말로 카이가 인간이라도 됐으면 이런 모습일 듯함 이목구비가 상당히 몽글몽글한 생김새였음

카이가 인간이었다 늑대였다 할 수 있다는걸 알게되자 아이에게 하나둘 무언가를 가르치기시작함 그러면서도 저의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함 찬열이라는 발음이 어렵다보니 찬이라고 부르게됨 카이도 점차 인간과 늑대 사이를 능동적으로 왔다갔다 할 수 있게되면서 방안에서는 항상 인간이되었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면 본래로 돌아감 아이 때는 이런게 가능했음 집에서 기르게했으니 나날이 커져가는 몸집을 부모가 눈뜨고 보고만있지는 않았음

 

아무리봐도 보통 강아지는 아닌것같지 않아요?

아직 별탈없으니 더 두고봅시다 찬열이가 저리 좋아하지않아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한참을 놔둠 해가 둥근 원으로 색을 바꿔그리기를 수백 번 밤마다 근처에서 웬 짐승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민원이 왔움 확실히 카이는 아니었는데 그 집 주변에서 들리니 집안 사람들은 불안함이 가중됨 카이는 점점 몸집을 더 해감 인간으로 변했을때는 박찬보다 어린 티가 확실한데도 짐승적은 커다랗게 자라남

애가 어떤 종류인지 알기위해서 엄마가 박찬이랑 놀러가고 아빠는 전문가를 모셔왔음 헌데 전문가도 고개를 기울임 생김새는 늑대에 가까운데 무언가 섞인 것 같다 평범한 개가 아닌건 맞다함 혹시 얘가 밤중에 울었던 적이있냐물었음 그런데 울음 소리를 낸 적은 없음 짖은적도 없음 아니요.. 전문가는 눈을 반짝이며 괜찮으시다면 얘를 자기가 데려가서 정확하게 더 알아봐도 괜찮겠느냐

아빠는 일단 얘가 사라지면 아이가 슬퍼할거라고 지금도 아이없는틈에 모셔온거라 어려울것같다함 전문가는 진심으로 아쉽다는듯 입맛을 쩍쩍 다시다 후에 오겠다했음

찬열은 놀러갔다와 사온 이런저런 맛난 간식들을 들고 자기 방으로 올라감

 

카이야 이거 먹어!

 

우르르 쏟아놓고 받아먹는 카이를 흡족한 눈으로 바라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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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ㅈ 모델

P2014. 4. 30. 01:02

 

 

디자이너 김종인.. 박찬은 길거리캐스팅 받아서 회사까지 끌려옴 이런거 관심 하나도 없는 놈이라 앞에서 사람이 아무리 너 진짜 운좋은거다 말해도 귓등으로도 안들음 실례할게요하고 휙 나감 회사밖으로 나가다 한 남자가 들어오다 자기 가슴팍에 이마를 툭 부딪힘 남자는 어딘가 졸린 눈으로 박찬 올려다보다 느린듯 어눌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휘적휘적 안으로 들어감 박찬은 유리문 잡은 자세로 멍하게 서 있다가 서둘러 사무실 다시 뛰쳐들어감 어디다 서명하면 되죠?!

 

길캐로 들어온 박찬은 모델 일에 관심 없었지만 회사 나서다 우연히 마주친 김카덕분에 도로 들어가 계약을 마쳤음 박찬은 이전에도 몇번 여러곳에서 캐스팅을 받고 일도 해봤었음 적성에 안맞는다고 때려친게 다반사였는데 그래도 그것도 경력이라고 나름 대접해줌

종인이가 디자인쪽에 속해있다는 소식에 박찬은 더 신남 그럼 자기 그 재밌게 생긴 애가 만든 옷 입을 수 있냐고 직원들이 처음에는 재밌게 생긴애?하고 운을 띄우다 순간 웃음터져서 큭큭댐

그러면서 아마 그럴 일은 없을거라고 걘 이제 막 발 뗀애라 옷은 커녕 원단 심부름이 고작이라함 그마저도 전에 한번 실수해서 찍힌 상태라했음 박찬은 불안해짐 얘 하나 보고 들어왔는데..

엄청 철저하게 계약해서 마음대로 물리기 어려웠음 애가 만약 잘리게되면 쓸데없이 자기만 코꿰어버리는 셈임 그건 절대있을 수 없는일이었음 순간 그때 자신이 왜 그랬을까 후회하다 사무실 노크소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을 보고나자 생각이 싹 사라짐 고개를 꾸벅 숙였다가 드러난 얼굴은 어딘지 피곤함이 역력했음 처음 봤을때와 같은 졸린 눈에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아이.. 점심 드시라는데요

종인 한마디에 주변 직원들은 전과같이 웃음을 팍 터뜨림 박찬이 재밌게 생긴 애라고 했던 말과 지금 종인 얼굴이 정확히 겹쳐보였던 탓임 사람들 반응에 어리둥절한건 김종인뿐이었음

 

자장면 불어요 얼른 오세요

 

그렇게 도로 문이 닫혔고 여전히 웃음소리는 소란스러웠지만 안에서 박찬만이 고요했움 김카가 들어온 순간부터 멈춰버림 박찬이 아무 반응이 없으니까 억지로 끌고감 어떻게든 저 까만 친구를 여기 못박아두어야겠다 마음 먹게되는 때였음

워킹, 시선처리, 자세, 감정표현등 죄다 특훈받음 워킹빼고는 그나마 봐줄만하다고 함 피팅모델이나 광고쪽을 했던 경험이 아무래도 도움이 되는것 같은데 그러면서 워킹만 좀 어떻게하자고 고릴라냐고 혼났음

 

넌 이제 런웨이쪽 서는 모델인데 그래서야쓰겠냐

 

전체 휴식때 안좋은 기분 담고 옥상에 풀러감 근데 저쪽에 이미 자리잡고 누워 한숨 쉬고있는 이가 보임 슬쩍 가보니 그 애였음 숨들이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나서 종인이 눈을 흘낏 돌림 정확히 눈이 마주쳤는데도 다시 하늘을 보는 덕에 괜스레 박찬만 민망해짐 살금살금 근처까지 가서 엉덩이 붙이는데 저쪽이 먼저 입을 염

 

깨졌죠?

 

너털웃음으로 털어내고 종인씨도? 하니까 한번 크게 한숨 푹쉼 박찬은 조금더 다가갔음 일 힘들지않아요? 나름 신중하게 낸 질문이었는데 종인은 입술만 안쪽에서 물어댈뿐 대답을 안함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조금 풀죽어서 무릎당겨 앉는데 이번엔 종인이 같은 질문을 했음 조금도 망설이지않고 기다렸다는듯이 불쑥 내뱉음

 

워킹 너무 어려워요..

 

종인은 하늘에서 눈을 거두고 박찬을 바라보았음 별로 신경쓰지않을줄 알고 사실대로 말한건데 눈알이 하얗게 빛나는걸 보고 순간 두려웠음 이거 혹시 말하면 약점되는건가 해서 큰웃음으로 무마하려는걸 종인이 막아섬 스윽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기도 전에

 

혹시 워킹 한번 볼 수 있을까요?

 

하는 목소리는 전에 한번도 들어본적없는 또렷함이었음 찬열은 팔깨에 돋아나는 닭살을 눌러지우고 예..하면서 저쪽으로 뚜벅뚜벅갔음

긴장감 때문인지 아까 혼났을 때보다 더 둔한 움직임으로 걸었음 종인 앞까지 딱 갔는데 표정이 영 신통치못해서 그대로 멈춰버림 그러자 인상이 갑자기 분명하게 변함 런웨이는 끝까지 돌아야죠 단호한 목소리가 귀안쪽에 딱 꽂힘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보다 더 확실한 훈계였음 이번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돌아서 원래있던 자리로 감 민망함과 방금 전 종인이 낸 싸늘함에 눈가를 슥슥 비벼뜨는데 어느새 일어난 아이가 가까워져왔음

 

제가 봤을 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걸음걸이네요

 

일차적인것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잡아냄 선생님이 놓쳤던 것까지 말하면서 교정해주었음 박찬은 우와 모델들을 많이 보니까 역시 다르구나 입만 벌리다가 문득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냄

 

종인씨 회사 들어온지 얼마 안됐다지않았어요..?

 

며칠 눈대중으로 보고만 익혔다기엔 지나치게 전문적이었음 한 문장에 종인은 싸하게 굳음 그를 멈추게하는 단추라도 눌러버린 것처럼 입을 다물어버렸음 당황한건 박찬 쪽 내가 뭘 잘못 말한건가싶어서 서둘러 팔을 휘저음

 

아니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얼마 안됐는데도 대단하다는..

 

하지만 이미 덮기에는 늦었음 대화를 멈추고는 밖에 너무 오래 나와있었다며 들어가보겠다고 건물 안쪽으로 사라졌음 혼자 남은 그는 방금 자기가 낸 말을 물어씹어뱉음 무슨 생각으로 그랬냐 멍충아! 자책도 끊이지않다 결국 터덜터덜 들어와 연습을 이어나감

 몇 바퀴 돌고나서 선생님이 멈추게 함 또 깨지겠구만하고 모든걸 내려놓은 상태로 바닥만 봄 그런데 들려온 말은 전혀 생경했음

 

야 임마 진작 그렇게 걸을 것이지

 

허무하게 떠나간 종인에 넋을 반은 놓은터라 자기가 어떻게 걷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음 뭐가 어떻게된건지 인지하기 어려웠음

 

다시 해봐

 

그러고 돌리는데 겨우 돌아온 정신이 박찬을 수렁으로 내몰았음 그리고는 아까와 별다를 바없는 고릴라를 데리고왔음 똑바로 안하냐는 소리가 바깥까지 울려퍼지고 선생님은 폭발함

자아성찰 시간이 필요한것같다고 한쪽 벽에 박찬 붙여놓고 다른 모델들만 불러다 봐줌 박찬은 땀뻘뻘 흘리면서 몇시간을 그렇게 벽에 달라붙어섰음

하루 연습 일정 끝나자마자 바로 디자인 사무실로 뛰쳐감 문 벌컥 열었다가 다들 똥그란 눈으로 일제히 이쪽을 향한걸 보고는 조심스레 다시 문닫음 곧 똑똑.. 노크하면서 열었음 여전히 다들 똑같은 눈으로 보고있음 그래도 박찬은 용건을 이어나감

 

종인씨는요?

 

제일 먼저 정신차린 직원 한명이 박찬을 콕 찔러가리킴 반문할 틈도 없이 잠시만요 하고는 틀과 그 사이를 비집고 김종인이 나타남 손 가득 옷감이 들려있어서 찬열은 어쩔수없이 안으로 따라 밀려들어감 책상에 원단 쏟아놓자 여기저기 널려져있던 사람들이 단숨에 와서 하나씩 확인해보기 시작했움 서로 맞게 왔냐고 물어봄 다행히 틀린건 없었음

어수선한 분위기가 풀리고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자 그제야 박찬 챙겨줌

 

맞다 종인아 너한테 볼일 있대

 

문 뒤쪽에 찌그러져있던 멀대같은 남자가 설설 걸어나옴 겹겹이 떠있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돌아옴 머리만 벅벅 거리다 저 얘 잠시만 빌릴게요! 하고 종인 팔 붙잡고 나가버림 옥상까지 데려와서 대뜸 워킹 좀 보여달라함

 

전 모델이 아닌데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일순간 일그러진 눈썹이 고통을 집어삼킨 모양새가 선명함 단순히 표면적인 의미로만 알아듣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음 분명 뭔가 있다고 느낌 계속 억지로 밀어붙여감 한참 공방 끝에 종인이 상당히 지친 음성으로 읊조림

 

전 모델이 아닙니다..

 

김카가 나가버린 뒤 박찬은 허무함반 떨림반으로 다리를 유지함 후로 약간 방법을 바꿔서 종인 주변을 맴돔 누가 보면 디자이너 쪽인줄 알정도로 돌아다님 그러면서 또 연습은 잘하니까 뭐라고도 안함 김종인 혼자 성가셔서 죽으려고했음 물론 티는 안냄

홀로 남아서 연습하다가겠다고 연습실 한켠에만 불켜서 하다 잠깐 종인이 얼굴이나 보러갈까 나갔움 디자인 사무실은 아직 사람이 꽤 많았음 살짝 열고 대충 훑어보는데 뒷모습에라도 알아볼 녀석이 보이지않음 또 심부름같나 그냥 다시 연습실 돌아옴 근데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들여다보니 웬 사람이 있음 아까 다른 모델들 다 간줄 알았는데 아닌가하여 아무렇지않게 들어가려다 도로 물렸음 이쪽에서 저쪽으로 뚜벅뚜벅 가는 걸음은 런웨이워킹 그리고 자리 주인은 김종인 헉해서 뒤돌아 문뒤에 숨었다가 왜숨었지싶었음

당당하게 보자!했는데 몸은 마른 해삼처럼 쭈그러진채로 안쪽을 살펴봄 종인은 한발씩 내딛는 걸음마다 묘한 경외심이 생길만큼 분위기를 압도함 공기층이 달라 숨을 마음껏 쉬지도 못함 자신을 포함 다른 모델들과 같은 연습장소인데도 어딘지 느낌이 생소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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